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빈 “어쨌든 영화는 좀 재밌는 게 좋다”

2014.07.28
지난 23일, <군도: 민란의 시대>(이하 <군도>)는 역대 국내 개봉작 가운데 최고의 오프닝 스코어(55만 1,290명)를 기록했다. 하정우와 강동원, 티켓 파워 강한 두 배우의 존재를 감안해도 놀라운 수치다. 조선 철종 시대를 배경으로 험상궂은 의적 떼가 아름다운 악당 양반과 맞서는 액션 활극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비교적 분명하게 갈린다. ‘볼거리가 많다’고도, ‘남는 게 없다’고도 한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리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용서받지 못한 자>, <비스티 보이즈>,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를 만들었던 윤종빈 감독이 전작들과 전혀 다른 장단점을 지닌 작품을 내놓았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그는 무엇을 원했던 것일까. 올해로 데뷔 10년을 맞이한 윤종빈 감독을 만났다.

요즘 <군도>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드나.
윤종빈
: 나는 계속 오락영화를 찍겠다고 얘기해왔고 <군도>는 액션활극이라고 공공연히 말했는데 사람들이 생각보다 그 얘길 많이 믿지 않았다는 걸 느꼈다. (웃음) 그래서 한식 먹으러 왔다가 양식이 나오니까 좀 당황한 사람들도 있는 것 같고, 반면 ‘윤종빈의 <군도>’가 아니라 <군도> 자체를 즐긴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이것만은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한 목표가 있었나.
윤종빈
: 일단 배우가, 하정우와 강동원이 돋보이는 영화를 찍는 게 가장 중요한 전제였다. 그리고 <군도>를 준비하며 <홍길동>, <장길산> 등의 소설들을 다시 읽었는데, 정말 훌륭한 작품들이지만 주인공을 너무 영웅화시켰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시대에 비해 너무 깨어 있고, 능력도 너무 출중한 거다. 나는 단 한 명의 위대한 영웅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합의가 오랫동안 누적되어야 세상이 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군도>가 오락영화임에도 누군가를 그렇게 영웅화시키고 싶지 않았다. 또한 도치(하정우)와 조윤(강동원)의 마지막 대나무밭 액션 신이, 표면적으로는 선과 악의 대결이지만 결국은 자기 안의 번뇌나 트라우마와 싸우고 그것을 떨쳐내는 모습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하정우와는 데뷔작부터 계속 함께 해오고 있지만 강동원과는 첫 작품이다. 전부터 팬이어서 같이 작업하고 싶어 했다던데, 어떤 점에 끌렸나.
윤종빈
: <형사 Duelist> 때 정말 신비롭고 아름다워서 멋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는 소년 같기도, 악동 같기도 하고 인간적으로 느껴져서 좋았다. 비주얼도 좋지만 사투리가 계속 배어 있는 말투가 외모와 맞지 않는 구수한 맛도 있고, 그래서 한번 같이 작업해보고 싶었다.

돌무치를 스카우트해 도치로 키우는 의적 떼, ‘지리산 추설’의 구성도 다양한 매력이 있다.
윤종빈
: <수호지>부터 시작해 <임꺽정>이나 <장길산>, 심지어 <어벤져스>까지도 기본 세팅은 비슷한 것 같다. 우두머리, 지략가, 힘쓰는 사람, 빠른 사람, 활 쏘는 사람 등. 그런데 중요한 건 그 사람들의 능력치보다도 그 안에서 드러나는 인간적인 면모였다. 도치의 유아적인 느낌, 땡추(이경영)의 오지랖 넓음, 천보(마동석)의 짝사랑, 금산(김재영)의 부성애 등. 메인 플롯은 도치와 조윤의 대결이기 때문에 서브 인물들에게 시간을 많이 할애할 수는 없지만 짧은 포인트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살릴까 고민했다.

