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레인저 | ① 슈퍼전대, 내 생애 최초의 아이돌

2014.10.14

 무적~ 파워레인저~ 정말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이 구절을 흥얼거렸던 시절이 있다. 지난 1994년 KBS에서 방영한 <무적 파워레인저>는 최고시청률 40%를 기록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은 극장판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 VS 고 버스터즈>를 보며 다이노포스의 변신 구호인 ‘브레이브 인!’을 외친다. 파워레인저라는 이름으로 번안해 들어온 것만 따져도 20년, 그 이전에 <지구방위대 후뢰시맨>이란 이름으로 수입된 <초전사 후레쉬맨>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25년 동안, 지구를 지키는 전대의 활약상을 담은 전대물은 세대를 초월한 인기를 누려 왔다. 과연 다섯 색깔 쫄쫄이 유니폼을 입은 그들의 무엇이 세대와 국적을 초월한 환호를 이끌어냈을까. <아이즈>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전대물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스페셜을 준비했다. 누군가에겐 향수, 누군가에겐 현재진행형의 선망으로 기억되는 쫄쫄이 지구용사들에 대한 이야기.  



똑똑히 기억한다. 옆집 사는 친구가 부럽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먹을 것 때문도 입을 것 때문도 아닌 지역 유선방송을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당시 비디오로 수입된 <지구방위대 후뢰시맨>(원제 <초신성 후레쉬맨>)을 유선에서 주야장천 틀어주고 전국 모든 초등학생들이 그들의 필살기인 “롤링발칸!”을 외치던 1989년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같은 이유로 요즘 아이들이 부럽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만화 채널에서 <파워레인저>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동시대의 후뢰시맨들을 실컷 볼 수 있으니. 하지만 이런 격세지감 속에서도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이들 5명의 형형색색 히어로 즉 ‘슈퍼전대’의 활약상을 담은 전대물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종종 <가면라이더> 시리즈 등이 포함된 특촬물(특수촬영영상물의 줄임말)과 개념이 혼용되어 사용되지만, 전대물은 말 그대로 ‘ㅇㅇ전대’라는 이름을 걸고 대를 이어 지구를 지키는 3~5인조 슈퍼전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시리즈다. 가령 <파워레인저 미라클포스>의 원제는 <천장전대 고세이저>, 현재 국내 방영 중인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의 원제는 <수전전대 코류저>인 식이다. 20년 전 국내에서 40%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던 KBS <무적 파워레인저> 역시 16대 전대인 <공룡전대 쥬레인저>의 미국 버전이다. <지구방위대 후뢰시맨>조차 10대 전대이며, 1975년작이자 1대 전대인 <비밀전대 고레인저> 이후 39년 동안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까지 무려 37대의 전대가 배출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시리즈의 스폰서인 반다이가 새 학기마다 새 슈퍼전대 완구를 팔기 위한 전략과 불가분 관계에 있지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만들어진 전통과 변주의 이중주는 전대물 텍스트 자체의 매력이 되었다.

사실 전대물은 자신들의 세계관을 설득시키기 위해 그다지 노력하지 않는다. 각 히어로의 기원과 활동을 하나의 세계 안에 통합하기 위해 골머리를 썩여가며 온갖 장치를 사용하는 마블이나 DC와 달리 매년 새 전대가 등장해야 할 어떤 당위도 준비하지 않는다. 대신 오랜 시간 동안 반복되는 패턴을 통해 그냥 이 세계에 익숙해지고 받아들이라고 말할 뿐이다. 납득할 만한 논리는 없지만 그냥 인정하고 넘어가면 매년 새로운 슈퍼전대의 탄생을 즐거운 마음으로 확인할 수 있다. 기원보다는 콘셉트, 논리적 설득보단 취향의 만족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슈퍼전대는 DC나 마블 같은 전통적인 히어로보다는 차라리 쟈니즈 아이돌에 가깝다. <독수리 5형제>의 그것을 좀 더 뚜렷하게 확립한 리더로서의 레드와 냉소적인 블랙(혹은 블루), 차분한 그린, 여성스러운 옐로우 등 포지션 배분은 그룹에서 ~을 맡았다는 식의 현대적 멤버 구성과 흡사하며, 미리 콘셉트를 확정하고 활동을 시작하는 것도 아이돌과 다를 바 없다. 무엇보다 전통의 맥락 안에서 새 슈퍼전대가 등장하는 것이야말로 쟈니즈 혹은 한국의 SM 엔터테인먼트의 타이틀을 달고 등장하는 새 콘셉트의 아이돌을 연상케 한다.


앞서 말한 전통과 변주의 이중주가 시너지를 일으키는 건 이 지점이다. 가이낙스의 설립자이자 최강의 오타쿠인 오카다 토시오는 저서 <오타쿠>에서 전대물의 세계를 ‘이미 알고 있는 약속’이라 규정하고, ‘각 시리즈마다 취향의 차이가 미세하게 나는’ 걸 ‘20년 동안 세계를 굳게 지키려’는 방법론이라 설명한다. 시리즈의 변주를 전통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본 이 흥미로운 주장은 하지만 반쪽짜리다. <파워레인저 엔진포스>(원제 <염신전대 고온저>)부터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까지 본격적으로 아이돌 분위기의 밝고 귀여운 인물들이 등장하고, <원피스> 속 밀짚모자 해적단을 연상시키는 안티히어로 타입의 <파워레인저 캡틴포스>(원제 <해적전대 고카이저>)처럼 트렌디한 취향을 충족시키는 작품이 나오기에 ‘이미 알고 있는 약속’을 모르는 세대도 전대물에 매력을 느끼고 이 세계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누군가는 아이돌의 팬이 되듯 새로운 슈퍼전대의 팬이 되고, 누군가는 대형 기획사가 그러하듯 믿고 보는 전대물에 대한 신뢰를 더 쌓게 된다. 앞서 말한 반다이의 완구는 말하자면 슈퍼전대라는 아이돌의 굿즈다.

하지만 <지구방위대 후뢰시맨> 세대가 그러하듯, 전대물이 어린 시절의 뜨거운 로망으로 기억되는 건, 이 모든 요소가 최종적으로 슈퍼히어로 서사로 소급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 역시 마블이나 DC 같은 오래된 히어로물의 전통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이들 양대 코믹스의 캐릭터들은 기본적으로 공권력 바깥에서 자신들의 기준으로 정의를 수호하는 자경단 영웅이다. 그에 반해 “지구를 지키는 것은 천사의 사명”이라는 <파워레인저 미라클포스>의 대사처럼, 이미 콘셉트가 정해진 슈퍼전대는 더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온전한 지구의 수호자다. 즉 공권력이 미처 지키지 못하는 것을 자의적으로 지킨다기보다는, 지구를 지키는 게 원래 그들의 몫이다. 힘의 배경이 무엇이든 그들은 1화에서 5명 모두가 모여 악과 싸울 것을 천명한다. 마블, DC의 슈퍼히어로처럼 각성과 신념 같은 풍성한 결은 없지만, 한 치 의심도 없이 악과 싸워 지구를 지키는 모습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영웅 서사라 할 수 있다. 세상을 위협하는 악당이 등장했다고? 걱정할 것 없다. 어떤 시대든 그 시대만의 슈퍼전대가 지구의 평화를 위해 출동할 테니까. 형형색색 쫄쫄이를 입는다는 건 그 자체로 이 운명을 기꺼이 감당해낸다는 것이다. 화려한 외형과 철저한 콘셉트, 그리고 뜨거운 심장. 과연 이보다 좋은 생애 최초 ‘덕질’의 대상이 또 있을까.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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