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비평이 무의미한 시대가 오는가

2014.08.13

* <명량>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명량>에는 대사는 있어도 대화는 많지 않다. 이순신(최민식)은 아들 이회(권율)와 나누는 몇 번의 대화를 제외하면 임금에게 보내는 서찰을 읽거나 부하들 앞에서 명을 내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정찰꾼 임준영(진구) 같은 이도 지령을 받는 것 외에는 거의 대화가 없고, 병사 오둑이(고경표)는 아예 대사가 없다. 최민식은 스타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명량>에서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이 좀 더 있었으면 했다. 시간적인 제약이 따랐기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순신은 12척의 배로 300척의 왜군과 싸우기로 결정하고, 그들을 물리칠 전술도 짠다. 하지만 <명량>은 이 결정 사이에 있었을 갈등과 고민을 크게 부각하지 않는다.

<이순신>이 아닌 <명량>이라는 제목은 영화의 지향점이다. <명량>의 클라이맥스는 러닝 타임의 절반에 가까운 명량해전이고, 영화는 등장인물의 심리 대신 그들이 전쟁에 영향을 주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이순신부터 오둑이까지, 신분과 역할이 명확한 인물들은 각자의 일에 집중한다. 이순신을 배신하는 배설(김원해)도 타인과 대화하고 고민하는 대신 빠르게 결정하고 행동한다. 그만큼 <명량>은 해석보다 재현에 충실하다. 물론 실제 역사와 다른 부분들도 많지만 각종 문헌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나오고, “12척의 배”, “상감에 대한 의리”,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하 면 죽을 것이다” 같은 이순신의 발언들을 대사로 활용한다. 이순신이 무슨 마음으로 그 말을 했는지는 주목하지 않는다. 대신 그의 언행을 따라가면 명량해전이라는 장대한 마무리가 기다린다.

한국인 누구나 알고, 누구보다 극적인 인생을 살았던 이순신은 <변호인>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광해>의 광해군 이상으로 다양한 해석과 정치적 함의를 담을 수 있다. 그러나 김한민 감독은 <명량>을 <도둑들>과 <해운대>처럼 많은 인물들이 각자 활약하다 후반부의 거대한 액션에 휘말리도록 연출했다. <명량>은 이순신이라는 소재가 아니었다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한 오락물이었을 것이다. 반대로 이순신이 있었기에 관람 전의 관객들에게 흥미를 끌었다. 그래서 <명량>에 대한 흥행 원인을 분석하는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무의미한 것에 가까워 보인다. 이 영화는 차라리 천만 관객 영화들의 흥행 요소들을 모두 모은 합집합과 같다. 


<명량>에 관한 가장 크고 오래 가는 이슈는 빠르고 거대한 흥행 추이다. <명량>의 완성도나 흥행 이유에 대한 찬반은 며칠을 넘기지 못했다. 진중권이 SNS에서 “영화 <명량>은 솔직히 졸작이죠. 흥행은 영화의 인기라기보다 이순신 장군의 인기로 해석해야 할 듯”이라고 말했지만, 그가 <디 워>를 비판했을 때처럼 큰 논란은 벌어지지 않았다. <디 워>의 심형래 감독은 영화 속에 내용과 무관한 ‘아리랑’을 삽입하는 등 관객의 감정을 끓어오르게 하는 요소 넣었다. 반면 <명량>은 이순신이라는 소재에도 불구하고 해석은 적게 하고, 볼거리에 충실하다. 바다를 활용한 스펙터클과 피가 튀는 백병전을절히 활용한 명량해전의 연출은 거칠다고 할 수는 있어도 <디 워>처럼 기술적 완성도를 문제 삼아 폄하하기는 어렵다. 대다수 관객들은 한 가지 이유로 영화를 좋아하지 않고, 영화를 열렬히 옹호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있다 해도 여론화 될 만큼 다수는 아니다. 주연우가 영화의 아쉬운분에 대해 거론해 될 만큼, <명량>에 대한 모든 담론은 미적지근하다. 오직 얼마나 빨리 모든 기록을 바꾸느냐에 초점이 맞춰졌다.  

<명량>의 엄청난 스크린 점유율은 단지 다른 영화의 흥행 기회를 뺏는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명량>은 그 자체로 한 회사가 제작과 배급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상황에 최적화 돼 있다. 이순신에 대한 관점을 드러내지 않고, 오락물로서 적당한 재미를 주면서 관객의 취향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선택 받는다. 수많은 스크린 수는 이런 관객들을 단기간에 최대한 많이 끌어들인다. 그 결과 영화에 대한 논의나 평가의 속도보다 영화를 예매하는 관객의 행동이 훨씬 빠르다. 어떤 담론이든 관객의 반응보다 빠를 수 없고, 스타트 라인은 극장의 스크린 숫자에서 정해져 있다. 천만 관객 영화가 계속 나오는 상황에서 한국 영화 산업의 위기가 맞는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영화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피부에 와 닿을 만큼 위기가 온 것은 확실하다. 담론 형성의 규모와 속도가 흥행 성적을 따라가지 하면서 매체와 비평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감독의 의도와 별개로 관객과 영화사와 극장은 매체와 평론가의 의견에 상관없이 알아서 영화를 만들고 보고 말한다. <명량>은 이 시스템의 시작점으로 남을 것이다. 

<명량>에서 이순신은 말 못하는 여성(이정현)의 필사적인 비명과 행동이 백성들을 움직이면서 위기를 벗어난다. 이 여성이 표현하려는 감정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략 그 뜻을 이해하고, 이순신을 구하는데 나서기 시작한다. 이 장면은 김한민 감독이 이 영화에 넣은 몇 안 되는 역사적 해석이다. 백성들이 모여 영웅을 구한다. 뻔하기도 하지만, <명량>은 이 후반부를 통해 관객이 감정이입할 수 있는 요소를 넣는다. 백성이 영웅을 구하고, 관객들이 한 편의 영화에 보내는 지지로 기적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관객과 제작사와 극장이 만들어낸 이 거대한 함성에 매체는 숨이 차도록 따라다닐 뿐이다. 그리고, 좋든 싫든 <명량>같은 영화들은 더욱 많이 만들어질 것이다. 무언가 이전에 없었던 대단한 일들이 일어난다.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 아니 말할 필요도 없는 무엇이. 그렇다면, 그래도 말하고 싶은 이들은 무엇을 말해야 할까. 




목록

SPECIAL

image 장성규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