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로>, 이것은 어린이판 세계문집인가?

2014.10.02
가면 쓴 영웅의 조상격으로 알려진 조로가 3년 만에 다시 나타났다. 제작사는 물론, 연출을 비롯한 대부분의 스태프들이 바뀌면서 2014년의 <조로>는 더 젊어졌고, 더 잔망스러워졌으며, 더 쉬워졌다. 샤이니의 키, 비스트의 양요섭, 휘성이 참여하면서 대중적 인지도도 더욱 높아졌다. 그래서 <조로>는 “VIVA EL ZORRO!”를 외칠만할까? 공연 칼럼니스트 지혜원과 ‘Reboot’ <조로>에 대해 살펴봤다.
 


<조로>
라이선스 재공연│2014.08.27.~10.26│충무아트홀 대극장
연출·각색: 왕용범│주요 배우: 김우형·휘성·키·양요섭(디에고/조로), 서지영·소냐(이네즈), 안시하·김여진(루이사), 조순창·박성환(라몬)
줄거리: 시민을 착취하는 라몬에 대항해 영웅으로 탄생하는 조로의 이야기


[한 눈에 보는 뮤지컬] 
장경진: 이것은 어린이판 세계문집인가? ★★☆ 

3년 만에 재공연 된 이번 <조로>에는 ‘Reboot’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영웅의 필요성을 역설하기 위해 스토리와 인물 관계는 물론, 가사와 무대 장치까지 모조리 다 바뀌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봐도 쉽고 화려하고 재밌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설명적으로 변한 스토리는 친절하나 지루하고, 자신의 롤이 명확한 인물들은 캐릭터를 단편적으로만 그려낸다. 연신 돌아가는 회전무대는 의미 없이 공간만 차지하고, 추가되거나 변화된 곡의 분위기는 본디 집시 킹스가 가진 특유의 톤과 이질적으로 튄다. 초연에서도 조로의 허허실실한 매력이 도드라졌지만, 2014년의 <조로>는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1차원적인 개그를 남발하며 관객에게 허탈함을 안긴다. 지금의 <조로>는 무대만의 매력을 보여주지도, 조로라는 영웅의 매력을 보여주지도 못한다. 마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세계전집을 보는 느낌이랄까. 

지혜원: 한국식 리바이벌? 당위성이 모호한 리뉴얼 ★★☆ 
굳이 초연과의 비교를 하지 않더라도 왕용범 연출의 <조로>는 많은 부분이 헐겁다. 영웅 서사가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영웅일 때의 모습과 그것을 감추고 있을 때의 모습이 마치 1인 2역처럼 전혀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는데 있다. 그런데 2014년의 <조로>는 영웅의 탄생과 활약상을 1막과 2막으로 나눠 보여주지만,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나 조로가 되어가는 디에고의 모습에서부터 극이 시작되기에 가면 뒤 모습이 딱히 주변인들에게 구축되지 않아 반전의 매력이 사라져버렸다. 보통 리바이벌이라고 하면 대본과 음악이 동일한 상태에서 연출과 디자인이 바뀌는 것을 의미하지만, 이 작품은 <조로2>라고 명명해야 할 만큼 너무 많은 것이 달라졌다. 올해만 해도 <모차르트!>, <두도시 이야기>, <조로>가 연출을 바꿔 공연했는데, 이 같은 경향은 오픈런을 하기에는 관객의 풀이 좁고, 무작정 새로운 라이선스 작품을 가져오기에는 여러 제약이 따르는 국내 공연시장의 상황에서 기인한다. 결국 어느 정도의 브랜드 인지도가 있는 작품을 수정해 과거에 본 사람들도 다시 관심을 갖게 하는 식이다. 한국적인 특수한 상황에서의 리바이벌 아니, 리뉴얼 프로덕션인 셈이다. 


[더 넓은 눈으로 보는 뮤지컬: 좋은 연출의 조건]  
장경진: 이름만 같은 전혀 다른 두 작품을 보고 있으니 좋은 연출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며칠 전에 본 노다 히데키의 연극 <반신>은 현실과 가상, 과거와 현재, 성격이 다른 두 쌍둥이, 극 내부와 극 외부 등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뒤섞여있는 굉장히 복잡한 작품이었다. 스토리를 따라가기도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기도 버거운 극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서로에게 붙어있는 기다란 끈을 끊어내지 못한 채로 빙글빙글 돌며 “혼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그 어떤 설명적 대사보다도 더 강하게 샴쌍둥이로 대변되는 인간관계의 고민과 아픔이 느껴졌다. 시·공간적인 제약으로 가득한 무대는 결국 어떤 상상력으로 인물의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하느냐가 중요하고, 그 가능성은 단순한 스토리의 전개가 아닌 의상, 무대, 음악, 조명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해야 한다. 

지혜원: 왕용범 연출은 <삼총사>, <잭 더 리퍼> 등의 작품을 한국적으로 각색해 나름의 흥행성적과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그의 연출 스타일이 극의 균형보다 관객의 감정선을 오히려 더 우선시 한다는 점에 있다. 연출은 텍스트와 관객을 무대 위 언어로 이어주는 역할을 하지만, 왕용범 연출의 경우 관객과의 소통이 쉽지 않은 장면이 있을 때 그 텍스트를 연출의 영역 안에서 풀어내기 보다는 아예 각색을 하는 경향이 짙다. 캐릭터와 따로 노는 유머는 혹시라도 지루해 할 관객들을 위한 지나친 장치가 아닐까? 장면들이 뚝뚝 끊어지거나 친절을 넘어 강요당하는 느낌이 드는 이유가 그래서일 거다. 무대연출가는 텍스트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어떻게 무대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한다. <빌리 엘리어트>의 ‘Angry Dance’ 신을 좋아하는데, 벽을 치며 탭댄스를 추는 빌리와 경찰들에 막힌 노동자들의 상황이 겹치면서 관객도 동시에 그 감정을 고스란히 느낀다. 이 작품의 주요 언어인 춤을 통해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빌리와 가족, 그들의 주변 사람들에게 당면한 상황과 심리를 유기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균형이 잘 잡힌 텍스트는 관객을 자연스레 무대로 끌어당긴다. 신선한 연출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뮤지컬 연출가의 풀이 어서 늘어나기를 기대해야할 것 같다.

사진제공. 엠뮤지컬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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