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① 웰컴 투 더 <송곳> 월드

2014.07.29

뾰족하게, 찌른다. 그리고 아프다. 최규석 작가의 웹툰 <송곳>은 제목 그대로인 작품이다. 외국계 대형 마트 안에서 벌어지는 부당 해고, 그리고 그에 대항하는 노동조합 운동의 과정을 쫓는 이 작품은 한국 사회의 상당수를 차지하되 사회적 안전망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작품이 아프다면 누군가의 비극적 모습을 전시하고 동정을 자아내서는 아니다. 오히려 <송곳>은 우리가 그들에게 느끼는 안쓰러움에 깔린 시혜적 태도가,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느끼는 도덕적 우월감이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 일깨운다. 몸과 몸이 부딪히는 투쟁의 영역에서 낭만적이고 관념적인 선의란 안일함의 다른 말이다. 이 작품을 보고 아픈 건, 우리 안의 안일함을 깊게 찌르기 때문이다. <아이즈>의 이번 스페셜은 이 서슬 퍼런 예봉의 의미에 대해 두 가지 시선으로 고찰해보고 그럼에도 심각함에 매몰되지 않는 작품의 미덕을 주인공 이수인의 매력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또한 최규석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세계를 뾰족하게 다듬는 과정을 직접 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웰컴 투 더 리얼월드! 노동자들의 시위와 그에 대한 용역업체의 폭력적인 진압을 보고 “이게 뭐죠?”라고 묻는 이수인에게 구고신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이것은 독자들에게 <송곳>이 직접 건넨 말일지도 모르겠다. 어서 와, 진짜 세상은 처음이지? 여성 노동자들이 거구의 남성 용역 직원들에게 추행을 당하고, 공권력은 수수방관하는 세상. 그 자체로 만화이고 픽션인 <송곳>이 현실의 독자에게 역으로 진짜 세상을 말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 눈에 비치지 않는 동시대의 단면을 드러냈다는 건강한 자신감처럼 보인다.

하지만 <송곳>의 리얼리티가 빛나는 건, 아주 작은 정의감만 있다면 울컥할 것 같은 노동 탄압의 순간을 보여줄 때가 아니다. 고난의 전시를 통해 독자를 울분의 늪에 빠뜨릴 수 있는 지점에서 오히려 <송곳>은 어딘가 여유로운 구고신의 표정을, 집회 신고를 누가 먼저 할 것인가를 가르는 달리기 승부 같은 것들을 보여준다. 정당한 생존투쟁이 짓밟히는 모습은 누군가에겐 쇼킹한 경험이지만, 누군가에겐 매일같이 견뎌내는 삶의 현장이다. 같잖은 동정심은 핍박받는 노동자들을 여전히 객체로 만들지만, <송곳>은 그들을 자신의 세상을 살아내는 주체로 온전히 복권시킨다. 처음으로 시위 현장을 본 이수인은 “이렇게 안 되도록 조심”해야겠다고 말하지만, 해당 시위자는 “노조를 만들자마자 다 해고시켜버리는데 뭘 어떻게 조심”해야 되느냐고 반박한다. 그들의 세상에서 부조리와 폭력은 일탈이나 옵션이 아닌 기본 사양이다. 그래서 폭력의 피해자가 아닌 싸움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송곳>이 ‘리얼월드’를 말할 수 있는 건, 실제로 세상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니라 이 싸움 자체가 하나의 세상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사회적 발화로서의 <송곳>이 의미 있는 건 이 지점이다. 주인공 이수인이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회사의 부당해고에 대항하는 과정을 만화로 그려낸다는 건, 또 포털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볼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도 파격적이다. <송곳>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리얼월드’로 독자의 세상에 균열을 일으킨다. 부당한 현실을 비춰 독자의 정의감을 자극하고 공분을 이끌어내긴 쉽다. 하지만 <송곳>은 그렇게 독자가 자신의 정의감을 재확인하고 만족스럽게 돌아서게 두지 않는다. 생존권 투쟁은 선의와 악의가 부딪히는 일회적 이벤트가 아닌,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감내하는 삶의 본질이다. 이 투쟁의 장에서 사장이 잘못했네, 라는 반응은 옳은 말일지언정 무력하다. 1부에서 모든 곳의 걸림돌로 살아온 이수인의 꼿꼿한 양심에 방점을 찍었던 작품이 2부에서 구고신과 현장의 노동자들을 통해 청렴한 이수인의 실천적 안일함을 꼬집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개념 있는 작품을 본 개념 있는 나, 라는 도덕적 포만감에 배를 두드리는 걸 이 작품은 허용하지 않는다. 값싼 공감보단 인식의 변화를 요청한다.

그래서 <송곳>은 가장 전통적인 의미에서 계몽적인 작품이다. 호소하거나 선동하기보다는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당장 이수인과 노조원들이 회사에 힘겹게 대항하는 걸 그리는 순간에도, 빨리 동참하지 않느냐고 호들갑을 떨기보다는 꾸준히 이 싸움을 이어온 사람들의 모습을 비춰주며 이 싸움의 의미와 맥락을 보여준다. 중간중간 구고신의 입을 빌려 말하는 비정규직에 대한 우화나 노동법에 대한 강의가 작위적이거나 뜬금없지 않은 건, 작품의 주제와 서사 모두가 이 낯선 ‘리얼월드’를 이해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구고신은 학교에서 노사 간 교섭을 가르치는 독일과 프랑스의 선진적 제도를 이야기해준다. 모두 알고 있듯 한국은 이런 것과 거리가 멀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에겐 <송곳>이 필요했다. 제도 교육에서 앞서서 이야기해줘야 할 것을 왜 웹툰이 이야기해줘야 하는지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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