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 인섹이 중국행 비행기를 탄 이유

2014.10.02

“사실 한국 팀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시기가 맞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한 시즌 쉬게 되면 다음 시즌도 보장할 수 없잖아요”, “중국에서는 주전으로 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계기였어요.”(< e스포츠 인벤 >) 인섹(최인석)과 제로(윤경섭)가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 LOL >) 중국 게임단 로얄클럽으로 이적을 결정한 이유다. 인섹은 한국 최고의 정글러(< LOL > 포지션 중 하나)였고, 세계 3대 리신(< LOL > 챔피언 중 하나)으로 불릴 만큼 기량이 뛰어난 선수였다. 그러나 그는 올해 봄 시즌, 전 소속팀 KT Bullets가 8위에 그치고 연거푸 우승에 실패하면서 많이 지쳐 있었다. 그는 휴식을 원했지만 휴식은 곧 계약 연장 대신 종료로 이어졌다. 제로 역시 소속팀 KT Bullets의 전력 변경으로 식스맨(비주전)이 되면서 중국 입단을 결심했다.

인섹이나 제로처럼 해외 팀으로 소속을 옮긴 프로게이머 선수들은 최근 흔하게 볼 수 있다. < LOL > 프로게이머로는 세라프(신우영)가 북미의 CLG로, 헬리오스(신동진)가 북미의 EG에 입단했다. <스타크래프트 2>(이하 <스타 2>) 프로게이머 선수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고현석, 이동녕, 이종혁 등 많은 선수가 해외 게임단으로 입단했다. 해외로 가는 가장 큰 이유는 극심한 경쟁을 치를 수밖에 없는 e스포츠의 환경이다. JTBC <유자식 상팔자>에서 김동현이 “마치 축구선수처럼, 남자아이들이 한 번쯤 가져보는 꿈이 프로게이머다”라고 말할 만큼, 프로게이머는 10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전직 프로게이머 기욤 패트리가 “(프로게이머는) 2,000만 명 중에서 100여 명만 월급 받고 제대로 일”을 하고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말할 만큼 프로게이머가 되기란 쉽지 않다.

또한 <스타크래프트 1>의 인기에 비해 <스타 2>는 그만큼의 반응을 얻지 못했고, 승부조작 파문으로 규모 역시 확연히 줄었다. 비기업팀 위주의 연맹 게임단들이 해체하게 되면서, 재정난에 빠진 e스포츠연맹 역시 해체를 선언했다. 프로게이머들은 갈 곳을 잃었고, 남은 <스타 2> 프로게이머들은 <스타 2>가 인기 있는 해외로 진출한다. < LOL >의 경우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인기로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지만, 대기업의 후원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팀은 프로게이머 숫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이런 팀에 들어간다 해도 고용이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3년 이스포츠 실태조사>에 따르면 KT, SKT, 웅진 등에서 후원하는 프로팀에 소속되어 있는 프로게이머 103명 중 51.9%의 연봉은 1,200만 원 미만이었다. 프로게이머의 연봉이 실력이나 인기에 따라 천차만별이라지만, 대부분은 매우 낮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프로게이머의 새로운 주류로 떠오른 < LOL > 리그는 한국 프로게이머가 활동하기에 전혀 유리하지 않다. 토너먼트로 진행되는 챔피언스 리그나 7개 팀이 참가하는 풀리그를 치르는 마스터즈는 경쟁이 너무 치열하고, 선수들의 기량은 상향평준화가 됐다. 시합에 져 조기 탈락이라도 할 경우 3개월가량을 쉬어야 하고, 매 시즌별로 진행되는 팀 개편으로 새로운 팀원들에 적응해가며 성적을 내야 한다. 시즌별 성적에 따라 선수들이 계속 바뀌다 보니 시즌제나 6개월짜리 계약도 흔하다. 한국 프로게이머는 ‘정규직’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력은 세계적인 수준이고, 그만큼 경쟁은 치열하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오히려 프로게이머들의 고용 안정은 전혀 장담할 수 없는 역설적인 상황이 된 것이다. 왕성하게 활동하는 선수라도 시즌 도중에 팀에서 나오게 되면 은퇴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결국 갈 곳을 잃은 프로게이머들은 해외에서 자신의 일자리를 알아본다. 그런데, 해외 게임 팀은 한국 프로게이머들에게 고용 안정성과 급여 양쪽에서 나은 조건을 제시한다. 인섹은 로얄클럽과의 계약에 대해 “구체적인 금액을 밝힐 수 없지만 한국에 있을 때보다 높은 연봉을 받았다. 중국 팀에서 먼저 1년 계약을 얘기해서 놀랐다”고 말했다. 안정적인 지원 덕분인지 인섹과 함께 로얄클럽을 갔던 제로는 전보다 기량이 좋아졌고, 온게임넷 <트루롤쇼>에 출연한 인섹에게 MC 강민은 “한국에 있을 때보다 얼굴이 훨씬 좋아졌다”고 말할 정도다.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하거나 고용 안정을 보장하는 해외 팀이 급여까지 더 높은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프로게이머들은 임요환과 홍진호처럼 한국에서 성공하기를 꿈꾸는 것보다, 해외 진출이 오히려 현실적인 대안이 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

<2013년 이스포츠 실태조사>에서 프로게이머 응답자 중 38.9%가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했다. 경쟁은 치열해지고, 그 경쟁을 견딜 수 없거나 열악한 근로 조건을 견디지 못하면 프로게이머의 길을 포기하거나 해외로 가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나마 해외 진출이 가능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은 프로게이머는 소수고, 그것도 < LOL >처럼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게임이어야 가능한 선택지다. 남은 수많은 프로게이머나 지망생들은 가혹할 정도의 경쟁 체제를 견뎌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는 사람들은 많고, 경쟁은 극단적일 만큼 심하고, 일하는 환경은 소수의 성공한 이들을 제외하면 지극히 열악하다. 그리고, 그것이 힘든 이들은 해외에서 살길을 찾기 시작한다. 20대 프로게이머가 자의가 아닌 타의로 더 넓은 세상을 찾아야 하는 시대. 이제 청년이 국내에서 성공한다는 것, 심지어 안정적인 직장을 갖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꿈이 되어가고 있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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