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윤상, 지켜주고 싶은 아저씨

2014.08.11

음악계에 ‘사기 캐릭터’가 있다면 이 사람이 아닐까. 고교 시절 김현식의 ‘여름밤의 꿈’을 작사·작곡했고 ‘보랏빛 향기’와 ‘입영열차 안에서’로 강수지와 김민우에게 1990년 남녀 신인가수상을 안겼으며 이듬해 직접 만들고 부른 ‘이별의 그늘’로 각종 차트 1위에 올랐을 때 그의 나이 스물 셋이었다. 수많은 여학생들의 책받침과 브로마이드 속 우수에 젖은 얼굴의 ‘오빠’였던 이 미남 가수는 지금도 ‘뮤지션들의 뮤지션’으로 존경받는다. 이승환, 성시경은 물론 그와 전혀 다른 장르의 음악을 하는 MC몽조차 “내가 연예인 학교의 꼴찌 학생이라면 그 형은 전교 회장”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이토록 평생 우아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던 그 남자, 윤상은 요즘 자신의 ‘응가 시스템’에 대해 온 국민과 공유한다. 사전 미팅을 빙자해 윤상, 유희열, 이적을 지구 반대편 페루로 납치하다시피 데려간 tvN <꽃보다 청춘> 때문이다. 거친 환경에 부딪히는 것을 즐기는 유희열이나 뭐든 융통성 있게 해결하는 이적과 달리 자타공인 ‘온실형 화초남’인 윤상에게 갑작스런 여행은 고난의 연속이다. 사실, 출발까지 두 시간 반 남은 비행기 티켓을 받아들고도 “빨리 집에 가서 옷 갖고 와야겠다”고 말해 모두를 웃긴 것은 그가 뭘 몰라서가 아니다. 단지 윤상은 ‘집에 다녀올 시간이 없다’는 현실보다 ‘갈아입을 옷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먼저 사로잡혀 상황을 조금 느리게 인식하는 타입의 사람일 뿐이다. 유독 섬세하고 외골수인 사람이 본의 아니게 자기 세계를 벗어나면 불편한 충돌이 발생한다. 장거리 비행 이후 수건 한 장을 셋이 나눠 써야 할 만큼 열악한 숙소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으려 애쓰던 그는 이튿날 때꾼해진 눈으로 간신히 의사를 피력했다. “내가 지금 여기서 씻기에는 너무 번잡스러워.” 나긋한 말투 뒤에 숨은 것은 절규에 가까운 처절함이었다.

제 때 제대로 씻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 문 밖에 인기척이 있으면 배변 활동이 멈춰 버리는 사람, 자신 때문에 바삐 숙소를 알아보는 일행에게 미안하지만 선뜻 ‘내 걱정은 하지 마’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 심지어 고마운 마음조차 어설픈 농담으로 날려 먹어 버리는 사람. <꽃보다 청춘>의 윤상은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뛰어난 뮤지션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 지독히도 서툰 남자다. 게다가 조금은 솔직하지 못한 남자이기도 하다. 자신의 음악에 대해 칭찬받는 것도 아이처럼 자랑하는 것도 좋아하면서 “너희가 (곡에) 애정이 없다”며 마음에 없는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바지에 모래 들어가는 게 싫다더니 막상 모래언덕에 오르자 신나게 샌드보딩을 즐기기도 한다. “궁시렁 대마왕!”(유희열)이나 “지인짜 찡찡거려”(이적) 등 친한 사람들이 일러바치는 그의 모습은 ‘미운 마흔 일곱 살’에 가깝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인 윤상의 부족함은 예술가 윤상의 비범함과 궤를 같이 한다. 드라마에서조차 말 안 되는 장면이 나오면 짜증난다는 이 까다로운 성정의 뮤지션에게 예능인의 역할까지 요구했던 90년대 방송가는 험난한 세계였다. ‘몰래 카메라’에 다짜고짜 끌려가 곤장을 맞을 때도, 뮤직 드라마나 시트콤에서 어색한 연기를 펼칠 때도 자신이 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는 듯 멋쩍은 웃음만 짓던 그는 어울리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하다 불면증과 알콜 의존 증세를 얻었다. 오로지 음악만을 할 수 있기를 꿈꿨던 그는 2002년 낯선 땅으로 긴 유학을 떠났지만, 누구보다 자신을 몰아붙이는 완벽주의자에게 음악이 언제나 안식처가 되어 준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히트곡을 내놓았고 무수한 찬사를 받았음에도 좀처럼 닿을 수 없는 경지를 향해 끊임없이 손을 뻗어 온, 유희열의 표현대로 ‘혼자 싸움하는 예술가’인 그는 고백했다. “음악을 하면서 큰 즐거움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큰 슬픔도 음악을 하면서 느꼈어요.”

나이를 먹어도 능글맞은 형님이나 아저씨가 되지 못하는 소년, 아니 소녀 같기도 한 아저씨 윤상은 여전히 서툴고 수줍다. 데뷔 후 25년, 가요계의 흐름이 수차례 바뀌는 사이 예술과 생활을 조화시키기 위해 애쓰면서도 본질적으로는 거의 변하지 않은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꽃보다 청춘>에서 손이 많이 가는 막내 같은 그의 ‘찡찡거림’을 놀려대다가도 금세 “형은 최고야!”라며 간증 수준의 애정을 드러내는 이적과 유희열을 십분 이해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동안 윤상이 들려 준 음악과, 그 음악을 지키기 위해 윤상이 취해 온 삶의 방식 때문이다. 너무나 섬세한 사람의 빛나는 재능은 천연기념물처럼 다 함께 지켜주고 싶은 법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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