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눈

2014.09.26

영화 <명량>이 1800만 관객 언저리에서 마감할 모양이다. 전대미문의 스코어가 나오다 보니 흥행 원인 분석도 수없이 쏟아졌다. 흥행 요소를 영화 내에서 찾든(“전투신이 끝내준다”) 사회적 맥락에서 찾든(“리더십에 목말랐다”) 많은 분석이 한 가지 암묵적인 가정을 깔고 있다. “1800만 영화는 180만 영화보다 흥행요소가 열 배 많을 것이다”라는 가정. 그래서 열 배 강력한 흥행원인을 찾아야 성공한 분석이라는 가정. 당연한 얘기 같지만, 사실은 그리 당연하지 않다.

영화 흥행을 좌우한다는 장년층의 손마다 스마트폰이 들렸고 어김없이 카카오톡이 깔렸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장년층 네트워크의 크기와 밀도가 혁명 수준으로 바뀌었다. 네트워크의 속성이 바뀌면 무언가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난다. 정규분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아주 특이하고 괴상하고 커다란 예외가, 밀도 높은 네트워크의 세계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한다. 나는 영화시장에서 정말로 결정적인 변화는 ‘소비자가 연결된 방식’에서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크고 밀도 높은 네트워크에서 아이디어는 전염된다. 네트워크의 일정한 수 이상이 어떤 생각을 공유하면, 그때부터는 서로가 서로를 강화하면서 아이디어가 퍼져나간다. 핵심은 ‘일정한 수 이상’이다. 절대다수의 아이디어는 이 문턱값을 넘기지 못하고 네트워크에서 소멸한다. 하지만 문턱값, 다시 말해 서로가 서로를 강화하는 피드백이 걸리는 값을 넘긴 극소수 아이디어는 네트워크를 타고 끝도 없이 증폭한다. 그러니까 이런 얘기다. <명량>은 180만 영화보다 열 배 좋을 필요가 없다. 문턱값을 넘길 만큼만 좋으면 된다.

개체가 아니라 네트워크에 주목하면 전혀 보지 못하던 세상이 보인다. 복잡계 네트워크 과학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작동원리를 설명하는 매력 넘치는 학문이다. 정치인이라면 네트워크를 알아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어디서 어떤 영향을 받고 투표 결정을 내리는지 알 수 있다. 보건 당국은 네트워크를 알아야 한다. 전염병 네트워크의 속성을 알면 그걸 차단할 방법도 알 수 있다. 테러리스트라면 네트워크를 알아야 한다. 어느 공항을 마비시켜야 효과가 가장 큰지 알 수 있으니까. 이 리스트는 끝도 없이 늘릴 수 있다.

이 분야를 다룬 좋은 책이 많지만 아무래도 이 책을 첫손에 꼽아야겠다. 네트워크 과학의 개척자 알버트 라즐로 바라바시의 <링크>를 처음 읽던 저릿저릿한 기분을 잊지 못한다. 이 분야가 낯선 일반인 눈높이에서부터 출발해서 네트워크라는 전혀 새로운 렌즈를 씌워 주는데, 이 정도 대가가 이런 친절함이라니 황송할 지경이다. 좋은 책은 모르던 사실을 알게 해준다. 진정으로 탁월한 책은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보도록 해 준다. 탁월한 책은 정말로 흔치 않다. 이 책은 그 흔치 않은 목록에서도 윗자리를 차지할 만하다.

천관율
<시사IN> 기자. 6년째 정치 기사를 쓰고 있다. 경제팀에 보내자니 산수가 안 되고, 국제팀을 시키려니 영어가 젬병이고, 문화면을 맡기에는 감수성이 메말랐고, 사건기자를 만들기엔 치명적으로 게으르다고 조직이 판단했다. 내막 모르는 어른들은 인정받아서 오래 있는 줄 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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