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③ 최규석 “도둑놈들이 있다면 그들이 왜 저렇게 움직이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나”

2014.07.29

웹툰으로 만나는 최규석 작가. 네이버 웹툰 어플리케이션의 <송곳> 소개 문구다. <습지생태 보고서>, <대한민국 원주민>, <울기엔 좀 애매한> 등의 작품을 통해 한국 사회의 어떤 한 단면을 때론 통렬하게 때론 웃음기를 담아 그려내던 그는 한국 만화 시장에서 하나의 브랜드였고, <송곳>은 그런 그의 웹툰 데뷔작이라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의 인터뷰는 ‘그’ 최규석 작가에 대한 것이 아니다. 앞의 소개 문구처럼 처음에는 최규석의 <송곳>이었다면, 이제는 <송곳>의 최규석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하지 않을까. 그만큼 항상 한국 사회의 낮은 곳을 향하던 그의 깊은 시선은 한국 노동 문제를 다루는 <송곳>에 이르러 한층 더 성숙해지고 좀 더 날카로워졌다. 어쩌면 작가 스스로도 송곳 위에 선 것처럼 아슬아슬한 기분으로 그릴 것 같은 이 치열한 경험을 직접 들어보고 싶은 건 그래서다.


<송곳> 2부 연재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들었다.
최규석
: 곧 끝나고 한 달 정도 휴재할 계획이다. 우선은 세이브 원고도 없고, 며칠 열심히 취재를 다녀야 할 것 같다. 최근 일어났던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사건에도 관심이 있어서 좀 만나보고 싶다. 당장 3, 4부에 그 취재 내용들을 담아낼 건지는 모르겠지만.

<송곳> 연재 전에도 노동 활동가들을 많이 취재한 걸로 아는데.
최규석
: 취재를 한다고 했지만, <송곳>을 처음 구상과는 달리 구고신이 아닌 이수인 중심으로 스토리를 만들면서 좀 더 많은 취재가 필요해졌다. 구고신 중심이라면 에피소드 형식으로 각 업체의 일들을 조금씩 다룰 텐데, 지금의 <송곳>은 이수인이 있는 푸르미 한 개 업체만 깊게 파려니 디테일이 부족해지는 거다. 활동가 취재는 했지만 회사 쪽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는 인터뷰를 한 적이 없어서 조금이라도 그쪽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

그 내용들을 바탕으로 3부부터는 본격적인 노조 활동을 보여주게 될까.
최규석
: 빨리 파업에 들어가야지. 이수인과 구고신의 갈등도 그려야 하고. 투쟁이 본격화될 때 이수인이 하고 싶은 걸 구고신이 맞춰주지 못할 때 그들 안에서도 갈등이 생길 수 있겠지. 이수인의 숨겨진 공격성 같은 것들이 튀어나올 수도 있고.

2부에선 기본적으로 이수인이 구고신의 말을 듣는 편인데. 그럼에도 갈등이 일어나는 건, 이수인이 구고신이 되진 않는다는 뜻인가.
최규석
: 나름의 주제이기도 한데,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현장에서 보면 노무사도 아니고 변호사도 아닌데 노동 문제 상담을 해주는 분들이 있다. 사실 그분들은 노무사나 변호사가 되면 일을 하기 편해진다. 법정에도 들어갈 수 있고 자기가 조직하려는 대상 가까이에서 일을 할 수 있지. 그런데도 왜 안 그러느냐고 물어보면, 조직가는 필요한 사람을 불러 조직하는 거지 자기가 직접 될 필요는 없다고 하더라. 이 일에 변호사가 필요하면 변호사를 불러 조직하면 된다는 거다. 팀이고 분업이다. 이수인은 사람들이랑 거리가 좁혀지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인데, 그게 운동에서는 핸디캡일 수 있지만 굳이 그가 변할 필요 없이 붙임성 좋은 주주임 같은 사람이 그 역할을 해주면 되는 거다.


사실 주제도 주제지만 이수인과 구고신의 각기 다른 모습도 <송곳>의 큰 매력이다.
최규석
: 초반에 이수인과 구고신을 설정할 때부터 최대한 매력적인 캐릭터, 실제로 친구가 되고 싶거나 연애하고 싶거나 내 삼촌이면 좋겠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다. 소재가 소재다 보니 중심인물이 마음에 들어야 쫓아갈 수 있을 테니까. 가령 이수인의 경우 그런 인간을 한 번쯤 그려보고 싶었다. 최근 세대들은 어느 수준 이상으로 사람들끼리 가까워지는 게 당연한 한국의 문화를 싫어하는데 그걸 전면에 드러내는 캐릭터가 한 번쯤 나올 때가 됐다고 봤다. 그걸 반가워하지 않을까 싶었고.

반대로 구고신은 그런 이수인에게 직원들과의 호형호제를 권하는 사람이고.
최규석
: 실제 활동가들의 모습을 차용한 게 있지. 노동자를 조직해야 하는 사람이 너무 스마트하고 멀끔히 생겨서 경어를 딱딱 쓰면 그게 통할까. 빨리 형님 동생 트고, 뭔가 싫은 소리를 할 때도 ‘그따위로 해서 뭐하겠어!’ 이렇게 시원스럽게 나가면서 친해지는 거지. 그런 성격이라 버티는 것일 수도 있고.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좀 덜 받는 유형이 아닐까 싶다.

