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만수르처럼│① 서른넷 남자가 만수르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2014.08.19

아주 오래된 농담 하나. 한 중동 석유 재벌의 집에서 물을 뿌리며 물장난을 하는 아이에게 아버지가 “너는 물을 그렇게 돈 쓰듯 하면 어떡하니!”라고 꾸짖었다는 이야기. 어쩌면 그 아이가 커서 된 게 만수르는 아닐까. 돈이든 물이든 구애받지 않고 펑펑 쓰는 이 아부다비의 왕자는 프리미어리그 구단주로서 취미로 일류 선수를 영입하고, 합성처럼 아름다운 아내를 두는 등 인간이 돈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을 아낌없이 누리며 먼 나라 한국에서까지 부와 행복의 상징이 되었다. 우리는 왜 다른 부자들에게서는 상실감을 느끼면서, 오직 인생의 즐거움을 위해 돈을 쓰는 그에게서는 호감과 재미를 느끼는 걸까. <아이즈>는 현실의 부자라기보다는 만화 캐릭터 같은 만수르의 엄청난 부를 한눈에 정리하는 인포그래픽, 그리고 만수르에 빙의해 사치에의 욕망을 마음껏 풀어보고 싶은 평범한 이들의 상상을 통해 그의 매력을 분석했다. 여기에 만수르의 셋째 부인이 되고 싶은 한 남자의 부치지 못한 편지를 더해 그에 대한 동경의 마음을 전한다. 역시, 인생은 만수르처럼.


앗살라무 알라이쿰, 만수르. 이 러브레터는 한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대륙을 몇 바퀴 돌아 지금 당신에게 도착했습니다. 당신은 이 편지에 대해 사흘 안에 답장을 써서 저에게 보내주셔야 닥쳐오는 불행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 편지를 받고 버렸던 공화당 대선 후보 미트 롬니는 빈곤층에 관심 없다는 발언으로 구설에 올라 미국 대선에서 패배했습니다. 혹 미신이라 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입니다.

나는 한국에 거주 중인 서른넷의 남자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미 두 명의 부인을 둔 당신의 세 번째 짝이 되기 위해 이 러브레터를 보냅니다. 당신은 저나 한국에 대해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당신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공영방송의 대표 예능 프로그램에선 당신을 신격화한 ‘억수르’라는 코미디가 방영되고, 사람들은 트위터에서 당신의 사진을 리트윗하며 재산과 풍요가 따르길 바라고 있습니다. 사막의 모래바람을 건너 당도한 당신의 이름은 이곳에서 부와 행운의 상징과도 같답니다. 이제 더는 빌 게이츠가 세계 부자 1위냐 2위냐에 대해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는 뛰어난 경영자이고 입지전적인 인물이지만, 이젠 좀 지루해요.

그에 반해 만수르, 오, 당신은 정말 어메이징한 남자죠. 당신은 세계 1위의 부자는 아닐지 몰라도 세계에서 가장 겁 없이 돈을 쓰는 사람이에요. 마치 피규어를 모으듯 자신의 구단인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에 야야 투레, 다비드 실바, 세르히오 아구에로 등을 최고의 이적료와 함께 영입했죠. 우리가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도 미처 시도하기 어려운 ‘현질’을 현실에서 실행하는 당신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이 세상이 게임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며 눈앞의 고민이 하찮게 느껴질 정도랍니다. 내가 응원하는 리버풀의 존 헨리 구단주는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머니볼 이론을 축구에도 도입해 지난 시즌 준우승을 이뤘지만 우승은 결국 맨시티에게 헌납하며 유망주고, 머니볼이고, 전통이고, 전술이고 간에 인간계의 노력이란 뒤돌아보지 않는 ‘현질’ 앞에 무의미하다는 걸 보여줬죠.


한국에도 당신에 조금 못 미치는 삼성 가문을 비롯해 글로벌한 수준의 재벌들이 있지만, 그들은 그 부를 유지하거나 늘리기 위해 끊임없이 어딘가의 지출을 막고 노동자와 갈등하며 눈을 크게 뜨고 세계 시장의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합니다. 세습된 부를 자신의 힘으로 모은 척 사업가의 고뇌와 능력을 강조하다 오히려 우리의 속을 긁어놓기도 하죠. 하지만 오일머니의 세례를 받은 당신은 입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걸 숨기지 않아서 좋아요. 어쩌면 당신도 주주로 있는 회사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사업적인 태도를 보일지도 모르지만, 외부적으로 보여주는 건 근심 없는 표정과 아름다운 두 아내, 그리고 죽기 전에 이 돈 다 쓰고 죽자는 식의 사치죠. 구단이 900억 원 넘는 적자를 기록해도 맨시티 선수들 각자에게 재규어 새 모델을 사주고 펜트하우스를 제공하는 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아닐지언정 우리가 돈을 통해 이루고픈 욕망을 가장 순수하게 보여주긴 합니다. 우승컵이고 뭐고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느냐는 막무가내에선 돈이란 모으기 위한 게 아니라 인생을 즐기기 위해 존재한다는 잊혔던 가치가 온전히 드러납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나를 세 번째 피앙세로 받아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우선 맨시티의 멤버가 되어 억대 주급과 재규어를 받는 것부터 고려해보았지만 훈련 중에 야야 투레에게 걷어차이기라도 했다간 그대로 병원 신세를 져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나는 이곳 한국에서 갈수록 지쳐갑니다.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은 정치와 경제, 문화 모든 영역에서 희미해져 가고 안정적인 시스템이란 지도자의 성향에 따라 얼마든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수르가 출동한다면 어떨까요. 당신이라면 아무 연고도 없고 말도 안 통하고 여자도 아닌 나를 단지 편지 한 통 때문에 세 번째 부인으로 맞이하는 미친 짓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 기적 같은 일이,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야만 하는 이들에게 로또보다 더 짜릿한 기대와 희망을 주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남자를 부인으로 들이는 게 꺼려진다면 얼마든지 당신의 양자가 되어 귀여운 막내아들 노릇을 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온갖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는 막내아들이요.

그러니 만수르, 당신의 답장을 기대합니다. 답장을 사흘 안에 보내면 당신에게도 행운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만약 답장하지 않으면 수능을 망친다. 수능을 망친다. 안나라수마나라. 마앗쌀라마.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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