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면│① 존경을 담아 먹습니다

2014.08.26

최초의 라면은 아니지만 모두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라면, 가장 맛있는 라면인지는 모르지만 가장 대중들이 선호하는 라면, 그래서 클래식이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은 라면. 클래식이 일류이자 어떤 전형을 뜻한다면, 28년 전 출시되어 업계 점유율 최대 40%, 현재도 4분의 1인 25%를 기록 중인 신라면에는 클래식이라는 호칭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최근 28년 만에 단행한 리뉴얼과 함께 그토록 절대적이던 신라면의 지위가 새삼스럽게 화제가 되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아이즈>는 언제나 그대로일 것만 같았던 신라면의 리뉴얼 소식에 맞춰 시장에서 그리고 정서적으로 시대의 클래식이 되었던 이 제품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과정에서 신라면의 아성에 도전했던 의미 있는 흐름들을 정리해보았다. 그리고 전통 신라면과 리뉴얼 신라면의 맛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소비자들의 리뉴얼에 대한 우려와 기대에 대한 나름의 검증을 시도해보았다. 신라면, 그 변함없는 클래식에 대하여.


1986년에는 유독 시대를 풍미하는 왕들이 많이 등장했다. 해태 타이거즈는 창단 후 첫 우승을 기록하고 이후 4년 연속 프로야구 우승을 하며 사상 최강이라 불리는 해태 왕조를 이룩했고,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마라도나가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축구 황제가 되었다. 그리고, 라면 업계에서는 사나이 울리는 매운맛을 강조한 농심 신라면이 등장했다. 물론 어느 것도 영원하진 않았다. 타이거즈 왕조는 몰락했고, 축구 황제 타이틀은 마라도나에서 메시로 넘어갔다. 하지만 농심 신라면만큼은 백여 종이 넘는 제품이 난무하는 라면 시장에서 단독으로 25~30%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한 번도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해마다 새로운 맛과 콘셉트의 신제품이 등장하고 종종 제품의 리뉴얼이 단행되는 라면 시장에서 유독 최근 신라면의 리뉴얼만이 화제가 된다면 그 때문일 것이다. 농심의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한 대책이자 자연스러운 가격 인상을 위한 첫걸음이라는 경제적 분석은 변화의 주체인 농심의 의도를 비교적 잘 보여준다. 하지만 신라면이 특별했던 건 이처럼 당연한 성공 공식에서 홀로 벗어난 존재였기 때문이다. 신라면 자체가 전통적 장맛의 기존 라면과 달리 쇠고기 국물 베이스의 얼큰한 맛과 당대에 가장 쫄깃한 면발로 승부한 시장의 개척자이긴 했다. 하지만 출시와 동시에 28년 동안 업계의 표준이 되었던 제품에 손을 댄다는 건 분명 모험이고, 소비자들에게는 기대보다 우려가 큰 사건이다. 그 오랜 시간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온 거의 유일한 존재였다면 더더욱. 이것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 일종의 정서적 유대에 가깝다.

신라면은 언제나 라면의 제왕이었지만 가장 고급스러운 라면은 아니다. “이거 신라면보다 맛있는데?”, “그거 신라면이야”라는 광고처럼 시장의 대표주자로서의 프라이드를 버린 적은 없지만, 지난 2011년 신라면 블랙을 출시했을 때를 제외하면 딱히 프리미엄 전략을 쓴 적도 없었고 가격은 같은 회사의 너구리나 짜파게티 같은 장수 제품과 비교해도 낮은 편이다. 비싸거나 고급스럽진 않지만 맛은 확실히 보장하는 라면, 그것이 신라면의 포지션이다. 라면이 소주와 마찬가지로 가격 대비 최고 효율의 즐거움을 주는 식품으로서 서민들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다는 점에서 신라면은 가장 라면다운 라면이라 할 수 있다. 별다른 요리 솜씨나 레시피 없이도 단 몇백 원이면 얼큰하고 따뜻한 국물에 한 끼 식사를 충분히 채울 수 있다. 웰빙과는 거리가 멀지만 웰빙을 누릴 수 없는 사람도 미각의 즐거움과 포만감은 느낄 수 있다. 클래식이 시간이 지나도 유의미한 가치를 의미한다면, 신라면은 그래서 클래식이 맞다. 서민의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해온 클래식.


신라면 블랙의 마케팅이 초반의 뜨거운 반응에 비해 실패로 끝나고, 신라면 자체의 리뉴얼로 방향을 선회한 건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내 건강을 위하여’라는 웰빙 전략을 들고 나온 신라면 블랙의 초반 선전에 신라면 골드가 나올 수 있다는 예상도 있었지만 신라면이 지닌 계급적이고 정서적인 친밀함을 부정하는 전략은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리뉴얼된 신라면이 변화나 혁신보다 ‘신라면을 더욱 신라면답게’를 모토로 삼은 건 그 때문일 것이다. 농심 측은 리뉴얼의 방향을 28년 전 라면 시장에 파란을 일으켰던 쇠고기 국물과 쫄깃한 면발이라는 신라면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하는 것으로 정했다. 실제 그 변화를 소비자들이 얼마나 알아챌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반감을 불러일으킬 만큼의 변화는 시도하지 않았다. 원조 라면인 삼양라면이 제품의 맛을 바꿔 리뉴얼한 뒤 추억의 맛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 옛날 모습과 맛의 삼양라면을 이원화해서 판매하는 것과 비교하면, 신라면 리뉴얼은 기존의 그것과 다르다. 계속해서 소비자는 새로운 걸 원하고 기업은 새로운 것으로서 더 큰 이윤을 추구하는 시장의 법칙 안에서도 신라면이 지닌 클래식한 가치는 쉽게 건드릴 수 없다.

그래서 신라면의 조심스러운 리뉴얼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신라면의 변하지 않는 위상을 증명한다. 시장 논리로도 건드릴 수 없는 정서적 가치가 있다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시장에서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지켜야 할 정서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게 더 정확하다. 통계상 온 국민이 한 달에 두 번씩은 먹었다는 신라면을 통해 우리는 어려서부터 가난해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는 god ‘어머님께’의 주인공처럼 어려웠던 시절의 감정을 환기할 수도, 빤한 주머니 사정으로도 친구들과 라면 하나 정도는 사 먹을 수 있던 학창 시절의 즐거움을 환기할 수도 있다. 그 모든 순간마다 함께한 신라면과의 정서적 고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두터워지고 그것은 시장에서의 여전한 점유율로 증명된다. 해마다 달라지는 트렌드를 예측하기 위해 트렌드 보고서가 발간되고 경제지가 선정한 10대 히트 상품의 목록이 끊임없이 변하는 시대에도 무언가는 익숙한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그 익숙함을 무기로 여전히 클래스를 유지한다. 대체 여기에 존경을 표하지 않으면 어디에 존경을 표하겠나.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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