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④ 이수인을 괴롭히는 열 가지 방법

2014.07.29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히어로, <송곳>의 주인공 이수인은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성실하고 청렴하며 일상에서 정의를 구현하고 원칙을 칼같이 지키면서 살아온, 관념적으로는 영웅의 조건을 다수 갖추었음에도 정작 그는 씁쓸하게 자조한다. “어쨌든 나는 모든 곳에서 누군가의 걸림돌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고 마는 세상의 요철들을 그냥 넘기지 못할 만큼 예민하고, 구부러지기보다 부러질 것을 각오하는 쪽에 가깝지만 매번 후회할 짓을 하고 마는 자신에게 지친 나머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타인과의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그는 노동운동가 구고신을 만나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성장한다. 그래서 능글맞고 임기응변에 능한 구고신을 비롯해 노조 활동을 함께 하는 동료들과 가까워지며 이수인의 포커페이스가 무너지는 순간은 <송곳>의 결정적 재미 포인트이기도 하다. 언제나 냉정하고 침착해 보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놀려주고 싶은 이수인을 곤란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열 가지 방법을 고민 끝에 내놓는다.


정지선에서 차를 멈추지 않고 횡단보도 위에 정차하는 경우 범칙금과 벌점이 함께 부과되지만 적지 않은 운전자들은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 그러나 새벽 2시, 인적 없는 국도에서도 정지선을 완벽히 지킬 것 같은 원칙주의자 이수인이라면 자신이 탄 차가 보행자들의 길을 막아 비난받는 상황이 30초에 불과하더라도 견디기 힘든 모멸감을 느낄 것이다. 신호가 바뀔 때까지 안절부절못하던 이수인이 내리면서 문을 조금 세게 닫는 것으로 의사를 표현할 수도 있으니, 두고두고 밉보이지 않도록 정지선을 지키자.


직장에서는 늘 머리카락을 말끔히 빗어 넘기고 앞머리 몇 가닥만 늘어뜨린 헤어스타일은 이수인의 트레이드마크다. 그러나 매일 아침 사용하는 헤어 왁스가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물론 이수인 자신은 별생각 없이 출근할 수도 있다. 다만 마주치는 직원들마다 “과장님 머리 바꾸니까 다섯 살은 어려 보인다~”, “우리 이 과장, 전에는 이마에 바늘 꽂아도 피 한 방울 안 나게 생긴 줄 알았는데 이렇게 보니까 귀엽네”, “형님 여자 생기셨나 봐요. 예뻐요?” 등 개인적인 평가와 질문 공세를 펼침으로써 이수인의 정신을 너덜너덜하게 만들 수 있다.


자사 직원이 협력업체 직원에게 업무 지시하는 잘못된 관행을 타파하고, 직속 부하 직원이라 해서 편의를 봐주는 일 없이 공정하게 처리하는 이수인의 대쪽 같은 성품은 안타깝게도 그에게 ‘개꼴통 싸이코’라는 별명을 안겼다. 그러니 원칙을 지키고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험난한 가시밭길인지 알고 있는 그에게 각자 달려가 다른 사람이 잘못했다고 우기며 자신의 편을 들어달라고 조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매우 곤란해하다가 결국엔 양측의 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어느 쪽 편도 들어주지 않는 이수인의 ‘나 또 미움받겠구나’라는 표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수인은 나이와 직급을 떠나 공적인 관계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깍듯하게 존대하며, 구고신을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어느 문장에서부터 자신에게 말을 놓았는지까지 기억할 만큼 예민한 성품이다. 직원들과의 호형호제가 불편하다는 이수인이 모두와 한 발 더 가까워지도록 야자타임을 제안해보자. 제한 시간 10분에서 약 3분 47초 동안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니 해도 될지 몰라 뻐끔거리는 이수인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30분으로 시간을 늘린다고 협박이라도 해야 비장한 얼굴로 속내를 털어놓을지도 모른다. “고… 고신아, 나한테 자꾸 인기 없는 사람이라고 놀리는데… 내가 그래도 군대 있을 때 우수 소대장도 몇 번 하고 리더십 좋다는 얘기도 들었거든?”

