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tlight] 남주혁│① 지금, 영광의 순간

2014.07.30


공부에는 그리 소질이 없었다. 대신 키는 컸다. 후에 다 자라서 188cm가 됐을 만큼. 그래서 아버지는 농구를 하라고 권유했고, 중학교 내내 농구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큰 키에 단정한 얼굴선을 가진 남자아이. 그래서 JTBC <학교 다녀오겠습니다>에서 남주혁이 교실 문을 나설 때 여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는 것은 이미 학창 시절 경험한 일들이었다. 그가 학교에서 농구를 할 때면, 소녀들은 건물 창밖으로 그를 보며 환호를 질렀다. 어쩌면 악동뮤지션의 ‘200%’ 뮤직비디오처럼 가방을 메고 버스를 기다리는 그를 보며 설레던 소녀가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바스켓 맨’이 소녀들의 사랑만 받으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농구를 하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시합에 뛰려면 체력 단련을 위해 매일 토할 만큼 뛰어야 했다. 가끔은 배에 타이어를 묶어놓고 달리기도 했다. 그래도 고된 훈련만큼 실력은 늘었고, 실력이 느는 만큼 승리의 경험도 쌓여갔다. 자신도 몰랐던 승부욕과 경쟁심을 알게 됐고, “힘든 일을 해도 도망가지 않을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농구는 “가장 좋아하는 것”이 됐다. 지금 남주혁이 모델을 하는 태도는 농구를 했던 그때와 같다. 부상으로 더 이상 농구는 할 수 없게 됐지만, 농구를 통해 생긴 청량한 자신감은 모델을 할 수 있는 근본이 되었다. “항상 제가 생각하는 대로 다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늘 제가 최고라고 생각해요. 그게 없으면 모델 못 하죠.”

농구를 관둔 뒤 큰 키로 할 수 있는 모델을 꿈꾸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3년 내내 꿈을 모델이라고 적었던 소년은 정말 모델이 됐다. 학교를 다니느라 학원은 못 다녔지만 매일 동영상으로 런웨이를 보며 워킹을 따라 했다. 친구들이 “네가 모델이 되면 나도 한다”라며 놀리기도 했지만 농구를 하며 생긴 자신감은 그런 말들 따위 신경 쓰지 않게 했고, 응시한 1일 모델 체험에서 1위를 했을 때 “참가자 중 워킹이 제일 나았다”는 평을 들었다. 그래서 장학생으로 모델 학원을 다닐 수 있게 됐고, ‘2014 S/S 서울컬렉션’에서 데뷔한 후 벌써 10곳이 넘는 쇼에 섰다. 남주혁은 더 이상 코트에 설 수 없게 됐지만, 런웨이에서 그렇게 그의 게임을 해나간다. “제 이름이 남주혁이니까. 남쪽에서 가장 빛나는 사람이 될 거 같아요. 이름대로 된다잖아요”라고 말하고, ‘남쪽’의 의미가 남한은 너무 좁으니 “세계 남쪽 전부?”라고 하는 당돌한 자신감을 가진 채. 농구를 하던 소년은 이제 스물한 살이 되었다. 그러나 코트에서 뛰던 시절의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은 지금도 여전하고, 실패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무엇이든 달려드는 소년 같은 순수함에는 피식 웃음이 지어진다. 부상은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지만, 결국 또다시 가장 좋아하는 것을 찾아냈고, 거기에 매달렸다. 그리고, 영광의 순간이 시작되었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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