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잘못 보낸 손편지

2014.09.17

이병헌이 얼마 전 자필로 쓴 편지는 근래 본 가장 구차한 글이었다. 스물네 살 어린 여자에게 “첫 경험은 언제냐” 같은 말을 한 것은 “덕이 부족한 경솔함”이 되었고, 글 시작부터 “머리도 마음도 그 역할을 못 할 만큼 그저 숨만 쉬며 지내고” 있다며 자신이 괴롭다고 말한다. “계획적인 일이었건 협박을 당했건”이라는 말로 자신이 계획적인 협박에 당한 것이라는 뉘앙스도 빼놓지 않는다. 잘못은 애매한 단어로 슬쩍 넘어가고, 상대방의 잘못은 구체적으로 표현하며, 힘든 처지를 강조한다.

이병헌이 협박을 받았다는 말 앞에는 “성희롱 발언을 했다가”가 생략돼 있다. 성희롱이 아니라면, 이병헌과 문제의 발언을 들은 사람은 “남성의 어디를 보면 흥분이 되느냐” 같은 말을 주고받는 것이 거리낄 게 없는 관계여야 한다. 이병헌 측은 두 협박범과 결코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문제의 발언을 들은 여성은 이병헌과 원래 알던 여성과 함께 온 일행이었다. 그의 발언은 성희롱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병헌이 협박 때문에 고통에 시달린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잘못이 “덕이 부족한 경솔함”이라 애매하게 표현할 일은 아니다. 그것은 정치인이 성추행 논란에 “(신체적 접촉은 있었지만) 딸 같은 생각이 들었다”거나 “한 번이라도 싫은 반응을 보였으면 안 그랬을 것”이라는 반응과 비슷해 보인다. 문제의 판단을 피해자가 아닌 자신이 하고, 사건에 대해 사과하기보다 별일 아닌 것처럼 축소하는데 집중한다. 

성희롱을 명확하게 인정하면 비난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이병헌은 과거에 스캔들이 있었고, 확인되지 않은 루머도 따라 다녔다. 그래도 그는 <지 아이 조> 시리즈에서 영어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프로페셔널이었고, <광해>에서 왕의 품격과 광대의 속된 모습을 동시에 연기했다. 착한 남자의 이미지는 아니었다. 대신 싫어하는 사람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실력과 매력이 있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매력적인 ‘나쁜 놈’. 이런 남자가 듣기도 민망한 발언으로 여자에게 치근덕댔다. 문제가 불거지자 인정과 사과 보다 협박에 대한 스트레스부터 언급했다. 위험해 보이지만 매력적이었던 남자가, 순식간에 성희롱에 구차한 변명까지 하는 남자가 됐다. 


스타가 만만해지면 조롱이 시작된다. 케이블 채널 슈퍼액션은 이병헌 주연의 <내 마음의 풍금>을 방영하며 ‘이병헌의 순수했던 시절’이라는 자막을 넣었다. 문제의 사건 전, 영화를 소개하기 위해 미리 준비한 자막이 나간 것이었지만, 네티즌은 이를 캡쳐해 조롱의 수단으로 삼았다. 또한 인터넷에는 그에 대한 조롱성 게시물이 계속 올라온다. 인신공격성 비난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톱스타인 남자가 경멸받는 남자의 행동을 하면, 비웃음은 피할 수 없다. 김현중은 전 여자친구를 폭행한 사실이 알려진 뒤, “딱 한 번 말다툼 도중 감정이 격해져 몸싸움이 있었을 뿐”이라고 밝혔다. 상대에 대해 “2012년부터 알고 지낸 사이는 맞으나 교제는 최근 몇 달간”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전부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사람을 폭행한 것도 사실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김현중에게도 조롱이 쏟아졌고, 그는 몇 일 전에야 사과하며 전 여자친구와 2년 전부터 사귀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성희롱이나 폭행을 하는 남자는 최악이다. 하지만 더 최악은 잘못을 어물쩍 넘어가려는 남자다. 그들은 이런 행동을 했고, 대중은 그들이 한 행동 만큼의 반응을 보인다. 

이병헌은 20년 이상 톱스타였다. 김현중은 여성 팬을 사로잡은 아이돌이자 한류스타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성에게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고, 수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경솔함”이라고, “딱 한 번”이라고 쉽게 생각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뭐가 됐든 그냥 안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말 한마디 잘못했는데, 한 대 쳤을 뿐인데라고 말하는 것은 문명의 세계에서 야만인이 되겠다는 것과 같다. 굳이 야만인에게 매력을 찾을 사람은 많지 않다. 이를테면, 이병헌이 손편지를 쓴 것은 그가 그 시대의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기 때문 아닌지 의심하게 될 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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