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제인 “방송은 내 일이고 내가 해야 할 몫이 있다”

2014.09.19
웃고 듣고 목청을 높인다. 무엇보다 잠시도 쉬지 않는다. 요즘 tvN <로맨스가 더 필요해>를 비롯해 각종 라디오와 토크 프로그램에서 활약 중인 레이디제인에게서는 지금 이 자리에서 꼭 필요한 사람으로 한몫을 하고 가겠다는 일종의 ‘결의’가 느껴진다. 그 동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달리는 서른 살, 일하는 여자, 레이디제인을 만났다.


지난해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섭외 연락이 왔을 때 “제가 나갈 급이 되나요?”라고 반문했다고 말했다. 나라는 사람의 ‘급’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한다는 건 어떤 경험인가. 
레이디제인
: 사실 그 말 자체는 예능 프로그램이라 던졌던 일종의 자기비하 유머였다. 내가 만약 대중의 평가를 받는 연예인이 아니라면 나의 ‘급’은 최고다. 누구나 그렇듯 내 세상의 중심은 나니까. 그런데 지금의 나를 객관적으로 본다면 어떤 평가의 선상에 놓이지 않을 만큼의 급이 아닐까. 보통 사람들은 “나는 수지가 좋더라”, “나는 아이유!” 하는 식으로 톱스타에 대해 얘기하지, 가만히 있다가 문득 갑자기 “나는 레이디제인이 제일 좋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 (웃음) 대중의 시선으로 보면 그냥 ‘나 쟤 알아’ 정도?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인지도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건 어째서일까. 
레이디제인
: 내가 대중으로서 뭔가를 보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인 것 같다. 어릴 때 데뷔했다면 몰랐겠지만 나는 20대 후반에 데뷔를 했고, 그 전까지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면서 일반인으로 사회생활을 했다. 음악을 할 때도 인기에 쉽게 도취되고 쉽게 허무함을 느끼는 사람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서는 조금 더 객관화할 수 있게 됐다. 

‘라디오스타’ 출연 이후 TV 예능의 유망주로 떠올랐지만 훨씬 전부터 라디오 고정 출연자로 인기가 높았다. 방송에 맞게 ‘말 잘하는 능력’이란 뭘까. 
레이디제인
: 내가 특별히 말을 잘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다만 중·고등학교 때부터 <이적의 별이 빛나는 밤에>나 <정지영의 스위트 뮤직 박스>, <이소라의 FM 음악도시> 같은 프로그램을 항상 듣거나 틀어놓고 잘 만큼 좋아했다. 그때는 내가 방송을 하게 될 줄 전혀 몰랐을 때인데도 막연히 ‘나라면 이렇게 얘기할 텐데’ 같은 생각을 자주 했다. 그래서 내가 그 자리에 앉게 됐을 때 실시간으로 전국의 청취자들과 소통하고 실시간으로 문자 메시지도 받아보고 하는 시스템 자체가 정말 즐거웠다.

방송을 하다 보면 생각과 다른 말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농담의 뉘앙스가 잘못 전달되어 오해를 받기도 하지 않나. 말실수를 피하기 위한 원칙 같은 게 있나? 
레이디제인
: 방송이니까 의식한다기보다 사적으로 사람을 만나더라도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는 것 같다. 외모 비하 같은 건 기본적으로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이니까 평소에도 안 하려고 하고, 요즘은 비속어나 인터넷 유행어를 좀 덜 쓰려고 노력한다. 

라디오는 물론 <로맨스가 더 필요해>에서 ‘감정 기복이 심한 여자친구’나 ‘애교 많은 여자친구’ 캐릭터를 맡아 연기하는 상황극에 능하다. 비결이 뭔가. 
레이디제인
: 사실, 할 때마다 곤란하고 어색해서 미칠 것 같다. (웃음) PD님이 “이러이러한 상황입니다. 큐!” 하면 머릿속에 진짜 아-무 생각도 안 난다. 나뿐 아니라 정말 상황극 잘하는 (이)국주를 포함해 모든 사람이 그 순간에는 ‘아, 하기 싫다…’ 하면서 괴로워한다. 하지만 본인이 너무 민망해하고 계속 못 하겠다고 빼면 보는 사람도 불편하고 분위기가 썰렁해지니까 얼른 마음먹고 몰입해버린다. 막상 해보면 그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게 반영되기 때문에 재미있다. 끝나면 다시 ‘으아아앙 못 하겠다~’ 하게 되지만.