매력적인 두 인물의 대비 때문에 BL 타입의 2차 창작도 자주 나오는데.
최규석
: 그런 거 보면 재밌다. 정말 재밌게 소비한다는 느낌. 내가 그런 걸 노린 건 아닌데, <송곳>을 그릴 때 내 연애의 경험을 계속 끄집어내는 건 있다. 사실 여기서 벌어지는 일들은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 아닌가. 그렇다면 그나마 비슷한 걸 떠올려야 한다. 일상에서는 다들 예의라는 막 안에서 움직이지 않나. 그런데 법정 다툼이나 소송, 노조 문제는 그런 예의의 막을 벗어버리는 상황이다. 그것과 가장 비슷한 일상의 경험이 연애 같다. 연애를 하면 예의의 막을 벗고 본성이 드러나지 않나. 그런 감정이 은연중에 전달되기 때문에 BL로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실제 연애 감정은 아니더라도 두 사람이 부딪혔을 때의 묘한 긴장이 있다. 이수인은 자신의 감정을 꾹꾹 잘 누르는 사람인데 왜 유일하게 구고신의 비판 앞에서만 버럭 했나 싶었다.
최규석
: 뜨끔한 게 있었겠지. 그때 구고신이 던진 대사들이 이수인에게는 아픈 게 있었다. 본인에게 해고 업무가 떨어지지 않았으면 가만있었을 것 아니냐고, 나쁜 사람 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니냐고. 이수인은 지금까지 자기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사람인데, 이제 자신의 범위를 넘어서는 정의로운 일을 하려고 구고신을 찾아갔다가 찔리는 말을 들어서 더 방어적으로 나간 것일 수 있다.

그런 이수인의 멀끔함과 싸움의 지저분함을 피하지 않는 구고신의 대비가 노동 운동의 현실을 더 잘 보여주는 것 같다. 가령 이 현장에서 ‘폭력은 나쁘다’는 말은 무의미하지 않나.
최규석
: 구고신은 이 폭력이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를 먼저 따지는 사람이다. 그가 보기에 폭력이 옳고 그른지를 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만약 기초적인 사회적 계약이라는 게 있다면 모두가 같이 일해서 서로서로 잘 갈라 먹고, 문제가 생기면 서로 어느 정도 대등하게 싸운 뒤에 다시 배분하는 형태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저쪽에서 칼을 들고 이쪽은 손 하나가 잘린 상황이다. 말하자면 의경 같은 공권력이 칼 역할을 하는 거겠지. 절대적으로 유리한 싸움인데 저쪽에서 교섭에 들어오진 않지. 만약 저쪽의 물리력이 약해진다면 교섭이 시작되는 게 지금보다는 낮은 단계에서 가능할 거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은 교섭에 들어가기 위해 비슷한 물리력을 행사하는 방법밖에 안 남은 거다. 거기에 폭력이 맞다 틀리다 하는 건 좀 무의미하지. 폭력은 잘못된 게 맞다. 맞는데 그에 상응하는 법적 처벌을 감수해서라도 행사하고 생존권을 확보하겠다는 거다. 어차피 법을 어기고 다 처벌 받는다.

이처럼 절박한 생존 투쟁을 나름 민주적인 정권이라고 평가받던 과거 노무현 정권을 배경으로 그리는 이유가 있을까.
최규석
: 일단 <송곳>을 처음 구상한 게 노무현 정권 말기였다. 노동 운동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도 딱 작품에 나온 2003년 즈음이고. 분신하는 열사들이 한 달에 한 명씩 생기고 그럴 때였으니까. 그때부터 관심을 가졌는데 지금 와서 박근혜 정권이나 이명박 정권을 그리면 좀 비겁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또 이게 정권의 문제로 보이면 안 되는 거라고 봤다. 쟤네 보수 정당만 몰아내면 이런 문제가 다 없어질 거라는 생각 같은 것. 스스로를 진보라 여기는 사람들은 진보 진영 대통령이 당선되면 잘되고 있겠거니 어느 정도 신경을 끌 수도 있는데, 이건 그런 종류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다른 피통치자들끼리의 갈등은 제법 합리적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만, 이 싸움은 통치자 대 피통치자의 대결인 만큼 전혀 결이 다르다.

이런 관점을 통해 대중에게 노동 운동을 좀 더 긍정적으로 보여주겠다는 생각이 있는 걸까.
최규석
: 그냥 단순히 눈에 보이는 대로의 비율이 아니라 실제 세상의 비율을 보여주고 싶었다. 일상이나 뉴스에서 보여주는 비율이 아닌, 우리 세상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힘의 관계나 다양하게 뒤섞인 문제들을 가능한 한 원래 크기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노조는 좋은 거니까 노조를 더 키우자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노조가 저런 상황에 처해 있고 어떤 문제 때문에 이러한 행동을 하는구나, 까지는 보여주려는 거다. 노조를 도둑놈이라고 해도 된다. 다만 도둑놈들이 있다면 그들이 왜 저렇게 움직이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나. 산적들 다 때려잡으라고 한다고 화전민이 산적 되는 걸 막을 수는 없지 않나.