“좋은 배우들하고만 작업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항상 그렇게 되는 건 아니겠지만 <군도>의 캐스팅은 역할의 비중을 떠나 굉장히 풍요롭다는 느낌이다.
윤종빈
: 마동석, 조진웅 씨를 비롯해 대부분은 전작을 함께 했던 배우들이고, 이성민 선배나 주진모 선배님은 전부터 꼭 같이 작업하고 싶었는데 스케줄이 맞지 않다가 이번에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김해숙 선배는 도치의 어머니로 짧게 나오지만 계속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야 하는 인물이어서 특별 출연을 부탁드렸다. 2회 촬영하셨는데 “다음엔 좀 많이 나오는 거 시켜줘”라고 하시더라. (웃음)

배우들이 함께 작업해보고 싶어 하는 감독인 것 같다. 최근 정우성도 같이 작품을 해보고 싶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고.
윤종빈
: 정우성 씨 굉장히 좋아한다. 내가 <비트> 세대라서 어릴 때 ‘너무 멋있다, 죽이지 않냐’ 하면서 봤다. 진짜 우리의 우상이었다. 


강동원이나 정우성처럼 비주얼이 뛰어난 배우는 그 지나친 미모로 인해 자칫 작품이 인물에 눌릴 수도 있는데, 어떨까.
윤종빈
: 그래서 장르가 중요하다. 리얼리즘 영화에서는 그에 맞는 배우가 필요한데 <군도>는 큰 틀에서 액션 활극이고 캐릭터도 만화적이니까 비주얼이 굉장히 돋보이는 배우가 등장해도 크게 튀지 않았던 것 같다.

<군도>는 제작비 규모가 크다 보니 ‘15세 이상 관람가’에 맞추면서 표현할 수 있는 범위에 다소 제약이 생겼다고 들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 때문에 돌파하게 되는 지점도 있었나?
윤종빈
: 어쩔 수 없을 때는 그냥 그 자체로 즐겨야지. 안 되는 일에 계속 신경 쓰면서 ‘좀 더 잔인한 걸 찍고 싶은데…’하고 스트레스받으면 한도 끝도 없다. 더 유쾌하고 경쾌하게, 15세 관람가에 맞게 찍었다.

성우의 목소리로 시대적 배경과 인물의 개인사를 들려주는 내레이션은 어떤 의도였나.
윤종빈
: 시나리오를 끝까지 쓰고 보니 중반부, 돌무치가 도치가 된 이후 다시 조윤과 만나기까지의 사이가 관객들에겐 가장 지루할 것 같았다. 조윤이 백성들을 수탈하는 과정 같은 게 몽타주로만 표현하기엔 부족해 보여서 빠르게 친절히 설명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 대목에만 내레이션이 나오면 당황스러우니까 처음부터 넣기로 한 거고, 고우영 화백 만화에 등장하는 화자 느낌으로 만화적인 효과도 더 넣어서 아예 5장 구조로 가게 됐다.

내레이터의 존재로 인해 관객이 이야기로부터 한 발 더 물러서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고, ‘장’을 나누는 것이 맥을 끊는 결과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윤종빈
: 내레이션을 쓰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호불호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더라도 결정적인 문제로 작용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영화에서는 잘 쓰지 않는 방식이지만 TV 사극에서도 내레이션이 나오니까 일반 관객은 익숙하지 않을까. 결국은 압축하는 스피드가 더 중요하다고 봤다.

도치가 18세라는 설정이나 내레이션 중 ‘민관합작사업’ 같은 현대적인 용어를 사용해 은근한 재미를 유도했는데, 기본적으로 어떻게 웃기는 걸 좋아하나. 
윤종빈
: 시나리오를 쓸 때 웃기려고 작정하는 편은 아니다. 촬영장에 앉아 있을 때 ‘여기서 이렇게 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떠오르면 본능적으로 해보는 거다. 사실 웃기고 안 웃기고를 현장에서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다. 내 원칙은 오버하지 않는 거다. 웃기려고 오버하다 못 웃기면 진짜 큰 문제지만 자연스런 흐름 안에서 스윽 지나가면 안 웃겨도 튀지 않으니까.


