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선과 선원들 “<동물>은 ‘덕질’하듯 들어줬으면 좋겠다”

2014.10.01
단편선은 혼자서 여러 가지 일들을 벌여왔다. 작사·작곡은 물론 노래, 기타 연주, 앨범 녹음과 더불어 <처녀>를 발표했을 땐 건장한 몸에 꽃무늬 원피스를 걸치고 여장을 한 채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가 권지영(바이올린), 장도혁(퍼커션), 최우영(베이스)과 함께 사이키델릭 포크 밴드 ‘단편선과 선원들’을 결성한 것은 더더욱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활동해온 장르도, 실제 성격도 다른 이들은 지난 8월 <동물>이라는 첫 번째 결과물을 내놓았다. 거기에는 장르와 정체성을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낯선 곡들이 가득하고, 네 명의 연주와 목소리는 때론 고요하게, 때론 거칠게 거센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앨범 밖으로 풀려난 단편선과 선원들은 사나운 동물보다 귀여운 동물에 가깝다.
최우영, 권지영, 단편선, 장도혁. (왼쪽부터)

음악이 불편하고 낯선데, 이상하게 끌린다는 평가들이 많다.
도혁
: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반응들이다. 아무래도 팝만 듣다가 단편선의 음악을 처음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럴 것 같다.
단편선: 생각보다 악플이 적어서 다행이었다. 생긴 거에 대한 악플밖에 없더라. ‘왜 저러고 나오냐’ 이런 거. (웃음)

단편선의 솔로 활동 때와는 반응이 확실히 다른 것 같다. 쇼케이스 티켓이 매진됐고, 앨범도 300장이나 선판매 됐는데,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단편선
: 지난해 솔로 앨범 <처녀>를 냈을 땐 판매량보다 ‘어그로’를 끌어보자는 의도였다. 그래서 여장도 하고, 모든 일들을 DIY로 처리하면서 일부러 언더그라운드 느낌을 좀 더 강조했다. 이번엔 앨범을 준비하면서 신경을 정말 많이 썼다. 그중 하나는 멤버들에게 어떻게 캐릭터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인가였다. 음원이 나오기 다섯 달 전부터 사진가, 디자이너와 계속 미팅을 하면서 콘셉트를 논의했지. 아마 그런 부분들이 명확해져서 반응이 좀 더 있지 않나 생각한다.

앨범 부클릿 사진이 특히 인상적인데, 어떤 느낌을 살리려고 한 건가.
단편선
: 사진을 맡은 박정근이 영화 <씬시티>나 <킬 빌> 같은 걸 이야기했다. 캐릭터성이 부각돼 있고 색채가 화려한 영화들을 참조해보자고 한 거다. 그리고 내 생각에 (최)우영 씨는 과묵한 경비원, (권)지영 씨는 소녀 닌자 같은 느낌이면 좋을 것 같았다. 박정근이 나한테는 선장처럼 좀 더 남성적이고 위엄 있는 분위기로 가자고 하더라. 마지막으로 내가 <처녀> 때 보여줬던 여성성은 아예 장도혁에게 ‘몰빵’해버리자고 생각했다. BL물처럼. (웃음) 사진을 보면 뭔가 굴욕적으로 다 엎드려서 찍었다. 그래서 도혁 씨는 자신의 콘셉트에 불만이 좀 있었다.
장도혁: 딱히 하고 싶은 건 없었지만, 여자같이 나오는 건 싫었다. 하지만 계속 그런 걸 시키길래 다 내려놨다.
권지영: 단편선이 처음에 나한테는 공주 같은 캐릭터를 제안했다. 아줌마처럼 만들 것 같은 느낌이어서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 (웃음) 다행히 의상 담당이었던 아를 씨가 디자인해온 것들이 몇 가지 있어서 다른 걸로 고를 수 있었다.

