#62. <더 지니어스>라는 게임

2014.10.16

많은 관심 속에 tvN <더 지니어스>라는 케이블 TV 프로그램의 시즌3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도 어쩌다 보니 출연하게 되었다. 나는 평소에 ‘안 해본 것은 해본다’는 원칙을 꽤 중시하며 살고 있었기 때문에 섭외가 들어왔을 때 긴 고민을 하지 않고 출연을 결정했다. 잘 구성된 세트 안에서 치밀하게 조직된 게임을 하면서, 인간군상을 겪어본다니 사실 작가로서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 ‘비밀 엄수’가 무엇보다 중요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에세이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이 많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얻게 된 귀한 경험 속에서 느낀 재미있는 지점들이 많다.

이야기 장르 중에는 ‘군상극’이라는 형태가 있다. 쉽게 말하면 하나의 큰 흐름이 되는 사건상황 안에서 여러 명의 등장인물이 각자의 시선을 갖고 행동하고 서술하는 형태이다. 예를 들면 영화 <미스트>나 박흥용 작가의 만화 <경복궁 학교> 같은 작품이 그렇다. 이야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사건과 캐릭터’에 온통 초점이 맞춰지는 형태이기 때문에 작가수업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자주 등장하는 형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특정 상황 속에서 자신도 모르던 자기 모습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주로 스트레스 상황에 처했을 때 그렇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이 나에게 압력을 가하면 평소엔 드러나지 않던 자신의 여러 지점들이 물 위로 드러나는 것이다. 작가들은 이러한 현상에 착안하여 이야기 속에서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위해 각종 사건들을 캐릭터에게 던져준다. 그래서 많은 군상극은 재난물의 형태를 띠고 있다. 좀비의 습격이나 자연재해 등이 닥쳤을 때 작은 공간에 여러 사람들이 갇히게 되면 적나라하게 그들의 장점과 약점, 인간으로서의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지니어스>라는 프로그램은 바로 그러한 군상극의 적절한 예시이다. 보안이 철저한 세트장 안에 갇혀서 (물론 아주 급한 경우 화장실 정도는 갈 수 있지만 어지간하면 참아야 함) 한 번 촬영할 때마다 한 사람의 탈락자가 나오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짧지 않은 시간동안 한 호흡으로 촬영하게 되며 승리와 패배, 보상이라는 결과를 놓고 쉽지 않은 게임을 하면서 누군가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동시에 믿어야 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재난 수준의 스트레스 가득한 촬영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공통적으로 한 가지, 선택의 고민에 빠지게 된다.

우리의 행동은 사실 거의 대부분이 모종의 선택이다. 선택의 기준은 넓게 보면 너무나 많지만 좁게 보면 결국 두 가지인 경우가 많다. 바로 욕망과 두려움이다. 이 두 가지의 싸움 속에서 내 마음이 쏠리는 방향으로 선택을 하고 행동을 하면서 우리의 순간순간을 쌓아나가는 것이다. 나 역시 <더 지니어스>를 촬영하는 내내 나의 두려움과 나의 욕망을 저울질하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여기에 한 가지 어려운 점이 또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달리 한국의 방송에서는 ‘시청자들의 눈’이 매우 중요한 선택기준이 된다. 비호감적인 행동을 하는 순간 이름 앞에 ‘혐’자가 붙기 일쑤인 한국의 인터넷 세상에서 출연자들은 자신의 욕망과 두려움에 더해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까지 어느 정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의식이 절대 쉽지는 않다. <더 지니어스> 세트장은 수많은 카메라로 둘러싸여 있다. 숨어있는 카메라까지 생각해 본다면 출연자들에게 사각은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시간동안 게임에 집중하다 보면 이것이 방송 촬영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 심지어 전문 방송인들마저도 그런데 일반인들은 오죽하랴. 결국 <더 지니어스>는 플레이어들에게 있어서 쉽지 않은 선택을 매 순간 이어가야 하는 일종의 극한체험과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힘든 경험을 하면서 애초에 내가 원했던 ‘새로운 경험’은 분명하게 할 수 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동안 살면서 느꼈던 많은 것들을 강하게 재확인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적절하겠다. 그것은 바로 ‘자기객관화’를 통해 얻게 되는 고해상도의 자기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과 두려움, 자기 캐릭터의 강점과 약점을 잘 알고 이해하는 사람은 그 두 가지의 저울질에 있어서 조금 더 수월하다. 그리고 불가피한 선택보다는 스스로 결정한 선택을 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결과가 안 좋더라도 직접 한 선택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운이 좋아 유리한 결과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한 선택이 아니라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본다. 그 뿐만이 아니다. 메인매치에 이어서 벌어지는 1대1 상황의 데스매치의 경우에는 무엇보다 자기확신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기확신은 자기 이해에서 발생할 때 비로소 견고해진다. 이 작은 차이가 승패를 가르는 순간 역시 여러 번 목도했다. 마지막으로 편집을 거쳐 나가는 방송분을 보며 자기 모습을 거듭 관찰한다는 것은… 뭐랄까. 한층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기를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독특하고 귀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샤워 직후 화장실에서 거울을 통해 바라보는 뽀샤시한 자신의 모습과는 분명… 많이 다르다.

내가 매번 촬영장을 나올 때마다 느끼는 묘한 감각이 있다. 세트장 바깥에는 더 큰 지니어스 게임이 있다는 트루먼쇼적인 느낌이다. 더 큰 지니어스 게임에는 ‘원칙’은 있을지 모르지만 견고한 룰은 없다. 심지어 그 원칙도 누군가는 어기며 살아간다. 그래서 더욱 어렵다. 이 때 우리에게 주어진 몇 안 되는 만능 도구는 바로 자기 객관화를 반복해 가며 얻어내는 자기 이해의 지도이다.

이종범
<닥터 프로스트> 작가로 일 벌이길 좋아하는 참치형 만화가.
덕력과 잉여력의 위대함을 신봉하지만 정작 본인은 마감 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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