<군도>의 백성들은 양반, 탐관오리와 싸워서 이기기도 하고 다시 당하기도 한다. ‘지리산 추설’이 세상을 바꾸었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고, 그들에게는 찰나의 승리만이 있다. 그 이후는 <임꺽정> 같은 작품의 결말이 그랬듯 비극일 가능성이 높은데.
윤종빈
: 지금까지도 역사라는 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좌와 우의 대립이었다. 그런데 <군도>에서 그런 대립은 광장에서의 싸움 신까지고, 마지막 대나무숲 신에서는 그걸 초월하려 했다. 매번 자신이 붙잡은 양반들의 상투를 자르던 도치가 조윤의 상투를 자르지 않고 조윤의 조카를 안은 순간부터. 그리고 마지막 신에서 석양 아래 말들이 달려가는 건 하나의 큰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인간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시대로 넘어가면 좋겠다는 내 염원 같은 거였다. 세상이 바뀌었다, 아니다를 떠나 그것이 진행형이라는.

로맨틱 코미디나 휴먼 드라마 속의 이상적인 캐릭터들에 대해 “SF보다 더 SF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인물이든 이야기든 현실성을 바탕으로 한 걸 좋아한다고 했는데, 창작물의 현실성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될까.
윤종빈
: 감독이 만드는 세계, 즉 내가 짜놓은 세계 안에서의 리얼리티다. 나는 리얼리티에 대한 강박이 있어서 아마 현대극으로는 오락영화를 못 찍을 것 같다. <군도>는 다른 시대의 이야기고 오락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지만, 그러면서도 나란 사람은 결국 선과 악이 명쾌하게 갈리는 오락영화는 못 찍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윤이라는 캐릭터, 조윤과 아버지의 관계, 엔딩 신 등에서 주제성이 계속 들어간 것도 그래서다.

만약 <군도>를 현대로 옮겨온다면, 이를테면 도치가 조직폭력배의 일원이고 조윤이 재벌 2세라면 이야기는 어떻게 됐을까.
윤종
: 재벌이 조폭한테 돈 주고 끝났겠지. (웃음) 신나는 싸움 같은 건 없었을 거다. 말이 안 되니까. 다른 작품을 볼 때도 그 세계 안에 일관성이 없거나 ‘사람이 저러는 게 말이 돼?’라는 생각이 들면 몰입이 깨져버린다. 사극이나 SF라면 그렇게까지는 안 따지지만 현대극은 다르다.

결국 감독이 만드는 세계가 서울이든 우주 공간이든 얼마나 완결성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걸까. 어떻게 그 세계를 완성시켜가나.
윤종빈
: 내 경우 처음부터 큰 그림을 세팅해놓고 시작하지는 않는다. 사소한 데서 시작해서 조금씩 넓혀가는, 귀납적인 방식이다. 예를 들어 <군도>의 시작은 하정우 씨의 헤어스타일이 빡빡이면 좋겠다는 거였다. 그런데 단지 그게 머리를 보여주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어떤 이유가 있고 스토리가 담기면 좋겠다는 식으로 이어져 나간 거다.

현실의 세계는 어떻게 보이나.
윤종빈
: 너무 불투명하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선과 악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나도 섞여 있고 모두가 그렇기도 하고, 대부분 우리의 삶은 많은 부분에서 지루한 시간들의 연속이다. 홍상수 감독님 같은 분은 그런 현실의 사소한 결을 가장 잘 드러내서 영화를 찍으시는 거고, 어떤 분은 아주 다이나믹한 순간들로 영화를 만들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그 중간에 있다. 나는, ‘재미’라는 단어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영화는 좀 재밌는 게 좋다. 리얼리티가 중요하지만, 내 영화에는 뚜렷한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세상의 어떤 점을 보면 좀 더 들여다보고 싶어지나?
윤종빈
: 예상을 뛰어넘는 이야기,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것. <범죄와의 전쟁> 때가 그랬다. 조폭들이 무식하게 싸움만 할 것 같지만 로비도 하고 정치도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실제로 그들을 만나보니 기존에 알고 있던 이미지와 다르기도 했고, 웃긴 구석도 많았다. 전에 지존파 사건에 대해 조사하면서도 느꼈지만, 언제나 현실은 영화를 뛰어넘는다.

그런 현실에 밀리지 않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집요해지는 건가.
윤종빈
: 사실 내가 특별히 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관심 있는 것에만 계속 관심을 갖는 건데, 누구나 좋아하는 것에는 굉장히 집요하게 하지 않나. 그냥, 궁금해서 그럴 뿐이다.

평생 관심 가져본 적 없는 영역이 있다면 뭔가.
윤종빈
: 음… 고급 시계?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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