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우린 안될 거야, 아마

2014.08.11
“Show must go on”이라는 말은 무대 위의 모든 문제를 덮는 치트키와 같았다. 그런데 2014년 한국 뮤지컬 시장에는 이 치트키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공연 개막 직전까지 곡이 나오지 않아 애를 먹는 창작뮤지컬들이 있는가 하면, 라이선스 뮤지컬이라 할지라도 제작사의 자금난으로 작품이 엎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기어코 며칠 전에는 1,000여 명의 관객이 운집했던 한 뮤지컬이 공연 15분을 앞두고 취소됐다. 한국 뮤지컬 시장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데다 문제가 여러 곳에 혼재되어 있다. 예매 수수료로 자기 배만 불린다는 인터파크를 향한 일침도 있고, 퀄리티 낮은 공연을 만들어내는 제작사에 대한 불만도 쏟아진다. 무엇이 문제일까. 과연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일까? 업계의 오랜 위기를 버텨온 이에게 지금의 상황에 대해 물었다. 부득이하게 필명을 사용했다.


얼마 전 설도윤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 겸 설앤컴퍼니 대표가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들 때문에 설화를 겪었다. 평소 자기주장을 직설적으로 내세우는 분이지만 <위키드> 관련 간담회에서 인터파크의 시장 독점 현상(물론 이것은 과장됐다)과 공연예술통합전산망(작품별 누적 관객수와 매출액을 공개하는 시스템) 이야기까지 꺼낸 것은 그 자리가 너무 편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설도윤 이사장이 작심하고 현재 뮤지컬계 문제점의 정치/경제적인 이슈화를 의도하고 이 시점에서 절묘하게 기자들에게 먹잇감을 던지지 않았을까?

이 사건 직후에 <동아일보>에서는 ‘외화내빈 뮤지컬산업’이라는 시리즈 기획기사를 냈다. 그런데 설문에 답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바로 그 문제의 중심에 있는 제작자들이 대부분이다. 가장 책임이 큰 제작자들 스스로가 업계의 문제점을 제작 과잉이라고 지적할 게 뻔한 그런 해괴망측한 설문이 어디 있는가? 바로 그들 중 일부가 지금부터 제작을 멈추면 될 일을. 게다가 그로부터 며칠 후, 배우와 오케스트라 임금을 제때 못 줘서 공연이 취소된 불행한 일을 겪은 모 제작사 대표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차라리 ‘당신은 내년에 뮤지컬 제작을 계속할 계획이 있습니까?’ 하는 질문이 필요했다. 요즘 메이저 언론사에서 앞다투어 보도하는 한국 뮤지컬계 위기 상황은 그저 작품이 많아서만은 아니다. 통합전산망 구축 지연과도 큰 관계가 없다. 그저 한국 시장의 파이에 적당한, 뛰어나게 잘 만든 작품이 부족할 뿐이다. 게다가 제작사와 인터파크 간의 갈등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인터파크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입장에서도 보면 특별히 잘못한 게 없다. 그냥 공연을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이 싫은 거다. 재래시장에 전염병이 돌아서 상인들 모두 파리 날리고 있는데 오늘도 변함없이 들러서 이자만 따박따박 챙기는 얄미운 일수 아줌마 혹은 월세만 챙기는 건물주 같다고 생각하니까. 어차피 그들은 장사꾼이고 문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아니니 논의의 중심에서는 치워두자. 물론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예술가 행세를 하려 들면 그때는 밤길에 조용히 때려주어야겠지만.

이 업계에서 돈을 조금 벌며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생각해보건대, 요즘 한국 뮤지컬 산업이 위기에 빠진 진짜 이유는 우리나라가 애초부터 뮤지컬을 비즈니스로 이끌고 갈 만한 인프라가 갖춰진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뮤지컬은 관광객이 있는 도시에서 매출이 발생하는 장르다. 왜냐하면 뮤지컬 산업이 지향하는 수익 창출 모델은 기본적으로 장기 공연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데, 한날한시에 다수의 대극장 객석을 채우려면 그 도시에 일상적으로 관광객을 비롯한 ‘지출에 관대한’ 사람들이 있어야만 한다. 한국관광공사에게 미안하지만 한국이 뉴욕이나 런던만큼의 관광도시는 아니다. 결국 이 나라의 주요 관객층이 매일 힘들게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 내수 관객들이다 보니 널리 알려진 해외 라이선스 공연이 아니면 초기 ‘티켓빨’은 좀처럼 붙지 않는다. 캐스팅도 마찬가지다. 강력한 팬덤이 구축되어 있는 JYJ의 김준수 정도를 제외하고는 앞으로도 모든 제작사는 웬만한 인기 배우들을 캐스팅한다 하더라도 매번 새로운 공연을 런칭할 때마다 매출에 부담을 넘어선 공포를 느끼게 될 것이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관광객 없는 서울을 탓하지만 말고, 김준수 캐스팅을 못 한다고 서로를 견제하지만 말고 제작사 스스로 자본의 성격과 구성을 바꾸어야 한다. 지금처럼 소수의 제작자가 독점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 혹은 집단이 각자의 지분을 가지고 함께 참여해 큰 투자자 그룹의 일원이 되어 위험 요소를 분산하는 것이 필요하다. 해외 공연계나 최소한 한국 영화계처럼 말이다. 그런데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아마 이번 세대에는 불가능한 미션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공연예술 프로듀서는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브로드웨이에서는 프로듀서가 복제 예술이 아닌 무대에서 실연하는 예술을 만들기 위한 자부심을 지키고자 자신의 비전을 설명하고 토론하며 투자자들을 하나씩 유치하며 가기 때문에 준비기간이 길다. 몇몇 사람들이 모여 6개월 만에 뚝딱 만들어내는 한국 뮤지컬은 그 자부심이 빠져 있다. 그건 그냥 로또일 뿐이다.

너무 비관적인가? 그렇게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너도나도 ‘불가능은 없다’는 식의 광고 문구만 믿고 실질적인 대책이 없다면 조만간 이 산업은 멸종될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훗날 역사가들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서양 뮤지컬이 한 20년 정도 인기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라고만 기록할 확률이 높다. 그러니까 지금 뮤지컬로 돈 버시는 분들. 앞으로 10년 안에 새로운 직업을 찾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해보심이 좋을 듯하다. 나도 이참에 앞날이 창창한 동료와 후배들을 위해 직업소개소를 하나 차릴까 생각 중이다. 일단 나부터 살자.

교정. 김영진




목록

SPECIAL

image Mnet 악행전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