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청소의 요정

2014.10.02
사진제공. 청소요정 블로그

먼저 간 선배들이 후배들 앞에서 앓는 소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야 이거 힘든데 왜 하냐, 하지마 하지마 고생이야.” 웹툰계에서만 있는 일은 아니다. 결혼한 기혼남성들은 거의 대부분-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미혼자인 남성 동생에게 비슷한 류의 말을 하며, 입사 4년차 대리도 신입사원에게 자주 한다. 혹자는 이런 대사를 멋있다고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저런 종류의 대사가 이미 그 일에 익숙해진 베테랑의 풍모를 보여주기라고 하나보다. 하지만 솔직한 감상을 말하자면 대부분의 자조적인 언행이 그렇듯 저런 말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멋이 없다. 농담으로 쳐주더라도 재미 역시 없다.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결국 후배들 앞에 서서 “이거 하지 마라”는 자조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경우는 흔하다. 꿈에 부풀었던 신입사원, 신인작가, 시작되는 연인들, 신혼부부들이 이내 곧 매너리즘에 빠지고 기계적으로 출근하며 (혹은 데이트 하며) 주말만 기다리게 되는 변질의 과정. 애초에 그 일에 대한 환상이 없었던 사람은 차라리 괜찮지만 환상이 컸던 사람일수록 더욱 실망하게 되는 기이한 현상은 무엇 때문일까.

얼마 전 인터넷에서 ‘청소의 요정’으로 불리는 어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으로 더러운 집들을 거짓말처럼 말끔하게 청소해 놓는 신비로운 인물이다. 물론 돈을 받고 하는 일이지만 어딘가 좀 이상하다. 청소가 귀찮다고 적당히 지저분한 집을 의뢰하면 비싼 돈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지만 정말 정말 더러운 집은 더 싸게 청소해 준다. 더러울수록 청소비용이 저렴해진다는 것 같았다. 이럴 수가, 진짜 신기하지 않은가? 기존의 직업적 청소인이라면 당연히 더러울수록 돈을 더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 분은 그 반대인 것이다. 그 분의 블로그를 잘 들여다보면 이 사람은 청소와 정리 그 자체에서 순수한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다. 점점 깨끗하게 변해가는 공간에서 행복감을 만끽하는 것이 보인다. 틈틈이 정리와 수납에 관한 다양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일로서 하는 청소는 비싸지만 드라마틱한 상태변화를 줄 수 있는 끔찍한 공간은 즐거움의 대상이기에 저렴한 것이다. 순간적으로 새로운 종류의 직업이 탄생하는 순간을 본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종종 우리나라의 진로탐색 과정이 거꾸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즉, 뭔가 재미가 있거나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 일을 ‘하게 해줄 것 같은’ 직업을 먼저 찾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하고 싶은 어떤 일이 반드시 직업의 형태로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그건 어쩌면 기존의 직업 분류에는 조금씩 맞지 않는 모종의 행동일 수도 있다. 혹은 완전히 반대일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직업이라는 틀거리에 맞춰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끼워 맞춘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원래 희망하던 그 일은 실제 그 직업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화장 전 후의 여자친구처럼 ‘미묘한 차이가 아주 크게’ 있다. 이 순간이 바로 현실과의 조율 내지는 타협을 시작하는 순간이지만 정작 본인은 그것을 모른다. 그래놓고 나중에 현실이 자기 환상과 다르다며 자조적인 대사를 읊는 것이다.

반면에 가끔 보면 직업이라는 틀로 자신의 꿈을 잘라내고 깎아내고 덜어내어 가면서 첫 스텝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무작정 하고 싶은 일에 관한 모든 것을 일단 하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최초의 맛집 블로그 운영자가 되었고 혹은 여행 작가나 장난감 박물관의 관장들이 되었으며 청소의 요정이 되었다. 새로운 직업이 탄생하는 순간은 보통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이런 글을 쓸 때에 늘 걱정하는 것이지만, 나는 일반적인 회사 생활을 하는 다수의 삶 역시 진심으로 긍정한다. 기존에 있는 직업에 종사하며 그 안에서 새로운 행복감을 발견해 나아가는 사람들은 진정 위대하다. 그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이 행성의 귀한 종족이다. 그러나 어쩌면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사실 보통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직업이라는 개념으로 꿈을 재단하면서 시작하지 않은 편이 지속가능한 행복을 위해 더 유리하다. 참, 20대 시절까지 특강이나 행사에서 가면 늘상 ‘만화판은 거지같다’며 자조적인 어투로 만화가 왜 하려고 하냐던 선배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만화가가 되면 너무 좋아. 빨리 만화가 해’ 라며 용기를 주었던 유일한 선배 작가는 <덴마>의 양영순 형님이었다. 본인은 기억 못하겠지만 많이, 멋있었다.

이종범
<닥터 프로스트> 작가로 일 벌이길 좋아하는 참치형 만화가.
덕력과 잉여력의 위대함을 신봉하지만 정작 본인은 마감 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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