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소 과자│① 과자로 만든 배를 타고 소비자는 떠나네

2014.10.07

지금 한국에서 ‘질소 과자’는 일종의 상징과도 같다. 이 단어에는 기대가 쪼그라든 실망감과, 뒤통수를 맞은 억울함과, 나를 엿 먹인 상대에 대한 분노와, 이 모든 부정적 감정을 풍자로라도 승화하겠다는 의지가 뒤섞여 담겨 있다. <아이즈>에서는 ‘박스 과자’의 과대포장 문제에 이어 ‘질소 과자’를 둘러싼 흐름에 대해 탐구했다. ‘질소 과자’로 불리는 국산 과자 대신 수입 과자로 갈아타고 싶은 이들을 위해 비슷한 종류의 과자들을 비교 분석했고, 발상을 전환해 질소 대신 다른 기체로 과자를 포장한다면 어떤 패키지들이 나올 수 있을지도 연구했다.


19세기 독일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는 마녀의 ‘과자로 만든 집’이 등장하지만, 2014년 9월 28일 대한민국 서울에서는 ‘과자로 만든 배’가 한강을 횡단했다. 국산 과자의 과대포장 문제를 알리기로 한 대학생들이 롯데 꼬깔콘과 오리온 스윙칩 등 과자 160여 봉지를 테이프로 고정하고 비닐을 씌워 뗏목을 만든 것이다. 두 명의 성인 남성을 태운 뗏목은 봉지에 든 질소의 부력 덕분에 가라앉지 않은 채 900m 너비의 강을 무사히 건넜고, 네티즌들은 이 놀라운 배에 ‘고잉창렬호’라는 애칭을 붙여 환호했다. 만화 <원피스>에 등장하는 해적선 ‘고잉메리호’와, 포장에 비해 적은 양으로 성토당했던 즉석식품 브랜드 ‘김창렬의 포장마차’에서 딴 이름이었다.

‘질소 과자’, 즉 내용물에 비해 충전재인 질소의 양이 지나치게 많은 과자에 대한 풍자는 지금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공감을 얻는 이슈 중 하나다. 질소는 지구 대기의 약 78%를 차지하지만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이 기체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은 대개 과자를 살 때, 정확히 말하면 과자 봉지를 뜯을 때다. 농심 칩포테토에도, 오리온 포카칩에도, 해태 맛동산에도 “제품의 신선도 보존을 위해” 빵빵하게 채워져 있던 질소는 봉지를 뜯는 순간 공기 중으로 사라지고 갑자기 폭삭 주저앉은 듯한 과자가 봉지 높이의 2분의 1 지점 아래서 초라한 부피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 사이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 2009년경 DC 인사이드 과자, 빵 갤러리의 한 유저는 “질소충전: 1. 원가를 줄이고 싶다. 2. 사실 우린 풍선을 팔려고 했을 뿐, 과자는 서비스다”라는 분석으로 제조사를 풍자했고, “질소를 샀더니 과자가 딸려 오네요”라는 자조적인 농담 역시 수년째 떠돌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과대포장에 대한 불만이 소비자 운동 대신 기나긴 ‘드립 열전’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네티즌들은 포장과 내용물 비교 사진을 찍어 ‘질소 과자 랭킹’을 매기기 시작했고, 대기업에 비해 포장이 단순하고 내용물이 실한 중소 제과 기업의 제품들에 대해 “사측의 직무유기로 질소를 충분히 담지 않은 과자이므로 전부 먹어 없애야 한다”는 반어법으로 강력히 추천했다. 한 대학교 학생들은 과자 봉지로 만든 구명조끼, 튜브, 에어백 등에 대한 콩트 ‘질소과자 사용법’을 수업 과제로 촬영해 유튜브에 공개했다. 이처럼 과자의 양에 대한 집요한 탐구와 공 들인 풍자가 이어지는 것은 인간의 삶에서 과자의 역할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사실, 과자를 먹지 않아도 사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밀가루 혹은 감자를 혼합식용유로 튀기고 조미가공염이나 정제당을 더한 과자의 해악에 대해서는 이미 수없이 논의된 바 있다. 과자는 살을 찌우고, 이를 썩게 만들기 쉬우며, 과자에 든 인공화학물질은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달고 짭짤하고 고소한 맛, 부드럽고 파삭거리는 식감에 유혹당해 과자 봉지를 뜯을 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신선한 재료도, 균형 잡힌 영양도 아닌 오로지 ‘먹는 즐거움’이고 이 욕망을 충분히 누리기 위해 “질소 대신 과자를!”을 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산 과자의 미래’ 영상 중.

그러나 ‘질소 과자’는 변하지 않는다. 지난해 환경부는 ‘제품의 포장재질·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을 개정해 공기를 주입하는 1차 포장의 경우 포장공간 비율을 35% 이하로 설정해 이를 위반할 경우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고, 올봄에는 지상파 뉴스에서도 과자의 과대포장 문제가 제기되었지만 제조사들은 포장을 혁신하는 대신 “제품 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가격은 오르고, 포장은 커지거나 그대로인데, 과자의 양만 줄어드는 기이한 상황. 과자 시장을 사실상 과점하고 소비자들의 비판에 꿈쩍하지 않는 몇몇 대기업을 향해 평범한 소비자가 할 수 있는 대처는 별로 없다. 단지 앉아서 ‘호갱님(호구+고객님을 줄인 말로, 만만하게 취급당하는 소비자를 의미함)’이 되고 싶지 않은 소비자들은 ‘드립’으로 의사를 표시한다. 이 추세로 가다간 5천 년 뒤쯤 과자의 포장이 지구보다 커질 수도 있다는 ‘국산 과자의 미래’ 영상이 화제가 되고 ‘고잉창렬호’가 한강을 횡단한 것은 ‘질소 과자’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극에 다다를 즈음 일어난 사건이다.

그래서 국산 과자에 대한 불신이 수입 과자에 대한 선호로 이어지고 있는 최근의 분위기가 시장에 끼칠 영향을 예측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관세청이 지난 7월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13년 우리나라의 전체 과자 수입은 2003년 대비 10년 사이 2.8배(1억 5,742만 달러→4억 3,630만 달러) 증가했으며 연평균 10%가 넘는 상승폭을 보이고 있다. 올해 레드 버켓을 비롯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수입 과자 할인점, 올리브영과 왓슨스 등 드럭 스토어, 그리고 아이허브를 비롯한 해외 직구 사이트에서도 다양한 수입 과자를 살 수 있다. 대형마트에서도 국산 과자와 수입 과자를 나란히 진열하거나 눈에 띄는 곳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물론 수입 과자라 해서 모두 값싸고 양 많고 ‘양심적으로’ 포장된 제품은 아닐 것이다. 최근 ‘서양의 질소칩’이라 불리며 화제가 된 영상에는 감자칩 봉지를 뜯자마자 질소의 토네이도가 소비자의 얼굴을 향해 불어닥치는 코믹한 모습이 담겨 있다. 또한 국산 과자의 맛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초반의 호기심을 넘어 앞으로 꾸준히 수입 과자를 구매하게 될지 여부도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질소 과자’의 대체재가 시장에 점점 더 많이 풀리고 있으며, ‘드립’에도 물린 소비자들이 그쪽을 향해 슬슬 눈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1,500원짜리 과자 한 봉지를 뜯었을 뿐인데 ‘호갱님’이 된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은 이들의 엑소더스가 이미 시작된 것이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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