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회담>의 G11에게 배우는 대화의 기술

2014.10.14
처음에는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는 점에 놀랐다. 그런데 이 외국인들이 한국어로 결혼, 교육, 육아 문제 등에 대해 토론한다. JTBC <비정상회담>은 단지 외국인들이 출연한다는 것을 넘어 그들을 통해 진지한 토론과 유머를 동시에 보여준다는 데서 놀랍다. 태어난 나라에 따라, 또는 성격에 따라 각자 다른 사고방식과 대화방식을 가진 그들은 다른 어느 토크쇼보다도 치열하면서도 매너를 지키는 토론을 보여주고 있다. 문자 그대로 ‘대화의 기술’이라 할 만한 그들의 화법은 어떻게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을까. 전문가들의 의견과 자료를 통해 분석했다.


1. 위기를 웃음으로 전환하는 샘 오취리 (가나)
샘 오취리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을 때도 있고, 그만큼 허점이 생기곤 한다. 이 때문에 다른 출연자들은 그가 종종 하는 가나의 고유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그를 놀리기도 한다. 하지만 샘 오취리는 그런 상황에서 절대로 성을 내지 않는다. 오히려 유쾌하게 받아넘긴다. 크게 웃는 샘 오취리의 표정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샘 혼은 “놀림을 피할 수 없다면 놀림과 한패가 되어 유머로 승화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샘 오취리는 실제로 토론에서 겪는 위기를 오히려 웃음으로 전환하는 순발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괜히 샘 해밍턴에 이은 외국인 예능인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다.


2. 좋은 스토리텔러 알베르토 몬디 (이탈리아)
스피치 박사 KBS 김은성 아나운서는 “대화에 능한 사람은 동시에 좋은 스토리텔러다. 자신이 경험한, 혹은 들은 이야기들을 잘 수집하고, 잘 표현한다”고 말한다. 알베르토 몬디는 자신의 일화를 이야기할 때 중요한 포인트가 무엇인지 잘 파악한다. 축구선수를 꿈꿨던 자신의 과거나 현재 부인을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을 전달할 때 기승전결의 흐름을 잘 탄다. 결정적인 순간 로맨틱한 말을 던지는 센스와 자신이 말하는 내용에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강한 어조로 말하는 기술 또한 가졌다. 알베르토 몬디처럼 좋은 스토리텔러가 되려면 먼저 적극적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수집해야 한다. 그 대상은 자기 자신이 될 수도, 타인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재미있는 소설이나 영화를 평소에 자주 접하면서 흥미로운 서사에 대한 감을 잡아야 한다.


3. 높은 자존감을 가진 기욤 패트리 (캐나다) 
기욤 패트리는 프로게이머로 활약하던 시절 한국인에게 1억의 거금을 사기당했던 이야기를 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다. 또한 어린 시절 스키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학생이었다며 해맑게 웃고, 캐나다 이야기를 할 때면 자긍심이 넘친다. 그만큼 그는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졌고, 대화 내용에도 긍정적인 내용이 많다. 긍정적인 표현은 말의 논점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효과가 있고, 더 나아가서 긍정적인 자아를 가진 사람은 대화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한다. 높은 자존감이 훌륭한 대화를 만들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4. 에네스 카야의 두괄식 (터키)
에네스 카야는 “어린 나이에 자녀를 독립시키는 것은, 부모가 자식을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같은 강한 독설이나 터키 속담을 먼저 던져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주장만 있다면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그는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시한다.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대신 핵심을 제시하고, 그중 인상적인 주장을 두괄식으로 펼쳐 청자들에게 의도를 정확히 전달한다. 다소 직설적인 방식이기에 반감을 얻을 수도 있지만, 의도만큼은 항상 선명하게 전달된다. 주장을 뚜렷하게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면 그의 두괄식 화법을 떠올리면 도움이 될 것이다.


5. 공감능력이 높은 줄리안 퀸타르트 (벨기에)
에네스 카야가 강하게 말하는 사람이라면 줄리안 퀸타르트는 먼저 듣는 사람이다. 상대의 말에 동의할 때에는 밝게 웃으며 엄지를 들고, 반박할 때에는 상대가 했던 말을 되묻는 등 리액션이 좋다. 공감능력 또한 뛰어나서 다른 사람의 말에 눈물짓는 경우가 많다. KBS 김은성 아나운서는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듣고도 반응하지 않고 내 의도대로만 상대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은 대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줄리안 퀸타르트는 이 발언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다. 그가 에네스 카야의 센 발언에 반박하면서 밀리지 않는 것은 주장을 강하게 해서가 아니라 충분히 들은 뒤 설득하는 자세를 가졌기 때문이다.