그런 연기, 혹은 애교 있는 태도를 재밌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부정적인 반응도 있지 않나.
레이디제인
: 그래서 나라는 사람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고민할 때도 종종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애교가 많은 성격이지만 평소 아무 데서나 “삐꺄쿄야↗” 하고 다니는 건 아니다. (웃음) 그런데 방송에서는 그런 캐릭터가 주어지기도 하고 몇 번이나 리플레이해야 하기도 하니까 좀 과장된 모습을 보여드릴 때도 있다. 그런 모습을 정말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비판하는 분들이 계신데, 결국은 내가 감수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내가 그 캐릭터를 가지고 가기로 했다면, 사람들이 그걸 100% 좋아할 수는 없는 거니까. 

장시간 방송 녹화는 체력과 집중력을 크게 요하는 일이기도 한데 어떤 자세로 임하나.

레이디제인
: 방송은 정말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재밌는 놀이라고 생각하고 마냥 즐기자는 마음으로 가면 중간에 딴생각도 나고, 정말 할 말이 없을 때도 있고, 사람인지라 진심으로 재미가 없을 때도 있다. 그런데 만약 내가 친구와 카페에서 얘기하는 거라면 ‘나 오늘은 우울해’ 하면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있겠지만, 회사에 다니는 중이라면 조금 아프다고 책상에 엎드려만 있을 수는 없지 않나. 정 힘들면 월차 내고 쉬어야지. 방송도 마찬가지다. 이건 내 일이고 내가 해야 할 몫이 있고 나는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거다. 게다가 우리 회사가 워낙 소규모다 보니 정말 열심히 하지 않으면 굴러가지 않는 시스템이라 더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도 하고. (웃음)

방송 일이 잘 풀리기 전, 회사가 문 닫을 위기에 처하자 인디 신으로 돌아가 다시 음악을 하려고 했다던데 사람들의 시선이 전과 달라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나.
레이디제인
: 전과 달리 ‘누군가의 여자친구’로 봤겠지. 하지만 나는 그렇게 큰 인기를 누려본 적이 없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이 얼마나 일시적인지, 그리고 그게 얼마나 소모적인 건지 안다. ‘아, 저런 애가 있었지’ 하다가 ‘요즘 걔 안 나오더라?’에서 ‘걔가 누구였더라?’ 하게 되는 건 금방이다. 그러니까 결국 모든 건 다 지나갈 거라 생각했다.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에 대해 평가한다면 어떤가. 
레이디제인
: 많이 부족하고, 내가 전에 했던 음악은 어쩌면 자기만족에 가까운 거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데뷔 전에는 많은 대중이 아니라 소수의, 그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평가만 받다 보니 ‘나는 괜찮게 하고 있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데뷔를 하고, 본의 아니게 전혀 다른 스타일의 음악도 하게 되면서 나의 경쟁력은 어디에 있을까 고민하게 됐다. 그 전에는 사실 그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고 하기도 싫었다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은데 그런 게 뭘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대중에게 알려지다 보면 비판을 넘어 심한 비난을 받기도 하고 폭력적인 악플에 시달리기도 하는데, ‘이건 좀 심하다’라고 느끼는 경우도 있나. 
레이디제인
: 무차별적인 악플에는 오히려 좀 덤덤한 편인데, 내가 생각해도 단점이라고 느끼는 부분을 신랄하게 콕 집어서 한마디 한 걸 보면 더 신경 쓰인다. 어떻게 보면 스스로 인정하는 부분이니 상처받지 않는 게 맞을 텐데, 나에 대해 통찰력 있게 쓱 보고 하는 말은 왠지 더 시리고 뜨끔하다.

악플에 비교적 덤덤하다 해도 자신을 향한 이유 없는 악의에 익숙해지는 건 어렵지 않나.
레이디제인
: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하루 종일 마음에 따라다닌다. 이유가 뭘까 계속 생각하며 마음 불편해하고 두근두근하면서. 하지만 말 안 되는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나를 싫어하는 사람일 수는 있지만 나를 아는 사람들은 아니다. 그 사람이 나를 알고도 싫어한다면 정말 슬픈 일인데, ‘잘 모르니까 싫어할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하다. 

