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성폭력, ‘거절’을 ‘선택’할 수 있습니까

2014.09.29

스물다섯에 들어간 첫 직장의 첫 회식 마지막 코스는 두 명의 사십 대 남성과 두 명의 ‘막내’ 여직원이 함께 노래방에 가는 것이었다. 불콰하게 취해 함께 노래를 부르자고 손짓하는 그들과 밀폐된 공간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시키는 대로 카운터에 시간 연장을 요청했다. 꿈을 안고 시작한 사회생활을 처음부터 망칠 수는 없었다. 그나마도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동기들은 스무 살 이상 많은 기혼남 상사로부터 아내와의 성생활에 문제가 있다느니, 네가 노출 있는 옷을 입은 걸 보니 흥분된다느니 하는 말에 억지웃음을 띠며 참고 견뎠다. 뒤에서는 그들을 욕했지만 마치 숨 쉬듯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성희롱에 정색이라도 했다간 이 길은 끝이었다. 사십 대 고참 선배도 술자리에서 블루스를 추자는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고, 우리는 모두 계약서 한 장 없는 파리 목숨이었다.

일 년여가 흐른 뒤, 일을 그만뒀다. 중학생 딸의 과외 선생이 오는 날마다 늦게 퇴근해야 한다던 부장은 종종 팀에서 가장 어린 나를 흡연실로 데려가 옆에 앉혀둔 채 담배를 피웠다. 전에 일하던 여직원에게 비싼 레스토랑에서 밥을 사주었다느니, 그 애가 폭 안겨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어왔다느니 하는 게 그의 주된 레퍼토리였다. 무슨 의미로 하는 얘기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싹싹한 막내를 연기했지만, 하루는 그러지 못했다. 단둘이 있는 것이 싫어 다른 핑계로 자리를 뜨려던 내 손목을 부장이 덥석 잡아끈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거세게 손을 뿌리치고 화난 얼굴을 감추지 못한 채 돌아섰다. 그 후 부장은 내게 눈에 띄게 데면데면하게 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대책 없이 회사를 나왔다.

최근 상무의 수습사원 성추행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빚고 있는 출판사 쌤앤파커스의 대표이사는 사건 발생 후 피해자를 포함한 임직원들 앞에서 “어떤 것을 빌미로 성을 요구하는 사람은 물론 충분히 거절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응하는 사람 역시 징계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음을 인정했다. 그런데 직장 내 성폭력의 피해자가 ‘충분히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완성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의 사회적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을 수도 있는 이의 불쾌한 발언에 반발하거나 신체적 접촉을 거부했을 때, 매일 얼굴을 마주하며 부딪히게 될 비아냥거림과 냉담한 태도를 개의치 않고 버틸 수 있는 정신력? 오늘 당장 일을 그만둬도 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의 재력? 자신이 꿈꾸어온 분야에서 구축한 커리어가 갑자기 무너져도 다시 시작하거나 다른 분야로 옮겨 갈 수 있는 기회? 부장의 손길을 ‘충분히 거절할 수’ 있었던 나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나에겐 부양해야 할 가족도 매달 내야 할 월세도 없었고, 다행히 그 일에 대한 애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더 이상 부당한 대우를 참지 않기로 한 ‘선택’은 실업자가 된 딸을 당분간 먹여 살려줄 수 있는 부모를 만난 덕분에 가능했다.

그래서 두 번째 일자리를 구하던 당시 나의 가장 간절한 바람이자 새 직장에 대한 절대적 기준은 높은 연봉도 무엇도 아닌 ‘성폭력을 견디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다. 특별한 스펙을 요구하지 않는 직종에서 비정규직으로 일을 시작했던 바람에 상황이 유독 나빴던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그렇지만도 않았다. 유명 외국계 기업, 대형 로펌, 젊은 인재를 아낀다는 이미지 광고를 수없이 틀어대는 대기업에서도 성희롱과 성추행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낮에도 밤에도 식당에서도 룸살롱에서도 안마가, 뽀뽀가, 블루스가 행해졌다. 열에 여덟, 아홉은 참는다 했고 문제를 제기한 한둘은 “원래 그런 분이니 이해해드려라” 따위의 사측 대응에 말을 잃었다. 가해자로부터 사과를 받는 것도, 가해자가 징계를 받게 하는 것도 어렵다. 아니, 애초에 가해자가 잘못을 인지하게 만드는 것조차 쉽지 않다. 견딜 수 없어 직장을 그만두기라도 하면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한데 취업 시장은 꽁꽁 얼어붙은 데다 심지어 어딜 가도 성폭력이 만연한 직장 문화는 크게 다르지 않다. 여성은 노동 시장에 뛰어드는 순간부터 만원 버스 안이나 어두운 골목에서와는 또 다른 차원의 위험에 상시적으로 노출된다. 이런 사회에서 피해자에게 무슨 선택권이 얼마나 존재할까. 결국 대부분의 여성 노동자는 삶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토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자신의 고통과 분노와 수치심을 억누르고 애써 외면하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쌤앤파커스 상무 성추행 사건을 수면 위로 올려놓은 피해자 A씨에게, 정세랑 작가는 지난 18일 다음과 같은 지지의 글을 보냈다. “당신은 깃발을 드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깃대는 생각보다 무겁고 휘청이는 물건입니다. 당신의 몸무게가 줄어들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래도 팔 힘은 오히려 좋아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당신은 각오가 되어 있고 당신이 원하는 승리는 간명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끔 깃발을 대신 들어주고 싶습니다.” 사측을 향한 비난 여론이 이어지자 22일 쌤앤파커스 측은 “부끄럽고 또 부끄럽습니다. 피해자께 사죄드립니다”라는 내용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물론 이 막연하고 모호하기 짝이 없는 글을 ‘승리’의 징표로 삼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출판계만이 아니라 도처에 널린 돌부리처럼 흔해 빠진 성폭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약자의 발을 잡아챈다. 다만 이 사건이 더 많은 ‘깃발들’의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또한 이것이 깃발을 대신 들어줄 ‘우리들’의 출발점이 될 수 있기를 믿고 싶을 뿐이다. 사실 그다지 낙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세상에서 계속 일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에게, 달리 무슨 선택지가 존재할 수 있겠나.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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