이렇게 콘셉트를 꼼꼼하게 잡고 가는 경우가 드물지 않나.
장도혁
: 그래서 처음엔 신기했다. 우리도 다른 밴드로서 작업을 많이 해봤지만, 소속사가 있어도 이렇게 디테일하기는 힘들다. 퍼포먼스나 의상 등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는 밴드들이 대부분이기도 하고. 그런데 단편선은 이런 부분을 상당히 높은 순위에 둔다. 물론 음악과 순위가 바뀌면 위험하겠지만, 적절한 비율로 잘 하더라. 본인에게 의지가 있고 인맥도 넓어서 고생한 만큼 좋은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

다들 원래 친한 사이가 아니라 EBS <스페이스 공감>(이하 <공감>) 때문에 뭉치게 됐다고 들었다.
단편선
: 지난해 여름쯤, 내가 트위터에 “<스페이스 공감> 3초 준다 당장 연락해”라는 글을 남긴 적이 있다. 이후 정말로 <공감> 측에서 섭외 요청이 왔는데, 혼자 나가면 없어 보일 것 같았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지영 씨와 도혁 씨한테 바로 전화를 걸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바이올린은 지영 씨가 최고, 퍼커션은 도혁 씨가 최고니까. 망설임은 전혀 없었다. 이 사람들은 나를 잘 모르지만 왠지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권지영: 그날 전화를 받고 좀 당황하긴 했다. 하지만 장도혁이랑 한다고 해서 무조건 오케이했다. 같은 날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장도혁의 연주에 반했었거든. 단편선은 우리 연주에 반했던 거고. (웃음)
장도혁: 내 경우엔 다른 팀에서도 세션을 부탁할 때가 있으니까 그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그냥 하자고 하고, 또 페이를 주니까 한 거지. 나는 그 전까지 단편선의 음악을 들어본 적도 거의 없고, 팝을 하던 사람이라 이런 류의 음악은 해본 적도 없었다. 당연히 앨범까진 상상도 안 했다. 아마 이 사람(단편선)도 그 이후는 전혀 계획이 없었을 거다.
단편선: 돈 주고 빨리 보내려고 했지. (웃음)

합주 때문에 음악을 들으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나.
장도혁
: 일단 곡이 길고 어려웠다. 곡 자체에 우리 같은 악기가 있어서 그대로 카피하면 쉬울 텐데, 편곡을 새로 다 같이 해야 했거든. 사실 그게 좀 괜찮았던 거다. 만약에 전자였다면, 주어진 걸 학습만 하면 됐겠지. 그런데 곡 자체를 해석하고 악기를 조정하면서 같이 만들어나가니까 그 자체가 재밌었다.
권지영: 단편선이 원래 혼자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던 사람이라 자기만의 박자가 있더라. 맞춰가는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다. 배운 게 있다면, 나는 원래 즉흥연주를 전혀 못 했다. 클래식 연주자이기도 했고, 밴드나 세션을 하면서도 즉흥연주를 해달라고 하면 거절해왔다. 그런데 단편선이 그걸 해달라는 거다. 처음 해봤는데 다행히 듣기에 나쁘지 않다고 하더라. 내 한계를 깼다는 느낌이었다.


앨범 <동물> 수록곡 대부분이 단편선 혼자 만들고 불렀던 곡들이다. 네 명이 또 다른 음악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앨범의 지향점을 정확하게 잡아야 했을 텐데.
최우영
: 소리가 분명한 음악을 만들려고 하는 게 제일 컸다. 녹음을 해서 아방가르드하게 혹은 실험적으로 만드는 건, 아티스트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쉬운 일이다. 그냥 다들 감성적으로 이해해버리거든. 선명하게 만들고 악기 소리를 분리시키는 건 오히려 더 테크니컬한 작업이다. 언더그라운드이기 때문에 못해서 안 한다는 이야기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편곡하는 과정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을 했나.
단편선
: 멍청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동양적인 느낌과 서양적인 느낌을 같이 가져가면 좋겠어요” 이 정도까지만 공유했다. 그 이후엔 각자 동상이몽이었겠지. 사실 앨범 만들기 전부터 공연을 많이 했기 때문에 서로 말하지 않아도 뭘 하고 있는지 점점 잘 알게 됐다. 그래서 음반을 작업하는 과정에서도 크게 싸운 적은 없었다. 이미 우리가 어떤 소리를 내는지 다 알고 있었으니까. 편곡에 걸린 시간은 수록곡마다 달랐다. ‘공’은 굉장히 빨리 끝났고, ‘노란방’은 6~7개월 정도 걸렸다.
장도혁: ‘노란방’의 경우엔 밀도감이 너무 높았다. 연주도 너무 힘들고, 손을 어떻게 대야 할지 모르겠더라. 여러 가지 버전을 다 해봤는데 결국엔 ‘빠르고 신나게’가 답이란 걸 알게 됐다. (웃음)