6. 질문하는 장위안 (중국)
장위안은 ‘장위안의 질문 타임’이라는 비공식 고정 코너를 가질 만큼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자신이 모르는 분야에 대해 자주 묻는다. 상대가 잘 알지 못하는 내용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하는 것은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상대가 대답을 잘 해줄 수 있는 분야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대답하는 사람의 자존심을 세워줄 수 있다. 또한 그는 상대의 말에 동조를 하고 싶을 때에는 가볍게 말을 얹어나간다. 자신의 언어로만 말을 이어나가야 대화에서 승리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대화에 능통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언어를 빌려 자신의 의견을 펼치는 일에도 능숙하다. 장위안은 질문을 자주 하면서 한 가지 행위로 두 가지 효과를 얻는 것이다.


7. 대화의 맥을 짚는 타일러 라쉬 (미국)
타일러 라쉬는 토론의 주제가 처음의 방향과 달라질 때 중심을 잘 잡아준다. <비정상회담>의 게스트 오나미가 가져온 안건과 다른 방향으로 토론이 흘러가자 “남자를 만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남자를 모르는 것이 안건이에요”라며 주제를 환기시켰고, 성교육을 언제 시작해야 하는지 팽팽하게 의견이 맞설 때 성교육의 목적이 무엇인지 미리 짚고 넘어갈 것을 제안했다. 그는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큰 그림을 계속해서 생각한다. 여러 사람이 하는 토론일 때면 늘 그와 같은 사람이 필요하고, 다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말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


8. 적을 만들지 않는 로빈 데이아나 (프랑스)
<비정상회담>의 3회, ‘제1차 인사평가’에서 로빈은 모든 사람에게 좋은 말을 해주었다. 기본적으로 그는 긍정적인 느낌으로 대화하려 노력하고, 상대방의 말을 수긍하면서 대화를 이어간다. 이를테면 대화 중 대부분 미소를 띠며 이야기하고, 타인의 주장을 반박하더라도 목소리를 높이거나 상대의 말을 무리하게 막거나 하지 않는다.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샘 혼은 ‘주는 대로 받는다’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강조한다. 말하는 사람이 발산하는 기운을 똑같이 돌려받게 되기 때문에, 상대를 몰아세우거나 이기려고 드는 태도는 금물이라는 것이다. 그 점에서 로빈 데이아나는 대화의 가장 중요한 전제를 잘 지키고 있다.


9. 테라다 타쿠야의 손짓 (일본)
대화를 잘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를 갖고 있다. 말투, 표정, 손짓 등이 다른 사람과 차별화된다면, 그 사람이 하는 말까지 잘 각인되는 효과가 있다. <비정상회담>의 테라다 타쿠야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고 있다. 타쿠야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는 일본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이용, “지금 웃고 있는데 기분이 좋은 거예요?”라는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하며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또한 최근엔 발언권을 얻기 위해 기다릴 때 보여주는 섬섬옥수가 화제다. 대화의 내용 이전에 대화에 집중하게 만드는 방법을 만들어낸 것이다. 최근 방송일수록 그의 발언이 더 귀에 잘 들어오는 이유다.


10. 토론의 자세를 보여주는 다니엘 린데만 (독일)
다니엘 린데만은 선진국인 유럽과는 달리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는 중국의 학생들은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는 장위안의 주장에 대해 “그 말은 굉장히 일리가 있어요”라며 문화적 차이를 먼저 인정했다. 혼자 공부만 하다 보면 사회성이 결여될 수 있다는 근거를 내세운 반박은 그다음에 이어 나간다. 다니엘 린데만은 의견이 엇갈릴지라도 “난 당신의 생각을 이해하고 있다”는 말을 하면서 이것이 싸움이 아닌 토론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또한 그는 항상 온화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하기 때문에, 다니엘과 반대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도 그와 부딪치기보다는 서로 존중하려고 한다. 그가 <비정상회담>에서 점잖은 느낌의 캐릭터가 된 이유다.


11. 다니엘 스눅스의 오픈 마인드 (호주)
에네스 카야는 다니엘 스눅스의 가출 경험에 대해 “다니엘이 15세에 집을 나간 건 아빠 책임도 있다”는 다소 공격적인 발언을 했다. <비정상회담>에서 보수와 진보 양 끝단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의 논쟁은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니엘 스눅스는 “한국과 외국 간에는 독립에 대한 인식 차이가 있다”는 말을 통해서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그는 종종 에네스 카야와 부딪치는 일이 많았지만 그는 이른바 ‘뒤끝’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제1차 인사평가’에서는 에네스 카야와 함께 살고 싶다며 남다른 호감을 내비쳤다. 토론에서 각각의 주제에 대한 입장과 그 사람이 가진 고유의 매력을 따로 받아들인 것이다.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까지 적대시하지 않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서로 정말 다른 11명이 모인 방송이 별다른 논란 없이 이어질 수 있었던 비결일 것이다.

참고 도서
<10초 안에 결과를 얻는 전달의 기술>, 사사키 케이이치 지음, 홍성민 옮김
<이기는 대화>, 이서정 지음
<자기주장의 기술>, 수비숍 지음, 신승미 옮김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 샘 혼 지음, 이상원 옮김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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