노조 활동을 위해 도시락을 싸와 함께 먹으려고 하는 등 동료들과의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이수인을 위해 단합대회 차 노래방에 함께 간다. 이수인이 출입문 바로 옆 소파에 한 칸 떨어져 앉아 긴장한 표정으로 정직하게 탬버린을 흔들고 있을 때 ‘잔소리’나 ‘그대 안의 블루’를 신청한 뒤 마이크를 건넨다. 제발 누구라도 흑기사가 되어주길 바라며 방 안을 두리번거리지만 아무도 구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수인의 황망한 눈빛에 이어, 자막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반 박자 늦게 따라 부르는 어색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레벨을 높여 ‘버스 안에서’를 신청하고 랩 파트를 시킨 뒤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리겠다고 종종 협박할 수도 있다.


노조원 가족들과의 나들이, 유치원생 정도의 자녀들을 데리고 나온 동료들이 모처럼 여유를 즐기며 수다에 몰입하기 시작하면 아이들을 통제하는 임무는 자연스럽게 이수인에게로 넘어올 것이다. 아이들이 위험에 빠지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안전하고 공정한 놀이의 규칙부터 가르치려 할 이수인, 물론 기운 넘치고 흥이 오른 아이들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니 그가 이성의 끈을 놓기 직전의 경계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마음껏 볼 수 있다. 


자료의 내용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한 페이지에 굴림체, 바탕체, 궁서체, 양재매화체, 옥수수체 등 다섯 종류의 폰트를 사용하고 오타와 비문을 섞어놓으면 이수인은 어디서부터 손봐야 할지 아득한 심정이 되어 조심스레 사소한 문제부터 지적할 것이다. 이때 상대가 ‘내가 작성했지만 이 문건은 실로 완벽해 자랑스럽다’라는 태도를 드러낼수록 이수인은 난감함을 감추지 못하고 어떻게 해야 원본 파일을 넘겨받아 기초부터 수정할 수 있을까 고민할 테니 실컷 그 모습을 구경한 뒤 수정할 수 있게 해주자.


백팩은 죄가 없다. 다만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행여 지렁이라도 다칠까 괭이질조차 조심스럽던” 모친의 예민함을 닮은 데다, 매사에 폐 끼치기를 싫어하는 이수인에게 상체의 3분의 2 사이즈인 단단한 재질의 네모진 백팩을 메게 해보자. 오전 8시 10분, 신도림역에서 그가 2호선 열차를 타게 된다면 움직일 때마다 터져 나오는 뒷사람의 짜증 섞인 신음과 뒤통수에 꽂히는 따가운 눈총에 순간이동을 간절히 꿈꾸며 땀을 뻘뻘 흘리게 될 것이다. 마침내 등을 벽에 기대고 딱 붙어서기까지 그는 얼마나 괴로운 시간을 보낼 것인가!


대중교통이 거의 끊기고 택시 잡기는 하늘의 별 따기인 심야의 종로, 오로지 귀소본능만이 남아 있는 무수한 취객들 사이에서 홀로 ‘따블!’을 외치지 않고 고고히 손을 들어 택시를 잡으려는 이수인의 고집은 그를 50분 이상 길가에 세워놓고야 말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운 좋게 한 대를 잡아타더라도 기사가 미터기를 누르지 않은 채 구간 요금을 통보한다면 이수인은 ‘분연히 떨쳐 일어나 아까의 고생을 반복할 것인가, 피로한 몸을 시트에 뉘어야 하니 현실과 타협할 것인가’라는 중대한 고민에 빠져들 것이 예상된다. 다만, 불행 중 다행으로 서울시가 심야버스를 운행 중이다.


답을 듣고자 하기보다 상대를 곤란에 빠뜨리는 것이 목적이라 할 수 있는 함정이다. 비록 촌지 기대하는 담임에게 “집에 돈 없습니다”라고 잘라 말해 두들겨 맞고, 부하 직원들 해고하라는 상사에게 “그거 불법입니다”라고 맞설 만큼 올곧은 성품의 이수인이라도 언제나 진실만이 좋은 결과를 약속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짓말도 해봐야 느는 법, 어설프게 시선을 피하며 부정하다가 추궁당하면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진실을 얘기하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표준체중과 건강의 상관관계 등으로 논점을 바꾸려다가… 결국엔 막다른 골목에 몰리고 말 것이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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