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손아섭, 지금 이 순간만을 사는 남자

2014.10.06

손아섭에게 초구란? 언젠가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프로야구 스타 특집 편이 성사된다면 이 질문을 꼭 던져야 하지 않을까? 지난 2011년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와 SK 와이번스의 플레이오프 1차전 9회말 1사 만루 상황에서 초구를 받아쳐 병살타를 친 아픈 기억 이후 손아섭과 초구는 뗄 수 없는 연관검색어가 되었지만 꼭 그 때문만은 아니다. 아쉬운 기억과는 별개로 올 시즌 초구를 쳤을 때의 타율이 4할 5푼에 달하지만 그것 때문만도 아니다. 스스로 “성급한 공격과 과감한 공격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특유의 과감한 성격을 초구 공략이 가장 잘 보여주지만 이 역시 조금은 부족한 설명이다. 그의 초구 공략에는 무엇보다 스타플레이어답지 않은 절박함이 있다.

아이 아 땅이름 섭, 아섭(兒葉). 2009년, 원래 이름 손광민을 버리고 얻은 이 이름에 대해 손아섭 스스로 “좋은 뜻으로 해석하면 땅 위에서 가장 야구를 잘하는 아이”라고 말한 뒤로 각 매체들에서 무분별하게 이름의 뜻을 ‘땅 위에서 최고’라고 퍼뜨리고 있지만, 사실 이 이름의 뜻 어디에도 그러한 기세등등함은 없다. 단지 “떨어질 곳이 없는 상황이라” 개명을 해서라도 성적과 실력이 좋아지면 좋겠다는 젊은 선수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만이 있을 뿐이다. 고등학생 시절 부산고의 이치로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타격 감각을 보여줬지만, 정작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2차 지명 4라운드에서나 지목되며 1군에서 단 네 경기에만 출장할 수 있던 데뷔 첫해는 슈퍼루키의 평탄한 프로 정복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여 이듬해 경험한 3할 타율과 롯데 자이언츠의 가을 야구는 앞으로의 탄탄대로를 기약하는 교두보가 아닌 아득바득 수성해야 할 고지에 가까웠다.

2012년 158개로 시즌 최다 안타를 기록한 이후 올해까지 계속해서 타율과 안타 기록에서 리그 최정상을 지키고 있지만, 그에게서 과거 양준혁, 이병규, 혹은 비슷한 세대의 김현수 같은 천재의 이미지보다는 악바리의 모습이 떠오르는 건 그래서다. 단순히 재능이나 근성의 유무를 말하는 건 아니다. 손아섭도 뛰어난 재능이 있고, 이병규와 양준혁도 엄청난 근성과 공격적인 성향의 소유자다. 초구 공략을 좋아하는 것도 비슷하다. 다만 손아섭의 타격에는 방망이를 거꾸로 쥐어도 3할을 쳐낼 것 같은 대가의 여유로움보다는 지금 물러서면 끝장이라는 다급함이 있다. 한창 타격 성적이 좋을 때조차 그에게는 나쁜 공에 자주 방망이가 나가는 배드볼 히터라는 비난이 따른다. 안타 수에 비해 타점이, 평균 타율에 비해 득점권 타율이 조금 낮은 것에 대해 성급한 게 문제라는 분석도 뒤따른다. 앞서의 2011년 플레이오프 1차전 병살타가 두고두고 회자되는 건 극적인 아쉬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손아섭의 부족한 점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 장점과 단점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메이저리그의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는 <타격의 과학>에서 ‘본 적이 없는 공은 치지 않는다’면서 초구를 거르고 투수에 대한 데이터를 쌓는 것의 유리함에 대해 설파한 바 있다. 현대 야구에서 초구를 공략할 때 출루율이 더 높아진다는 통계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이야기다. 타격에 있어 무엇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테드 윌리엄스가 투수와의 수 싸움에서 앞서 나가며 카운터를 날리는 제왕의 공격을 보여준다면, 손아섭은 뒤를 보지 않고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기회에 어떻게든 혼신의 힘을 다한 일격을 꽂아 넣는다. 유려하진 않지만 어쨌건 당하는 입장에서는 아프다. ‘일구이무(一球二無)’, 즉 두 번째 공은 없으며 그 순간마다 마지막처럼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야구 철학을 지닌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이 유독 손아섭에 대해 “우리나라 선수 중 진정한 프로가 아닌가 싶다”며 높게 평가한 건 그래서 흥미롭다. 손아섭의 플레이야말로 ‘일구이무’다. 아무리 초구 공략 때문에 패배의 원흉이 되어 비난을 들어도 좋아하는 코스의 공이 온다면 뒤를 생각하지 않고 그 순간 안타를 만들어내기 위한 최선의 스윙을 한다. 아슬아슬한 내야 타구가 나오면 역시 아무것도 보지 않고 오직 1루만을 향해 전력 질주한다. 어쨌든 한 루 한 루를 차지해야 점수에 근접하는 야구의 법칙 안에서, 손아섭의 진격은 자이언츠의 승리를 위한 가장 중요한 발판이 된다.

그래서 손아섭은 당장 프로야구 최고의 선수는 아닐지언정, 가장 치열하게 싸우는 선수라 할 수 있다. 이번 공을 놓치면 다음 공을, 이번 타석을 놓치면 다음 타석을, 오늘 경기를 놓치면 다음 경기를 잡으면 된다는 ‘그깟 공놀이’의 느슨함이, 그의 플레이에는 없다. 매 순간 전투를 치르는 듯한 비장함이 있을 뿐이다. 갈수록 야성을 잃어가는 현대 스포츠에서 그의 맹수 같은 존재감은 유독 빛난다. 여전히 불안함이 묻어나는 플레이가 자신감 넘치는 선수의 그 어떤 플레이보다 강렬한 역설. 물론 시즌이 끝난 뒤 타격왕 타이틀은 누구 손에 쥐어질지, 또 다음 시즌에도 그가 꾸준한 활약을 펼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단지 손아섭은 그렇게 항상 현재를, 순간을 산다. 온 힘을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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