경제적으로 일찍 독립을 한 편이라고 들었다. 언제부터였나? 

레이디제인
: 20대 초반부터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완벽한 독립은 아니었다. 대학교 때 인터넷 쇼핑몰을 하면서 크게 돈을 벌기도 했고, 나중에 음악 하면서 돈 다 까먹고 부모님께 손 벌린 적도 있으니까 몇 번 기복이 있었다. 꼭 돈을 벌기 위해 일한 건 아니고, 나도 이제 성인이니까 다양한 일들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번역이나 패밀리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나 공연 스태프 등 여러 가지를 해봤는데, 그때는 잠자는 것보다 그 시간에 뭘 하는 게 더 좋았다.

비교적 어린 나이부터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걸어왔는데,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어쩔 수는 없지만 정말 힘들거나 후회될 때도 있었나. 
레이디제인
: 없었다. 내가 세상일을 다 아는 것도 아니고 모든 일을 다 경험한 것도 아니지만, 마음먹었던 건 다 해봤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짧지만 회사에도 다녀봤으니까.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내가 만약 처음부터 계속 음악만 하면서 살았다면 조직생활이나 무대 아래 스태프들의 시스템 같은 건 평생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음악을 하면서도 궁금한 건 거의 해봤기 때문에 다른 세계에 대한 갈증이나 궁금증이 많이 해소됐다.

연애 상대에 대해 ‘건강한 멘탈’의 중요성을 여러 번 강조했다. 실패를 통해 얻은 성찰인가, 반대로 건강한 멘탈을 가진 사람의 장점을 느껴본 덕분인가. 
레이디제인
: 양쪽 다다. 그렇게 많은 남자를 만나본 건 아니지만, 이런 건 연애할 때만이 아니라 친구 간에도 느낄 수 있다. 특별히 모난 데 없이 괜찮은 사람이 있는 반면 말 한마디도 꼬아서 듣거나 뾰족하게 날 서 있는 사람도 있으니까, 웬만하면 기본적인 인성이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상대가 건강한 멘탈을 가졌는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레이디제인
: 그 사람이 굉장히 곤란한 상황, 위기에 처했을 때 알 수 있는 것 같다. 평소에 상황이 좋을 때는 누구나 기분 좋게 대하고 상대방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힘든 상황에서도, 아무리 가까운 사이에서도 지킬 건 지키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진짜 인성을 알 수 있다.

다시는 공개 연애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요즘은 일상의 한순간조차 몰래 사진 찍혀 열애설로 번지기도 한다. 앞으로 누군가와 진짜 사귀더라도 무조건 부정해야 ‘공개 연애’를 피할 수 있는 상황이 딜레마로 다가오지 않나.
레이디제인
: 불편하고 힘든 부분은 분명 있을지언정 감수해야 하는 것 같다. 그게 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을 위해 그래야만 하는 거고. 사실이 뭐든 간에 모르는 척해주자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너희가 뭐라고 하든 나는 너희가 사귄다고 생각할래!’ 하는 사람들을 따라다니면서 어떻게 할 수도 없다. 어차피 해명해봐야 그건 기사로 나지 않는다. 처음 상황만 기사로 날 뿐이다. 그러니까 크게 적극적인 해명도 적극적인 액션도 취해봤자 별 소용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부정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올해 서른이 됐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든 삶의 방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할 시기인데, 인생의 장기적인 목표 같은 게 있나.
레이디제인
: 일단 꾸준히 음악을 하고 싶다. 방송을 계속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이 일은 내가 공급을 원하는 것보다 수요가 있어야 하니까. (웃음)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이니까 메이저든 언더든, 다수가 대상이든 소수가 대상이든 계속 소통하는 일을 하고 싶다.

어떤 사람으로 나이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나. 
레이디제인
: 자기 인생을 완성시켜나가는 사람이고 싶고, 다른 사람들도 그러면 좋겠다. 타인의 인생에 대해 하나하나 지적하는 것도, 내 상황과 비교해 부러워하는 것도 너무 괴로운 일 아닌가. 그러니까 남을 신경 쓰지 않고 내 인생만 봤을 때 울퉁불퉁한 부분들을 메워서 그 길을 완성시켜나간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상처받을 일도 없고 마음도 편해진다. 그런 게 또 건강한 멘탈로 이어지고, 그러면 우리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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