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발견>에서 발견한 연애 고수의 옷 입기

2014.09.17

이 연애가 끝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저 연애가 시작되는 삶을 살다가, 스스로도 ‘어? 나 아직도 싱글?’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연애 휴지기가 길어지면 하나둘 깨닫게 된다. 애인이라는 존재가 사라지면서 덩달아 떠나가는 것들을. 애인과 ‘안녕!’ 하고 몇 주가 지나 어디선가 좀 억울한 일을 당하고 나서는 ‘무조건 내 편’이 사라졌다는 걸 깨닫게 됐고, 석 달에 한 번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밑도 끝도 없이 징징대고 싶은 날’이 되자 그럴 수 있는 상대도 애인과 함께 없어졌다는 걸 알게 됐다. 뭐, 그런 건 그렇다 치고 사실 애인과 동시에 사라진 가장 중요한 부분은 따로 있었는데 그걸 눈치채기까진 시간이 좀 걸렸다. 내가 잃어버린 가장 큰 존재는 바로 나였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앙앙앙’ 콧소리를 내는 나, 나 아닌 다른 사람 걱정에 잠 못 드는 나,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방법을 끝없이 고민하는 나, 별일도 아닌 걸로 서운해하고 화를 내는 나, 그랬다가도 언제 화를 냈냐는 듯 금방 ‘헤벌레~’가 되는 나…. 결국, 지구 상 수십억의 인구 중 ‘내 애인’이 아니면 절대 볼 수 없고, 나조차 애인이 없을 땐 잊고 마는, ‘사랑스러운 애인으로서의 나’.

최근에는 KBS <연애의 발견>의 한여름(정유미) 덕분에 잃어버린 거 하나를 더 찾았다. ‘일할 때의 불편 따위 아무렴 어때’라고 생각하며 아침마다 애인에게 최대한 매력적으로 보일 옷을 꺼내 입던 나. 내 옷차림은 여성스러운 레이스나 나풀대는 옷들을 하나둘 옷장에서 치워버리고, 타이트한 펜슬 스커트보다는 월남치마 비스무리한 옷을 더 자주 입는 식으로, 점점 예쁘고 멋지기보다는 편한 옷으로 옮겨갔다. 급기야 최근에는 골프복이나 조깅용 레깅스를 입고 출근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데, 그 밑바탕에 ‘애인의 오랜 부재’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지 못했다. 그러고는 맨 처음 <연애의 발견>을 보던 날(4회였다), 뾰족한 하이힐에 타이트한 미니스커트를 매치하고 목재 창고에 간 한여름이 전 남자친구 강태하(에릭)와 보폭을 맞추느라 종종거리는 걸 한참 비웃었다. ‘쟨 뭐야? 인테리어랑 가구 디자인하는 여자, 누가 저런 옷을 입냐? 참, 생각이 없어요, 생각이.’


그러나 식구들 어깨너머로 훔쳐 보다 슬슬 빠져들어 1회부터 ‘다시보기’를 하고, <연애의 발견>에 빠진 지금은 한여름의 옷 입기를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한여름은 연애뿐 아니라 연애 상황에서의 옷 입기에서도 ‘고수 중의 고수’다. 고수 중에서도 어필할 대상과 연애에서의 처한 상황을 세심하게 고민해서 옷을 입는 ‘지략파’다. ‘더 이상 네가 알던 시절의 한여름이 아니야!’를 어필하려는 듯 강태하가 나타난 뒤에는 옷차림이 한결 어른스러워졌고, 강태하와 일을 하게 될 때는 커리어우먼 이미지가 강하게 풍기는 옷을 입었다. 남자친구 남하진(성준)을 사이에 두고 안아림(윤진이)과 신경전을 벌이는 7, 8회에서는 같은 니트 풀오버라도 레이스가 달린 걸 입고, 비대칭 플레어 스커트나 파스텔톤 페플럼 스커트처럼 1, 2회에서의 ‘티셔츠+진 쇼츠 조합’이나 화이트 원피스에 비해 어른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옷을 입었다. 연애 상황과 대상을 고려해서 옷을 세심하게 골라 입는 것이다.

다만 한여름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제아무리 연애의 달인이라도 연애를 할 만한 대상 자체를 찾기가 힘든 나이는 오게 마련이다. 그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예쁘고 사랑스럽게 보이고 싶은 열망’과 그로 인해 비롯되는 ‘차려입기’의 수고로움을 최대한 만끽하기를. 주변에 남아 있는 싱글 남자들과는 저나 나나 ‘위 아 더 월드, 우리 모두는 형제자매’라는 생각만 드는 시기가 오면, “어느 순간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라는 것을 알게 됐”다던 본인의 대사처럼 예쁘게 차려입는 것이 감각이 아니라 의지의 지배를 더 강하게 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테니 말이다. 단, 그렇다고 ‘우리 모두는 형제자매’의 상황이 두려워 두 남자 중 하나와 섣불리 결혼하는 우를 범하진 말기를. 스물둘의 연애와 서른둘의 연애가 각기 다르지만 저마다 애절하고 재미있었던 것처럼, 마흔둘엔 마흔둘에만 느낄 수 있는 연애 감정이 또 있지 않겠나. 남하진이 주었던 편안한 총족감, 강태하 덕분에 맛봤던 매혹적인 긴장감 외에 지금껏 경험치 못한 새로운 사랑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할 남자를 기다리며 사는 삶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법이다. 그리하여 혹여나 이 남자 저 남자 다 보내고, 매일 아침 추리닝의 유혹과 싸우는 상황에 처한다면 ‘추리닝 중에 가장 여리여리하고 러블리한 추리닝’은 이 언니가 쏘겠다.

교정. 김영진




목록

SPECIAL

image 마동석 영화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