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L│① 소환사의 협곡에서 전설이 시작된다

2014.09.16

브라질에 이은 또 하나의 월드컵. 오는 18일부터 열리는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챔피언십 2014(이하 롤드컵) 이야기다.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 LOL >)의 개발사인 라이엇 게임즈가 주최하는 이 대회는, 롤드컵이라는 이름으로 통칭되듯 유럽과 북미, 동남아, 중국과 한국 등에서 지역 예선을 거쳐 살아남은 각 대륙 최강의 팀들이 세계 최강을 가리는 자리다. 하지만 중요한 건 월드컵이 그러하듯, 세계 최강을 가린다는 사실이 아니라 세계 최강을 가리는 것이 전 세계 3,200만 명이 시청하고 토너먼트 입장권이 매진되는 열광적인 엔터테인먼트가 된다는 사실이다. 과연 무엇이 < LOL >을 세계적인 게임으로 만들고, 무엇이 롤드컵을 세계적인 e스포츠의 축제로 만들었을까. <아이즈>는 오는 롤드컵을 맞아 전성기 <스타크래프트> 이후 가장 많이, 또 오래 게임 유저와 e스포츠 팬덤을 사로잡고 있는 < LOL >의 매력을 스포츠 문화적인 담론부터 초보 유저가 느끼는 재미까지 다각도로 분석하는 기획을 준비했다. 여기에 과거 e스포츠 최고의 프로게이머였던 홍진호의 시선으로 바라본 < LOL >을 통해 이 게임이 롱런할 수 있는 전망까지 바라본다. 제목처럼, < LOL >은 전설이 될 수 있을까.


만약 메시가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 LOL > 게이머인 ‘페이커’ 이상혁의 롤드컵 출전 좌절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롤드컵에서 신기의 플레이로 소속팀인 SKT T1 K를 우승시키며 < LOL >의 메시라고까지 불렸던 그는, 이번 롤드컵 한국 대표 선발전에서 라이벌 삼성 화이트는 물론 한 번도 져본 적 없는 나진 실드에게까지 패배하며 롤드컵에 출전하지 못하게 됐다. SKT T1 K 팬덤을 포함한 < LOL > 유저 대부분은 경악했고, 혹자는 페이커의 시대가 끝난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래서 다시 질문. 메시 없는 월드컵은 볼 가치가 있을까 없을까. 물론 생각은 자유지만 이건 확실하다. 누군가의 탈락이 의미 있는 사건이 된다는 건 그 게임에서 쌓인 여러 경기와 전적들이 이미 하나의 맥락을 지닌 서사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지금 < LOL >이 단순히 인기 있는 게임을 넘어 전성기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 이후 가장 강력한 팬덤을 누리는 e스포츠가 될 수 있던 건 이 지점이다.

2011년 처음 등장한 < LOL >이 단숨에 한국 게임 유저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직관적인 게임이기 때문이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비롯한 MMORPG(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가 PC방에서 여전한 인기를 누렸지만 과거 <스타>가 그러했듯 친구들끼리 ‘게임 한 판 할까?’라고 가볍게 접근하기에는 어려웠다. 그에 반해 자신의 챔피언을 조작해 팀원들과 힘을 모아 상대방의 넥서스를 부수면 이기는 < LOL >은 다양한 캐릭터와 전술적인 변수가 있되 룰 자체는 간단하다. 이 강력한 대중성을 바탕으로 < LOL >은 제작사 라이엇 게임즈의 안방인 북미뿐 아니라 게임의 성지 한국 모두에서 인기를 끌 수 있었다. 축구가 그러하듯, 스포츠는 직관적일수록 보기도 좋고 중계하기도 좋다. <스타>는 상대방 선수뿐 아니라 보는 이까지도 지금 준비하는 일의 의미를 알 수 없도록 복안을 짜고 전력의 우위를 차지해야 이기는 전략의 세계였다. 때문에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긴장감은 커지지만 당장의 전투가 없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반면 < LOL >은 서로 비등한 전력을 가지고 당장의 전투를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이기는 전술의 세계다. 좀 더 직관적인 건 후자고, 그 가능성은 이듬해 바로 증명됐다.

여러모로 2012년은 한국 e스포츠의 분기점으로 기억될 만한 해다. 그해 7월에 열린 티빙 스타리그를 마지막으로 스타리그가 끝났다. 국기(國伎) <스타>라 불렸던 이 게임은 한 세대가 공유하는 보편적인 오락이었으며, 그 이유로 스타리그의 몰락은 어떤 세대에겐 다시 꿀 수 없는 꿈에서 깨는 것과 같은 경험이었다. e스포츠 시장과 팬덤에게는 새로운 희망과 새로운 꿈이 필요했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온게임넷에서는 이미 <스타> 대신 한국 PC방 유저들을 사로잡고 있던 < LOL >을 종목으로 한 LOL 더 챔피언스(이하 롤챔스)를 중계했다. 대관식이 벌어지기 전, 이미 새로운 왕이 자신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롤챔스 이후 고등학생 때 이미 ‘고전파’라는 닉네임으로 < LOL > 솔로랭크를 평정했던 ‘페이커’ 이상혁이나 역시 비슷한 시기에 활약한 ‘피글렛’ 채광진 등 새로운 고수들이 프로에 입문하는 모습은 초기 스타리그의 태동기에 그랬던 것처럼 동시대 비슷한 세대의 게임 유저들의 동경을 샀다. 그리고 앞으로도 한국 e스포츠의 역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SKT T1 K의 롤드컵 우승은 이들 새로운 영웅들이 만들어낸 <스타>와는 또 다른 서사시가 될 수 있었다. 이미 북미를 포함해 세계적으로 인기 있던 < LOL >의 최강자전인 롤드컵에서 아직 10대인 이상혁이 새로운 챔피언과 전술로 압도적인 능력을 보여주며 우승을 차지하는 건 <스타>가 보여주지 못한 새로운 꿈이었다. <스타>가 게임만 잘해도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신세계를 열었다면, < LOL >은 비록 e스포츠라 해도 한국의 선수가 세계 최강을 차지하고 해외 유저들의 선망을 받는 신세계를 열었다.

< LOL >의 메시 이상혁을 이번 롤드컵에서 볼 수 없는 건 아쉽지만, 1년 만에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최강자의 신화가 무너지고 그 자리를 강력한 팀워크라는 담론이 대체하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마치 메시의 개인기를 이긴 독일 축구의 조직력처럼, SKT T1 K를 이긴 삼성 화이트의 잘 짜인 팀워크와 전술은 돌연변이 같은 천재가 없어도 세계 최고를 노릴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즉 주인공이 바뀌었을 뿐, 소환사의 협곡(< LOL > 공식 맵)을 무대로 한 영웅들의 서사시는 계속된다. 여기에 이상혁의 와신상담까지 더해지며 게임을 둘러싼 서사는 더욱 풍성해졌다. 이것이 한 세대의 공통된 경험과 문화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모두가 같은 게임을 즐기고 그 게임으로 세계 정상이 되길 꿈꾸고 그들의 영웅담을 각각의 방식으로 퍼뜨리는 현재 < LOL >의 팬덤은 과거의 다른 종목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스타>가 그러했듯, 다시는 오지 않을 유일무이한 순간을 목격하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 이곳, 소환사의 협곡에서.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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