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레인저 | ② 전대물의 5대 법칙

2014.10.14

어떤 장르나 클리셰와 특유의 문법을 가지고 있다. 슈퍼전대가 등장하는 전대물도 마찬가지다. 각 슈퍼전대의 힘의 기원과 출범을 알리는 1화와, 적의 보스를 쓰러뜨리고 종지부를 찍는 마지막 화를 제외하면 매 에피소드가 거의 같은 패턴으로 진행되고, 시리즈 전체를 봐도 새 학기 즈음 로봇이 등장하고(사라), 여름 휴가철에 새 무기가 등장하는(또 사라) 패턴이 반복된다. 하지만 추리와 공포, 스페이스 오페라 등 모든 장르물이 그러하듯, 이러한 클리셰를 장르 바깥의 기준으로 평가하기보다는 그 내부의 법칙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그 참맛을 즐기고 그 장르를 이해할 수 있다. 다음은 전대물 팬이 아니라면 낯설고 비논리적으로만 느껴질 전대물의 중요 법칙들이다. 이것만 숙지해도 전대물에 대한 당혹감은 한결 덜할 것이다. 전대물의 세계에 발을 디딘 것을 환영한다.


좋은 건 레드부터, 레드 선창의 법칙
영화 <어벤져스>에서 유독 아이언맨이 핵폭발을 막아내는 결정적 공을 세운 건 어째서일까. 바로 레드이기 때문이다. 가끔 예외가 있긴 하지만 슈퍼전대 안에서 리더는 거의 언제나 레드의 몫이다. 팀을 이끌고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을 견뎌내야 하는 자리. 그래서인지 전대물은 언제나 레드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연출을 보여준다. 우선 매회 빠지지 않는 팀명 소개 때마다 선창은 언제나 레드의 몫이다. 함께 단체로 변신한 뒤 “티라노레인저! 게키!”라고 개인 소개를 할 때(<공룡전대 쥬레인저>)도 레드가 먼저고, “사람들도 모르고”, “세상도 모르는”, “그림자가 되어 악을 벤다!”고 팀의 테마를 외칠 때(<인풍전대 허리케인저>)도 레드가 먼저이며, 무엇보다 “ㅇㅇ전대!”, “ㅇㅇ레인저!”라는 팀 구호에서 앞은 레드 혼자, 뒷부분은 나머지 멤버 전부가 외친다. 전투 중에 ‘간지 멘트’를 던질 때도 마찬가지인데, 거의 모든 경우 레드가 용기를 내는 한마디를 외치면 블루부터 옐로우의 순서로 “응”, “응”, “응”, “응”이라 대답하는 식이다. 다만 이 순서가 예외적으로 바뀔 때가 있으니, 멤버 모두가 ‘간지 멘트’를 던질 때다. 핑크부터 “지금 우리가 포기한다면 지구가 멸망해”라고 멘트를 시작하면 역순으로 한마디씩 거들다가 마지막에 레드가 “별을 지키는 건 우리의 사명이다”라고 방점을 찍는다(<천상전대 고세이저>). 이 역시 결국 레드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기 위한 예외이니 역시 슈퍼전대 멤버가 된다면, 레드부터 되고 볼 일이다.

