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의 슬라이더, 이건 능력치 조작이야!

2014.08.11

2012년 3월, 나는 선택의 기로에 있었다. 즐겨 하던 비디오 메이저리그 게임 < MLB The Show >의 새로운 버전을 사느냐, 소녀시대의 일본 콘서트 블루레이 타이틀을 사느냐. 그리고 나는 후자를 택했다.

얼마 전 2년 만에 그 야구 게임의 새로운 버전을 구입한 나는, 늘 하던 대로 에디트 버튼부터 눌렀다(아슬아슬한 승부보다는 온갖 편법을 동원해 상대를 짓밟는 나는, 아무래도 파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나 보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 하나를 발견했다. 슬라이더의 구속은 92마일이 최대치라는 것. 반면 체인지업은 69마일이었다. 모든 구종 중 체인지업만이 유일하게, 능력치를 높일수록 구속이 떨어졌다. 체인지업이 패스트볼과의 구속 차를 목표로 탄생한 구종임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 바로 여기에서 류현진의 새로운 슬라이더 이야기가 시작된다.

류현진은 2012년 한국 무대에서 평균 88.9마일의 패스트볼과 79.8마일의 체인지업을 던졌다(스포츠투아이 자료). 구속 차는 가장 이상적이었다는,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10마일에 가까웠다. 메이저리그 진출 첫해였던 지난해, 류현진은 다시 90.3마일과 79.5마일을 던짐으로써, 2012년보다 더 큰 10.8마일의 구속 차를 보였다(이하 구속 출처 팬그래프닷컴). 그러나 올해 류현진의 패스트볼-체인지업 구속 차는 8.6마일에 불과하다(패스트볼 90.7마일, 체인지업 82.1마일). 체인지업의 구속이 무려 2.6마일이나 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체인지업의 구속은 왜 올랐을까. 류현진은 호주를 다녀온 후 첫 두 경기에서 지난해와 큰 차이가 없는 79마일대 체인지업을 던졌다. 하지만 2이닝 8실점으로 크게 무너졌던 4월 5일 샌프란시스코전부터 체인지업 구속은 갑자기 82.0마일로 올랐고, 이후 82마일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스카우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위협적인 구종 중 하나였던 류현진의 체인지업에 대해 상대 팀들의 면밀한 분석과 대비가 있었다는 것. 이에 타자들이 더 이상 체인지업에 쉽게 당하지 않자, 그립을 쥔 손에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며 구속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64였던 체인지업의 피안타율이 3할대(8월 3일 시카고 컵스전이 끝난 가운데 .330을 기록 중이다)로 오르자, 결국 류현진과 다저스는 특단의 조치를 꺼내 들었다. 입단 당시부터 유독 다저스만이 가능성을 높게 봤던 슬라이더에 힘을 실어주기로 한 것이었다. 7월 14일 샌디에이고전에서 류현진은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전 경기보다 무려 4마일이 빨라진 87.7마일의 슬라이더를 가지고 나타난 것. 당황한 타자들은 슬라이더에 13번 방망이를 내고 무려 8번이나 헛스윙했다. 국가대표 시절 선배 송은범의 슬라이더 조언에 “에이 몰라 안 던져”라며 대꾸한, 유명한 ‘짤방’을 만들어내기도 했던 류현진은, 현역 시절 최고의 슬라이더를 던지는 좌완 중 한 명이었던 릭 허니컷 투수 코치, 그리고 현재 최고의 슬라이더를 던지는 좌완인 클레이튼 커쇼의 도움을 받아 불과 2주일 만에 대변신을 이뤄냈다. 류현진은 커쇼의 그립을 참고하고 팔의 각도를 살짝 올린 사소한 변화라고 했지만, 커쇼는 류현진의 습득 능력을 미 전국 방송에서 칭찬했고, 손혁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투수 출신으로서 깊은 분노와 질투를 느낀다고 했다.

그렇다면 걱정은 이제 없어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 류현진의 슬라이더는 팔을 올려 살아났는데, 체인지업을 여기에 맞추면 더 무뎌진다. 그렇다고 두 가지 각도로 나눠 던지게 되면 타자들에 의해 간파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결국 둘 다 살릴 수 있는 중간점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커쇼가 황호와 백호처럼 같은 범주에 있는 브레이킹 볼 두 개를 병행하는 것과 달리, 류현진은 마치 ‘라이거’처럼 서로 다른 범주인 슬라이더와 서클 체인지업의 조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둘 중 하나를 포기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적지만 성공 사례는 있다. 아메리칸리그에서 ‘커쇼 놀이’를 하고 있는 크리스 세일(화이트삭스)은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이 둘 다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투수이며, 지난해 류현진의 체인지업 라이벌이었던 콜 해멀스(필라델피아)는 슬라이더의 사촌이라 할 수 있는 컷패스트볼을 병행한 지 오래다. 그리고 그 원류에는 클리프 리가 있다.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설레고 또 기대된다. 그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으니 어쩌겠는가. 큰일 났다. 욕심은 점점 늘어간다.

교정. 김영진




목록

SPECIAL

image 장성규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