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잭 창작비화>, 그들의 ‘지옥’은 우리의 지옥이 아니다

2014.10.10

데즈카 오사무는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내였다. 한창 때는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도 월 300페이지 이상의 연재 분량을 소화했고, 시간을 정확히 계산해 보고 싶은 장면만 보는 방식으로 1년에 365편 이상의 영화를 봤다. 이 왕성한 욕심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초인적 능력은 당연히 함께 일하는 작업자들을 피 말리게 만들었지만, 당사자들은 고생을 상쇄하고도 남는 어떤 감동과 정신적 고양이 있었다고 그와 함께 한 시절을 술회한다. 이것을 다룬 만화가 <블랙잭 창작비화>다. 살인적인 노동도 때로는 황당한 요구들도 ‘만화의 신’이 보여준 더한 노력과 회고라는 형식 속에서 너그럽게 화해할 뿐 아니라 자긍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70년대 일본이 창작 노동자들에게 있어 그만큼 호시절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붐 속에서도 어두운 계절을 예감한 사내가 있었다. 1989년 데즈카의 임종 당시 60세의 짧은 생을 안타까워하는 애도의 목소리 앞에 “보통 사람 180년을 산 것”이라는 너무도 차가운 조사를 뱉은 그는 미야자키 하야오다. 데즈카를 제단 위에 모시려는 이들에 냉소하며 미야자키는 그가 만든 일본 애니메이션의 관습을 모조리 찢어버리려 했다. 이는 그저 큰 인물 뒤에 온 자들이 똑같이 나눠 가진 숙명만은 아니었다. 둘은 작품에 있어 타협이 없다는 점에선 같았지만 무엇이 좋은 애니메이션인가에 관한 입장이 크게 달랐고, 무엇보다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는 조건들에 대한 태도가 달랐다. “재밌는 것을 값싸고 빠르게”가 데즈카의 지향이었다면 미야자키는 그 접근을 혐오했고, “여러분, 일에 목숨을 걸어주세요!”라는 무리한 요구에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천진난만함이 데즈카의 방식이었다면 질척거릴 정도로 창작 업계의 모순을 곱씹는 것이 미야자키의 방식이었다.

그의 고민을 요약하면, “인간적인 작품을 만들려고 한다면 비인간적인 일상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사실”이었다. 도에이 동화 노조 서기장을 거치기도 한 그는 오랫동안 예술가이기보다 한 명의 애니메이션 산업 노동자이기를 자처해왔고, 90년대 초반 지브리의 모든 스태프를 정사원·월급제로 고용하는 변혁을 단행하기도 했다. 그것은 대단한 이상 실현이 아니라 점점 더 열악해지는 외부 환경, 무리해지는 스케줄 속에서 전통적인 작법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가 작품에 투입되는 자원이자 ‘인간’인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보장이었다. 데즈카 역시 높은 인건비를 지불했으며, 미야자키의 비판이 전부 옳은 건 아니다. 다만 미야자키의 일터라면 <블랙잭 창작비화> 같은 온도 높은 픽션으로 가공될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미야자키는 신이 현시하는 초월적 풍경이 아니라 표준을 마련해주는 재미없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 방식을 고수하기가 더는 어려워진 시대임을 웅변하듯, 올해 지브리는 제작부의 임시 해체라는 충격적인 상황을 맞이했다. 그리고 아마 우리의 상황은 더 심할 것이다. 창작 업계 종사자가 고생을 감안하는 이유였고 <블랙잭 창작비화>의 토양이기도 한 열정과 즐거움마저 결코 지켜지지 않는 약속들 앞에서 위협받는다. 그러나 지금 이 지옥만 견디면 언젠간 너희들도 ‘창작비화’란 서사를 가질 수 있다는 환상만은 유지되는 건 어째서일까. 노동 조건에 대한 고민을 영혼으로 때우는 일이 계속된다면, 저 인용문이 뜨거운 시기에 대한 헌사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진술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안은별 (전 <프레시안> 기자)
탈락한 입사 지원서가 ‘패자 부활’하여 기자가 되었고, 사표가 반려되어 특수 부서로 배속된 결과 4년간 북 리뷰 섹션을 만들면서 책 세계와 연을 맺었다. 현재 다른 길을 도모하면서도, 꾸준히 책을 읽거나 쓰고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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