솔로로 활동하다가 팀을 꾸리면서 배운 점들도 많겠다.
단편선
: 팀으로 활동하는 게 굉장히 좋다. 베이스나 퍼커션, 바이올린 모두 내가 연주할 수 있는 악기는 아니다. 때문에 확실히 뭔가 확장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음악을 같이 만들면서 사람에 대해서도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 점에서 ‘음악을 통해서 사람에 대한 믿음 역시 나아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앨범은 잘 팔려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이 사람들을 끌어들인 건데, 망하면 이들의 인생에 갚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거니까. 한편으로 듣는 사람들에겐 우리 음반이 교과서까진 안 돼도 ‘아이템풀’ 같은 학습지가 됐으면 한다.

춤출 수 있는 앨범을 만들겠다는 목표는 달성한 것 같나.
단편선
: 아직 스탠딩 공연을 한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웃음) 앞으로는 더 춤추기 좋으면서 더 복잡한 음악을 만들려고 한다. 더 어려워질 거다.
장도혁: 내가 이 팀을 하는 이유 중에는 단편선의 곡이 재밌기 때문도 있다. 냉정하게 말해서 만약 단편선이 시답잖은 곡을 가져온다, 그러면 나머지 세 명의 성격상 가차 없이 차버릴 거다. 그런데 늘 우릴 만족시킬 만한 곡을 써 온다. 아직은 단편선의 재능이 바닥나지 않은 것 같다. 
편선: 우리 넷 다 못하는 걸 너무 싫어한다. 합주할 때도 결과물이 별로면 짜증이 나는데, 반대로 그건 잘하면 재미있다는 뜻이다. 그게 굉장히 좋았다. 물론 못하는데 재밌을 수도 있지만, 나는 못하면서 즐겁고 싶진 않다.
장도: 음악 잘하는 애라는 말을 듣고 싶구나?
단편: 내적 수련, 수양 같은 거야.
최우: 천재 소리 듣고 싶은 건 아니죠? (웃음)

사진제공. 단편선과 선원들

여전히 <동물>이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가이드를 줄 수 있을까.
장도혁
: 이수만 씨가 가수로 앨범을 냈을 때,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앨범은 크게 들을수록 좋습니다.’ 좀 크게 들어 달라. 음악은 보통 크게 들을수록 좋다.
지영: 반복해서 많이 들어줬으면 좋겠다. 디테일한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기 때문에 들으면 들을수록 새로운 소리들이 들릴 거다.
편선: 나는 음악이든 앨범 재킷 사진이든 ‘모에’ 요소를 알게 모르게 많이 심어놓는 편이다. 그런 것들을 약간 신경 쓰면서 ‘덕질’하듯 들으면 그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가장 궁금했던 걸 묻겠다. 앨범 제목은 왜 <동물>인가.
단편선
: 어느 날 우리끼리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지영 누나는 쥐, 우영 씨는 낙타, 나는 돼지, 도혁 씨는 도마뱀을 닮았다고. 그래서 <쥐, 낙타, 돼지, 도마뱀>이라는 제목으로 음반을 만들까 했는데, 매니저가 말려서 <동물>이 됐다.

역시 음악과는 큰 상관이 없었던 거네.
단편선
: 결과적으로는 연결된 것 같다. 음반은 일종의 뜻과 가치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곡은 난폭하게 움직이는 동물들을 건조하게 보여주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카메라를 떠올리면서 작업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건 혼자 생각한 건데, 동물(animal)이란 말의 어원이 원래 애니미즘에서 나온 것이지 않나. 물체에 혼을 불어넣어 인공적으로 움직이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런 걸 생각하면서 작업하는 게 재미있었다. 마치 샤이니의 ‘Everybody’ 안무처럼. (웃음)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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