최후 수단은 꼭 최후에, 거대 광선의 법칙
각각의 캐릭터나 전체적인 줄거리에서는 각 슈퍼전대마다 차이가 있지만, 초기부터 현재의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까지 각 에피소드의 구성은 거의 같다. 악당 조직의 간부들이 새로운 능력을 가진 괴인을 만들어 지구를 침략하면 슈퍼전대가 출동해 고전하다가, 그 능력의 허점을 발견해 승리한다. 가령 <지구방위대 후뢰시맨>에서는 카멜레온 능력을 지닌 괴인을 무찌르기 위해 형형색색 풍선으로 색소 세포에 무리를 가하고, <파워레인저 엔진포스>에선 자석 능력을 지닌 괴인에 대항하기 위해 크레인에 달린 거대한 철구를 날린다. 하지만 기껏 이겼다고 좋아하고 있으면 어김없이 간부들이 거대 광선을 괴인에게 쏴 거대하게 만들고, 결국 슈퍼전대의 거대 로봇이 등장해서 거대 괴인을 쓰러뜨려야 모든 미션이 완료된다. 회당 러닝타임이 30분인 전대물에서 약 20분이 흘렀을 즈음 해당 에피소드의 괴인이 거대해지는 패턴도 똑같다. 이쯤 되면 처음부터 거대 광선을 쓰지 않는 악당 조직, 혹은 처음부터 거대 로봇으로 출격하지 않는 슈퍼전대 둘 중 하나는 안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구조의 유사함일 뿐이다. 괴인의 능력도, 그 능력을 파해하는 슈퍼전대의 전략도 매회 기발하다는 점에서 그들 모두 마지막 카드이자 필요악인 거대 광선과 로봇은 웬만하면 쓰지 않고 지구 침략이든 평화 수호든 자기들 선에서 끝내고 싶어 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1 대 1은 노노, 패싸움의 법칙
기본적으로 매회 새로운 괴인이 등장하는 전대물이지만, 이들 괴인은 혼자 등장하지 않는다. 세련되고 기발한 디자인의 간부 및 메인 괴수들과 달리 정말 Ctrl+C/Ctrl+V로 찍어낸 듯한 다수의 엑스트라 괴인들이 매주 무의미하게 함께 출격하는데, 이들이 얼마나 무력하냐면 심지어 슈퍼전대가 변신을 안 한 상태에서도 일 대 다수로 승리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러한 일방적인 싸움은 메인 괴수의 등장과 함께 반대로 흐르는데, 이제는 슈퍼전대 5명 대 메인 괴수 하나의 싸움으로 전개된다. 즉 대부분의 경우 전대물에서 마초 대 장비 같은 명예로운 1 대 1 대결은 거의 없다. 심지어 역대 전대 중 가장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파워레인저 캡틴포스>에서조차 그러하다. <원피스> 조로의 현신인 것 같은 검객 캡틴 블루는 역시 검객 괴인인 조도마스와의 1 대 1 대결에서 패한 뒤 동료들의 도움을 뿌리치고 수행에 정진해 다시 조도마스와 1 대 1로 싸운다. 여기까진 정정당당한 무사의 싸움이지만, 정작 조도마스가 필살기를 쓰고 캡틴 블루가 이를 파해하려 하자 적 잔당이 비겁하게 들러붙어 조도마스의 승리를 돕는다. 이후 나머지 캡틴 포스 멤버들이 참여해 패싸움으로 번지는 과정은 자연스러울 정도다. 혹시 이러한 패싸움 선호는 개인의 명예나 욕망보다는 팀워크가 중요하다는 선대 전대들의 가르침은 아니었을까. 구리구리 다구리.

이걸 또 기다려준다, 변신과 합체의 법칙
전대물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지구 정복 혹은 우주 정복이라는 악랄한 야망에 비해 각 악당 집단의 매너가 상당히 좋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메인 괴수가 공략당하기 전까지는 함부로 거대 광선을 쓰지 않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슈퍼전대가 변신할 시간, 자기 소개할 시간, 거대 로봇이 합체할 시간을 항상 보장해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특히 벨트의 버클을 들고 변신 동작을 취하는 정도로 변신이 가능했던 <공룡전대 쥬레인저> 세대와 달리 카드를 변신 기어에 끼우고 세팅을 해야 하는 <파워레인저 엔진포스>나 삼바 리듬에 맞춰 춤을 추며 변신하는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의 변신 시간은 상당히 길어서 악당들이 기다려준다고밖에 볼 수 없다. 심지어 다섯 명 모두가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는 걸 1화부터 매주 들어주는 인내심을 보고 있노라면, 역시 지구 정복을 꿈꾸는 스케일이라면 이 정도 품격은 있어야 하는 건가 싶다. 항상 죽일 듯 덤벼들면서도 꼭 1화마다 “웬 놈들이냐?”라는 클리셰 대사로 자연스레 슈퍼전대의 자기소개를 끌어내 주는 기본 예의라니. 아이야, 정의감은 슈퍼전대에게 배워도 교양은 지하 제국에게 배우렴.

등장 신으로 적도 죽일 기세, 등 뒤 폭발의 법칙
당연한 수순이지만 <지구방위대 후뢰시맨>처럼 슈퍼전대가 자신들의 무기를 모아 필살기를 날리는 건 각 에피소드의 후반부 즈음이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가장 강력한 물리적 파괴력을 보여주는 건 막판의 필살기 구사가 아닌 등장 신에서다. 변신 후 레드의 선창과 함께 “ㅇㅇ전대! ㅇㅇ레인저!”라고 외치는 순간 그들의 등 뒤에선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는데, 괴인쯤이야 그대로 재로 만들 것 같은 이 거대한 화염을 보고 있노라면 ‘뒤가 아닌 앞에 터뜨리라고 이 사람들아’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재밌는 건, 슈퍼전대와 악당이 서로의 강력한 공격을 받을 때에도 맞은 부위가 아닌 등 뒤에서 폭발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칼을 맞아도 등 뒤에서, 총을 맞아도 등 뒤에서 화염이 일어난다. 이들 공격의 기본 베이스가 <쿵후보이 친미>의 통배권이 아닌 이상 이 모든 폭발은 단언컨대 비효율적이다. 그러니 앞으로 슈퍼전대가 등장할 땐 악당과 마주하지 않고 뒤로 하면 이런 전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우리에게 등을 보이는 거냐? 쾅! 끝.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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