그건 기존 미디어가 이 문제를 제대로 된 비율로 못 보여주고 있다는 인식이 깔린 건데.
최규석
: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잘 다루지 않지 않나. 엄청나게 중요한 문제다. 내 생각에는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단초적인 거다. 민주주의라는 건 개개인이 생각할 시간을 기본 권리로 가져야 가능한 체제다. 당장 먹고살기 바빠서 정치에 관심 가질 시간이 없다면, 당장 투표할 시간도 없다면 어떻게 민주주의가 가능하겠나. 그렇다면 그 시간을 주는 게 무엇이겠나. 일을 줄이고 먹고살 만큼 임금을 주는 거지. 그 단계가 해결되고 나서나 우리에게 이런 문제가 있으니 이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말이 통하는 거다.

남들이 말해주지 않는 걸 내가 이야기해야겠다는 책임감은 왜 느끼는 건가.
최규석
: 어쨌든 세상은 다 분업을 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중 뭔가 의미 있는 걸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송곳> 같은 이야기를 다룰 만큼 능력이 잘 갖춰진 작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한국 상황에서 나만큼 갖추고 있는 작가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웃음) 일종의 비교우위? 그래서 나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사실 나도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비꼬고 웃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주제는 한국 상황에서는 어떻게 비꼴 수가 없는 상황인 거지. 가령 미국의 <심슨 가족>에서는 환경단체고 노조고 다 깐다. 그것들이 대중 문화 안에서 어느 정도 다뤄지고 있기 때문에 까도 뭘 까는지 알고 대중도 함께 웃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기반이 부족하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웃음을 위해 노조를 비꼰다면 사람들은 웃지 않고 그냥 ‘깔 거 까네’라고 생각할 거란 말이지. (웃음)

방금 말한 비교우위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어쨌든 이런 걸 보고 그냥 못 넘어가는 성격의 인간으로 자란 것 아닌가.
최규석
: 왜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 사고의 가장 기반에 깔린 건, 남과 내가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거다. 내가 내가 된 것도 우연이고, 쟤가 쟤가 된 것도 우연이니까. 초등학교 1학년 때 덩치도 크고 누가 누구를 괴롭히면 세워놓고 때리고 그랬다. 그러다가 친구랑 대판 싸운 적이 있는데 이기질 못했다. 사실 그 나이에 이기는 게 어딨나. 서로 한 대씩 치고 아야, 하는 거지. (웃음) 그 기억이 꽤 강하게 남은 것 같다. 아, 맞으면 아프구나. 세상 사람 누구나 맞으면 아프겠구나. 그런 것에서 출발해 스스로 자기 논리를 계속 세우다 보니까 그 논리에서 어긋나는 상황을 못 견디는 사람이 된 것 같다. 가령 친구끼리 싸움을 하더라도 그냥 싸우는 건 볼 수 있는데 “별것도 아닌 게 찌그러져 있지” 이런 말이 나오면 분노한다. 맞설 권리도 없는 거냐, 이러면서. 그럼에도 왜 이런 사람이 됐는지는… 모르겠다.

남과 내가 다르지 않기 때문에 남을 아껴야 하는 걸까.
최규석
: 내가 무슨 성자처럼 세상에 굶는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배불리 밥을 먹을 수 없는 건 아니다. 다만 내가 누리는 것들은 내가 우연히 갖게 된 거고 저 사람이 우연히 가지지 못하게 된 것인 만큼, 행운을 누리면서도 이게 행운인 건 알아야 하는 거지. 그리고 행운을 얻지 못한 사람을 위해서도 뭔가 해야 하는 거고.

노동당원으로 활동하는 것도 그런 것 때문인가.
최규석
: 어디 한군데라도 돈을 내고 있어야 된다는 생각에. (웃음) 어쨌든 작은 투쟁의 현장마다 노동당의 지원이 조금씩 있다. 당에서 밥차를 운영하는데 노숙 집회 같은 게 장기화되면 밥차가 가서 밥을 해준다. 결국 이런 건 시간 싸움이고 누가 더 오래 버티느냐의 문제인데 그런 것으로도 어느 정도는 도움을 줄 수 있다. 여기서 대통령은 배출하지 않아도 된다. 어쨌든 고통을 겪는 사람들 곁에 누군가 있어 주고, 그게 나랑 같은 당원이고, 내가 거기에 조금이나마 돈을 내고 있다는 게 흐뭇하지 않나. 아주 약간이라도 힘을 보탠 것 같아서.

<송곳>을 그리는 것으로도 약간은 힘을 보태준다는 기분이 드나.
최규석
: 가끔. 투쟁 사업장에 있거나 노조 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이 댓글을 다는 걸 볼 때가 있다. 재밌어하고 위로받는다고 하는 걸 보면 좋다. 사실 위로라고 하는 게 별거 아니다. 그냥 자기 얘기를 해주는 게 그들에게는 위로가 된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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