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 예술가의 영혼

2014.10.20

“전부 가진 줄 아는 자에겐 잃을 게 너무 많아서 이 세상을 다 잃은 슬픔 같은 건 쳐다보려 하지 않아” - 윤상, ‘날 위로하려거든’

고해성사의 감정을 소리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윤상이 신디사이저로 만들어낸 소리일 것이다. 그의 노래 ‘배반’의 시작부터 나오던 그 소리. 종교의 경건함과 고백의 슬픔을 동시에 가진 그 소리는 윤상의 정수다. 그의 신곡 ‘날 위로하려거든’은 그 소리로 기도하는 자의 공간을 만들어주고, 다른 소리들로 공간의 안쪽을 채워나간다. 전주부터 등장하는 전자음, 그 소리 틈 사이로 들어가는 또 다른 전자음들. 그리고, 전자음들이 점점 호흡을 끌어올리던 소리 한가운데에 드럼이 등장할 때쯤, 윤상은 노래한다. “괜찮아질 거라는 말. 이겨내라는 말. 가시처럼 나를 찌르는 말. 제발 날 그냥 내버려둬. 난 지금 세상을 잃었으니.”

세상과도 같았던 누군가를 잃어버렸다. “왜 너의 곁을 지키지 못했는지” 자책하며 슬픔 속으로 침잠했다. 그러나 누구도 함께 슬퍼하지도, 이해하지도 않는다. 괜찮아질 거라는, 이겨낼 거라는 뻔한 위로 뒤에 “잊으라는 말, 잊혀진다는 말”로 가시처럼 나를 찌른다. 슬픔이 분노로 바뀐다. 그러나 윤상은 토로하지 않는다. 대신 시를 읊듯 나직한 목소리를 둘러싼 소리들로 마음 속 파고를 표현한다. 가사와 함께 전자음들이 여운을 남기며 공간을 채우고, 세상의 무례한 말들이 나를 찌른 순간 단단한 드럼이 한 가운데에 놓인다. 왜냐하면, “전부 가진 줄 아는 자에겐 잃을게 너무 많아서 이 세상을 다 잃은 슬픔 같은 건 쳐다보려 하지 않”는 세상이므로. 

목 놓아 소리쳐도 들어주는 이 없는 세상에서, 세상을 잃은 이의 목소리는 차라리 덤덤하다. 대신 마음속에는 무언가 치밀어 오른다. ‘날 위로하려거든’이 윤상의 목소리 대신 전자음과 드럼으로 곡의 클라이막스를 채우는 것은 이런 마음의 표현이다. 덤덤한 목소리 속에 숨겨져 있던 슬픔이 쌓이고 쌓여 더 뾰족해진 전자음과 더 단단해진 드럼으로 폭발한다. ‘날 위로하려거든’의 뮤직비디오에서 여주인공은 의자를 집어 던져 자신이 갇힌 공간을 부순다. 그런데, 그 때 등장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렉트로니카 댄스 음악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비트의 전자음과 드럼이 등장한다. 슬픔과 분노가 쌓이는 만큼 감정은 격해지고, 그래서 곡의 박자는 빨라졌다. 그러나 박자가 빨라질수록, 소리가 뾰족하고 단단해질수록, 그것은 결국 춤에 가까워진다. 슬픔과 분노가 춤으로 승화되는 순간. 진정 정신의 춤이라 말할 수 있는 경지.


윤상은 언어로 이해한다고 하지 않는다. 메시지를 설명하려 구구절절 주석을 달지도 않는다. 대신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사람이 갇힌 마음의 감옥을, 그 속에서 겪는 감정의 변화를 정확하게 표현하려 한다. 의미가 아닌 감정의 정확한 전달은 수많은 해석을 열어 놓는다. 누군가는 ‘날 위로하려거든’에서 헤어진 연인을, 또 다른 누군가는 4월 16일 이후의 세상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해석이든 세상과 부딪혀 생긴 상처들이 쌓이고, 폭발하고, 결국 정화되는 순간을 체험한다. 불과 3분 31초 만에 듣는 사람에게 상실과 슬픔과 분노를 영혼의 정화로까지 이끄는 것. 예술가만의 특권이다. 

윤상은 지난 20년 동안 팝, 록, 일렉트로니카, 제 3 세계 등 많은 장르를 체화했다. 그러나 그는 ‘날 위로하려거든’에서 자신의 시그니처나 다름없는 전자음들과, 함께 작업한 스페이스 카우보이의 리듬으로만 곡을 구성한다. 대신 엄격하게 소리를 통제하고, 자기 자신을 절제한다. 사실상의 후렴구를 목소리 없이 구성하고, 그것마저 1절이 끝난 뒤 반복 없이 단 한 번만 들려준다. 곡 후반부에서는 절정에 이른 순간 끊어 버린다. 이 때 소리는 전자음이 조금 작아지는 대신 드럼이 곡을 지배한다. 치밀어 올랐던 감정이 격렬하게 끓어오르고, 전자음이 대표하던 감정의 흐름이 감정의 폭발로 완전히 변한 순간. 그래서 뮤직비디오에서도 파국으로 치닫던 그 때, 윤상은 음악을 종료시킨다. 그리하여, 그는 듣는 이들이 더 크게 울도록 하는 대신 생각하게 만든다. 표현할 수 없던 감정이 음악으로 흘러나오고, 감정이 차오르는 순간 끝났다. ‘날 위로하려거든’의 뮤직비디오처럼 나를 가뒀던 공간이 부서진 채, 음악이 끝났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대담하면서도 냉정하고, 과시하는 대신 정확하다. 그리하여, 듣는 사람에게 성찰의 기회를 마련한다. 윤상은 새로운 장르로 귀를 끌거나 기술을 과시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정수만으로 음악이 영혼을 정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예술가가 영혼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음악적 치밀함을 놓치지 않는 것. 그러나 그것이 완고한 고집이 되는 대신 누군가를 진정으로 위로하려 노력하는 것. 일상의 힘겨움에서 고결함을 잃지 않으며, 고결한 예술 속에서도 타인의 속된 삶을 이해하려는 영혼. 천재라는 말을 들으며 데뷔했고, 뮤지션들이 존경하는 뮤지션이 2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음원차트 성적 같은 것들을 말하지 않고도, 단 한 줄의 문장으로도 기록할 수 있는 음악을 듣게 되었다. 이것은 위대한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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