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 프란치스코 슈퍼스타 교황님!

2014.08.13
사진. 셔터스톡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지금 세계에서 가장 나이 많고 가장 인기 있는 아이돌(idol)의 이름이다. 1936년생, 올해 나이 만 일흔일곱인 그의 본명이 낯설 수도 있다. 지난해 3월 13일, 전임 베네딕트 16세의 뒤를 이어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그의 공식 호칭은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전 세계 12억 가톨릭 인구의 수장, 430만 명이 넘는 트위터 팔로워를 둔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는 8월 14일 한국을 방문한다. 25년 만의 교황 방문에 기념우표와 기념주화가 발매되고, 광화문에서 열릴 시복 미사에는 수십만 인파가 운집할 전망이다. 그러나 이 전 지구적 슈퍼스타가 한국에서 타게 될 차는 1,600cc급 소형차다. 바티칸 교황청 측이 방한을 앞두고 “가장 작은 급의 한국산 자동차를 타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기 때문이다.

파격에 가까운 검소함과 소탈함은 즉위 초부터 교황의 가장 큰 인기 요인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 시절에도 작은 아파트에 살며 직접 요리를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시민들과 대화하기를 즐겼던 그는, 교황이 된 후에도 교황궁 대신 바티칸을 방문한 사제들이 묵는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그들과 함께 생활한다. 새 교황이 즉위하면 새로 금반지를 제작하던 관행을 깨고 은반지를 도금해 사용하거나, 선물로 받은 중고차를 직접 운전하는 것과 같은 에피소드 또한 무수히 많다. 미사 도중 단상에 올라온 어린이의 장난을 받아주고, 얼굴 전체가 신경섬유종으로 뒤덮인 환자에게 입 맞추는 교황의 모습은 자비의 상징처럼 전 세계로 퍼져나가 그를 2013년 페이스북 트렌드 1위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윌리엄 영국 왕세손의 아들 ‘로열 베이비’조차 달걀형 얼굴로 빙긋 웃는 이 할아버지의 인기를 꺾지 못했다.

하지만 서민적이고 친근한 성자의 이미지보다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것은 교황이 던져온 날카로운 메시지다. 대주교 시절 “가난한 자는 힘든 일을 하면서 박해를 받는데, 부자는 정의를 실천하지도 않으면서 갈채를 받습니다”라는 지적으로 위정자들을 비판했던 그는 교황으로 즉위한 뒤에도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형태의 독재”라며 매서운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미국의 극우 언론인 러시 림보는 교황의 이러한 발언에 대해 “마르크스주의 그 자체”라고 비난했지만 정작 교황은 “마르크스주의는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살면서 인간성이 좋은 마르크스주의자를 많이 만났습니다. 그래서 내가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말이 그렇게 불쾌하지는 않습니다”라는 여유로운 대답으로 ‘붉은 교황’을 향한 색깔론 공세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약하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끊임없이 다가가려는 노력은 말보다도 교황의 행보에서 더 잘 드러난다. 그는 즉위 후 첫 미사에 바티칸 청소부들을 초대했고 부활절에는 무슬림 여성의 발을 씻겨주었다. 교황의 첫 외부 방문지는 지난 10년간 불법 이민을 시도하던 아프리카인들이 7천여 명이나 사망한 지역, 지중해의 람페두사 섬이었다.


자신의 영향력을 특정 국가나 세력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 사용하는 인물이 그가 속한 종교의 테두리를 넘어 사랑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정통 보수파였던 베네딕트 16세 시절, 가톨릭교회는 사제들의 성추행설과 바티칸 은행의 부패 문제로 위기를 맞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후 바티칸 연간 방문객은 전년도에 비해 세 배 이상 늘었다. 로마 거리에는 한 손을 허공으로 뻗어 날아가는 교황의 모습을 슈퍼맨처럼 캐릭터화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2013년 ‘올해의 인물’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정했던 시사주간지 <타임>의  낸시 깁스 편집장은 “교황청에만 머물고 있던 교황의 지위를 거리로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박제된 것처럼 보였던 존재의 부활은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바티칸 출입 기자인 위르겐 에어바허의 논평은 단순하면서도 핵심을 짚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자비와 가난과 용서라는 말은 성경에 있는 말이 아니라 살아 있고 체험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한국을 방문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과의 만남을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생존 학생들도 만나고 싶다”(<경향신문>)는 입장을 밝혀 이들을 함께 위로하는 일정을 갖게 된 것은 여전히 자신을 ‘사제’라 칭하는 그가 성직자로 평생을 살아온 방향과 그대로 일치한다. 2004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나이트클럽 화재 참사로 200여 명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을 때 추기경이었던 그는 5년 뒤 추도 미사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일하고 아첨하고 돈 버는 데 골몰하고 주말을 어떻게 즐길까 하느라 더는 여기에 없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충분히 울지 않았습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억울한 시민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거기에 책임이 있는 사회구조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는 이유로 정치 개입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굽히지 않았다. “성직자가 행하는 모든 행위는 정치적 행위입니다. 인간적, 종교적 가치를 설파하다 보면 정치적 결과가 따릅니다. 좋든 싫든, 이것이 사실입니다.” 가톨릭이든 아니든, 신을 믿든 믿지 않든 이 먼 나라에서 오는 이방인을 향해 희미하나 절박한 희망을 걸게 되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수백 명의 아이들과 어른들이 산 채로 수장된 지 반 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이제 그만 잊을 것을 종용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아직 충분히 울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해줄, 인간의 가치가 그토록 가볍게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해줄 누군가가 필요했기 때문에.

참고도서 및 자료
<프란치스코 교황> 위르겐 에어바허 (가톨릭 출판사)
<교황 프란치스코, 그는 누구인가> 매튜 번슨 (하양인)
<천국과 지상>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아브라함 스코르카 (율리시즈)
SBS 스페셜 <거리의 교황 프란치스코>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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