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링북│① <비밀의 정원>, 색칠놀이가 당신을 구원하리니

2014.09.18


촘촘하게 엮인 풀과 나무, 앙증맞은 꽃잎들. 글자와 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섬세한 선들로 이어진, 복잡한 무늬의 일러스트로 채워진 책. ‘컬러링 북’으로 불리는 <비밀의 정원>은 어른을 위한 색칠놀이 책으로, 현재 교보문고, 알라딘, YES24 등에서 취미/실용 분야 판매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비밀의 정원>을 펴낸 출판사 클의 김경태 편집장이 “책이 나오자마자 초판 2천 부가 매진되어 일주일 동안 팔지 못했다. 지금까지 4쇄를 찍어냈다”고 말했을 정도다. <비밀의 정원>의 인기와 함께 <아트 테라피>, <크리에이티브 테라피 컬러링 북> 등 비슷한 컬러링 북들도 계속 주목받고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피곤해진 일상에서 정신을 집중하여 색칠을 하다 보면 복잡한 머릿속이 비워질 것.” <밀의 정원>의 출판사 서평의 일부다. <비밀의 정원>은 ‘안티-스트레스 컬러링북’이란 부제가 붙었다. 책의 프랑스어판에서 안티 스트레스의 개념을 부여한 것을 가져온 것으로, 프랑스에서는 현재 컬러링 북이 실용 분야 1위에 오를 만큼 인기다. 김경태 편집장은 “프랑스에서 색칠놀이 책이 인기를 얻은 이유도 안티 스트레스라는 맥락에서 설명되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비밀의 정원>을 사는 것은 아니다. 김경태 편집장은 “초기 조사 때, 안티 스트레스라는 것보다는 일러스트가 예쁘고, 해보고 싶다는 여자들의 반응” 때문에 출간을 결정했다. <비밀의 정원>을 만든 영국에서는 안티 스트레스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다만 <비밀의 정원>을 채워 나가려면 손으로 모든 작업을 해야 한다. 손은 말초신경이 발달돼 있고, 인지할 수 있는 감각들이 풍부하다. 손을 이용해 도구를 만들거나 손 운동을 많이 하면 인간의 지능과 기억력의 중추인 전두엽 전 영역이 자극된다. 한국미술치료연구소는 “눈과 귀, 입으로 하는 경험들은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손으로 하는 작업의 경우 내가 어떠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작업들이 많아서 스스로의 존재감을 느낄 수가 있다”고 말했다. 그림을 그리고 색을 칠하는 것이 어느 정도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면, 지금 손으로 그림을 그려보면 된다. <비밀의 정원>에 있는 그림을 색칠하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힘들다. 색연필을 쥔 손목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고, 그림을 꾸준히 그린 사람이 아니라면 세밀하게 색을 칠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대신 그만큼 오랜 시간 집중력을 발휘하게 된다. 히 요즘처럼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쓰거나 그리는 일이 줄어든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굳은살이 사라진 중지는 펜의 감촉을 더욱 확실히 느낄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손과 손목에는 약간의 통증이 올 수도 있다. 색칠놀이를 하는 사람들은 이 모든 감각을 경험하게 되고, 경험은 한 장의 그림으로 남는다. 한국미술치료연구소가 “혼자 하는 것이라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겠지만, 일종의 심리 치료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한 이유다.

<비밀의 정원> 외에도 최근에는 뜨개질, 꽃꽂이, 글씨 쓰기(캘리그라피) 등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하는 취미가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또한 음악 팬들 중에는 LP로 음악을 듣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 음원으로 얼마든지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에 굳이 LP를 뒤집어가며 음악을 듣는 것은 불편하다. 대신 온전히 음악 듣기에 집중할 수 있다. 굳이 시간을 내고, 손을 써서 직접 무엇인가 한다. 더 나아가서는 아마추어적일지라도 색을 칠하거나 글씨를 쓰거나 꽃꽂이를 해본다. 기계가 아닌 사람에게도 멀티태스킹을 요구하는 요즘, 일정 시간 몸을 직접 움직여 무엇인가를 경험하는 것은 불편한 것이니라 귀한 것이 되었다. 한병철 교수는 <시간의 향기>에서 “사건, 정보, 이미지들의 조밀화는 머무르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라고 했다. 새로운 기술들은 우리에게 쉴 새 없이 파편화된 정보를 가져다주고, 이것은 우리가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도록 만든다. 그때 색칠놀이 같은 과거의 놀이는 직접 느끼고, 집중하게 만든다. 그것은 끊임없이 새로움을 통해 사람들을 미래로 잡아당기는 세상에서, 우리를 현재에 잡아둘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비밀의 정원>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려는 비밀 아닐까.

* JTBC <비정상회담>을 소재로 색칠놀이를 준비했습니다. 마음껏 현재를 즐기세요. (일러스트: COORU)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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