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의 거리>, 모두의 인생은 평범하다

2014.09.30

올해 들어 난생처음 겪게 된 몇 가지 사건들로 나는 한동안 꽤 힘든 시간을 보냈다. 사람에 대한 회의와 금전적 피해, 자책 등이 뒤섞여 막대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 전까지 경험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종류의 고통이었고, 그 고통의 일부는 분노로도 변질됐다. 누군가 내게 ‘잔인한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너도 잔인해져야 한다’고 말했을 때, 나는 괜히 비장해져선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그나마 괜찮아졌지만, 그땐 그저 모든 게 힘겨웠고 사람들과 마주하는 것도 꺼려졌다.

그즈음에 우연히 JTBC <유나의 거리>를 보게 되었다. 그 힘든 상황에서 어찌 드라마가 눈에 들어올 수 있었냐고 묻는다면, 그 시간이 왠지 위로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자기를 떠난 엄마에 대한 원망과 복수심으로 소매치기가 되어 살아가는 강유나(김옥빈)와 남을 위해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늘 손해 보듯 지내는 김창만(이희준)의 모습을 보면서, 나만 힘들고 불행한 것 같다는 착각 내지 피해의식을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 다른 인물들을 보면서도 그랬다. 부유한 남자를 꼬셔 돈을 버는 꽃뱀 김미선(서유정), 유부녀와 야반도주해 살고 있는 페인트공 변칠복(김영웅), 한때 유명한 건달이었지만 지금은 후배에게 얹혀사는 독거노인 장도끼(정종준) 등 대부분은 그다지 낙관적이라 할 수 없는 환경에서 각자의 골칫거리들로 힘겨워하고 있었다. 고통의 총량을 저울질할 수는 없겠지만, 나보다 더 나은 상황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들을 보며 잠시나마 내 고통을 위안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나에게 <유나의 거리>가 위안거리로만 소비된 것은 물론 아니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직설적인 유나의 말투는, 비록 그게 뒤틀린 속마음에서 비롯한 것이라 해도 이 세상을 온몸으로 부딪쳐 살아내겠다는 깡처럼 들려 든든했다. 창만은 너무 바른 생활 사나이라 조금 갑갑하게도 보였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듯이 낙관적이고 올곧은 성격은 보고만 있어도 흐뭇했다. 가끔은 가슴을 쿡 찌르는 장면도 있었다. 한만복(이문식)의 아들 동민(백창민)은 어른들이 부추긴 친구와의 싸움을 피해 집에 들어가지 않았고, 사람들은 동민이 겁을 먹고 도망친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을 데리러 온 창만이 아저씨 앞에서 열 살배기 동민은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다영이 누나가 세희 불쌍하다고 그랬어요. 불쌍한 애랑 어떻게 싸워요. 어떻게 때릴 수가 있어요!”


결국 <유나의 거리>를 보며 위로받고 또 기분 좋게 울고 웃을 수 있었던 건, 이 작품이 되레 우리의 일상에서는 목격하기 힘든 세상의 어떤 단면들을 잘 집어낸 덕분인 것 같다. 드라마는 주인공인 유나와 창만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까지 상세하게 그려낸다. 처음엔 평범한 조연으로만 보이던 이들이 조금씩 가깝게 느껴지고,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유나와 창만은 더 선명한 캐릭터를 얻는다. 어딘가 모자라거나 진상으로 보이던 사람들이 알고 보면 그리 이상하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게 김운경 작가의 화법이다. 개개인의 직접적인 말과 행동으로 캐릭터를 설득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 간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통해 저마다의 사정을 서서히 이해시키는 방식.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타인을 알아가는 방법과도 닮았다. 시간을 두고 여러 사건을 거치며 찬찬히 알아가는 것은 누군가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길이니까.

유나가 마침내 엄마와 잘 지내게 될지, 다른 이들은 어떻게 살아갈지 딱히 궁금하지 않은 이유도 그런 맥락에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꾸역꾸역 살아가는 모습을 비교적 일상의 속도로 그려내고 있는 이 덤덤한 드라마에서, 극적인 완결성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내게 <유나의 거리>가 특별해 보이는 건, TV 드라마치고 평범한 인물들을 다뤄서가 아니라 특별한 인물에게서조차 평범한 모습들을 끄집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가장 평범한 모습이야말로 그의 진실이 담긴 측면이라 한다면, 저들의 평범한 일상을 통해 우리는 사람의 가장 깊은 곳들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셈이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평생 접하지 못했을 법한 사연들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고 듣는다는 건 소중한 경험임에 틀림없다. 이 드라마가 준 위로의 경험도 쉽게 잊진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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