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속 터지는 선택의 다른 가능성

2014.08.01
이집트 카이로에서 도심을 빠져나와 주택가로 들어서면 퍽 낯선 풍경이 등장한다. 벽돌집이 하나같이 미완성이다. 지붕이 없거나, 창문이 없거나, 기둥만 솟아 있고 벽이 없거나, 아예 이 모든 게 없다. 집주인은 돈이 생기면 공사를 이어 가고 돈이 떨어지면 방치한다. 취재를 도와주던 현지 가이드 에즈딘이 무심히 설명했다. “그렇게 10년도 짓고 20년도 짓고, 일이 꼬이면 대를 이어 짓는다.” 거의 제정신이 아닌 얘기처럼 들린다. 왜 돈을 모아서 한 번에 건물을 올리지 않고 그토록 오랫동안 돈을 묶어둘까. “역시 가난한 동네는 못사는 이유가 있네. 사람들이 멍청해서 그래”라는 결론은 꽤 유혹적이지만, 잠시만 참아주시라.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아비지트 배너지&에스테르 뒤플로)의 두 저자가 보기에, 미완성 벽돌집의 핵심은 건축이 아니다. 저축이다. 강력한 강제력이 없다면 목돈을 모으는데 실패하리라는 것을 가난한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미완성 벽돌집은 ‘자신도 손댈 수 없는 저축’이다. 집이 완성되지 않는다면 중간에 들어간 돈은 사실상 가치가 사라지므로, 벽돌집 저축은 중도해지가 불가능한 적금과 같은 효과를 낸다. 돈을 탕진할 위험을 차단하는 대가로 돈이 오래 묶이는 손실을 감수하는 셈이다.

가난한 사람은 합리적이지 않아서 가난한가? 합리성에는 두 가지가 있다. 평균수익을 극대화하는 합리성과, 최대한 위험을 회피하는 합리성.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전자다. 이때는 몇 번 손실쯤은 감수할 수 있다. 평균이 우리를 구원할지니. 하지만 당신이 생존한계선에 있다면 후자가 작동한다. 단 한 번 손실은 생존한계선 아래로 당신을 끌어내린다. 그걸로 끝이다. 다음 기회란 없고, 평균도 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런 칼날 위에서 ‘종류가 다른 합리성’을 발휘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아이를 많이 낳는다. 가난한데 입을 늘리다니 멍청해. 하지만 아이가 많으면 여러 직업을 시킬 수 있고(위험 분산), 생활수준이야 어쨌든 생존 가능성은 높아진다. 가난한 농부들은 손바닥만 한 밭을 이곳저곳에 갖고 있다. 밭을 한데 모아서 시간과 노력을 아껴야지 멍청해. 하지만 한 곳에 모인 큰 밭이 기후이변 병충해 도적질에 노출되는 순간, 농부는 죽는다. 가난한 사람들은 직업이 여럿이다. 전문성을 쌓아야지 멍청해.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생산성 좋은 새 종자를 여간해서는 쓰지 않는다. 멍청해. 하지만….

이 책은 가난한 사람들의 ‘속 터지는 선택’을 새로운 눈으로 보도록 해 준다. 당신이 평균수익의 세계가 아니라 생존한계선의 세계에 갈 때에는 합리성의 스위치를 바꿔 넣어야 한다는 깨달음도 함께. 그럴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글쎄. 노벨상 수상자인 머튼과 숄스를 내세운 헤지펀드 LTCM은 장기적으로는 수익이 난 포지션에 투자하고도 단 한 번 치명적 손실을 감당하지 못해서 파산했다. 벽돌집으로 저축을 하고 잔뜩 아이를 낳으며 새로운 종자는 쓰지 않는 이들의 눈으로 보면, 이 노벨상 수상자들이야말로 지독히 멍청해 보일지도.

천관율
<시사IN> 기자. 6년째 정치 기사를 쓰고 있다. 경제팀에 보내자니 산수가 안 되고, 국제팀을 시키려니 영어가 젬병이고, 문화면을 맡기에는 감수성이 메말랐고, 사건기자를 만들기엔 치명적으로 게으르다고 조직이 판단했다. 내막 모르는 어른들은 인정받아서 오래 있는 줄 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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