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이국주, 모두가 그녀를 좋아해

2014.07.28

2007 MBC 방송연예대상 시상식장, 까만 드레스를 오동통한 몸에 꽉 맞게 차려입은 한 여자가 수상소감을 밝히며 엉엉 울었다. “비호감이고 얼굴 독하다고 많이 욕도 먹고 그랬는데 방송하게 해주신 MBC 너무 감사드리고, 이 얼굴로 개그맨 아니면 뭘 하겠냐고 하면서 뽑아주신 분들 너무 감사드리고… (중략) 호감 되는 개그맨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는 시트콤/코미디 부문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이국주였다. 이후 7년이 흘러 2014년, 이국주는 정말로 호감 가는 코미디언이 되었다. “왼손으로 비비고~ 오른손으로 비비면~ 두 그릇이네~”와 같은 ‘식탐송’을 부르든, 김보성을 빼다 박은 차림새로 “옆구으리! 종아으리! 합쳐서 살덩으리!”를 외치든, 사람들은 이제 그가 등장하기만 해도 웃을 준비를 한다. SBS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과 JTBC <비정상회담>처럼 그를 찾는 예능 프로그램 역시 덩달아 많아졌고, 방송 다음 날이면 그의 활약을 언급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예전에 비해 몸무게는 20kg이 늘었다지만, 이국주는 지금 가장 사랑받는 코미디언 중 한 명이다.

물론, 7년의 시간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평균보다 좀 더 큰 체격이란 외모적 특징은 이유 없는 비난과 비호감을 사기 일쑤다. 그런 상황에서 통통한 코미디언, 특히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코미디의 길은 다양하지 않다. 데뷔 초부터 이국주가 MBC <개그야>를 통해 보여준 코미디는 자기비하와 과도한 ‘예쁜 척’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유사한 스타일의 여성 코미디언들이 해왔던 것과 차별화되지 못한 개그는 그를 주목받게 만들기엔 역부족이었고, 이국주는 MBC <우리 결혼했어요>를 패러디한 코너에서 서인영과 박화요비의 성대모사를 하며 비로소 이름을 알렸지만 특별한 존재감은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관심을 갖게 되진 않는 코미디언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2010년에는 tvN < eNEWS >가 발표한 ‘100 트럭으로 줘도 갖기 싫은 여자 스타’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tvN <코미디 빅리그>로 무대를 옮긴 후에도 비슷한 상황은 이어졌다. 그는 ‘여인의 향’이라는 코너에서 환자 연기를 하며 뚱뚱한 사람의 비애를 보여주었지만, 이 또한 체격을 단순한 웃음거리로 소비했던 기존의 코미디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싸늘했다.

반전의 계기가 된 것은 ‘불만고발’이었다. 매주 꽉 끼는 팔찌와 벨트, 스키니진 등을 입고 등장한 이국주는 건강팔찌를 꼈는데 피가 안 통해서 손에 전기가 오른다거나, 기껏 명품 벨트를 샀더니 앉으면 숨어버린다든가, 스키니진을 입었는데 벗을 수가 없다는 등의 불만사항을 당당하게 늘어놓았다. 체격 큰 여성의 불편함이 아니라 잘못된 세상에 일침을 가하는 그의 모습은 신선할 뿐 아니라 통쾌하기까지 했다. 그 후 ‘불만고발’의 연장이자 ‘10년째 연애 중’의 아주 초기 버전이라 할 수 있을 ‘리얼연애’에서 이국주는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뚱땡이들)는 목을 못 돌려. 뒤를 볼 수가 없어. 그래서 스키장 리프트카가 무릎 뒤를 탁 쳐야 ‘아~ 왔구나’ 하고 탈 수 있어.” 관객들은 “어~”라는 반응으로 동정을 표했고, 이국주는 단호하게 반격했다. “‘어~’ 하지 마. 난 행복해. 만족하고 살아.”


이국주의 성취는 주로 놀림감으로만 활용됐던 체격 큰 여성들도 ‘할 말’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데 있다. 남들보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기 때문에 겪는 불편함을 부끄러워하거나 굳이 모른 척하지 않는다. 다른 이들의 동정이나 비난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그동안 비슷한 여성 코미디언들이 남자도, 여자도 아닌 제3의 성처럼 다뤄졌던 것과 다르게 섹시하고 귀여우며 사랑스러운 여성이란 캐릭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수상한 가정부’의 보성댁은 김보성을 흉내 낸 것이지만, 자신을 ‘천상 여자’라 지칭하며 브래지어 끈을 올리거나 섹시한 춤을 춘다. ‘10년째 연애 중’은 지금의 이국주만이 할 수 있는 코미디의 집약판이다. 10년 전보다 몸무게는 늘었지만 여전히 남자친구로부터 사랑받고, 애교를 부리면서도 식탐은 숨기지 않으며, 때론 ‘결혼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남자친구에게 삐치기도 한다. 뚱뚱한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끌어오되, 그보다는 장기 연애 중인 커플의 이야기에 더욱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전형적으로 예쁘지 않거나 날씬하지 않은 여성도 사랑을 알고 연애를 한다. 그러나 “‘너는 여자로서 인생을 안 살 거니?’, ‘너 얘랑 잘 수 있어?’ 같은 댓글을 보면서 힘들었다”고 밝혔던 이국주의 말처럼, 너무나도 당연한 이 사실은 종종 무시된다. tvN <로맨스가 더 필요해>에서의 이국주를 또 한 번 주목하게 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그는 권태기를 맞은 연인과 다툼 없이 헤어지고 싶다는 여성의 사연에 “남자의 마음은 이미 떠났어요. 결혼 어쩌고 하는 건 착한 척하는 거야”라며 남성의 심리를 읽어내고, 동물병원에서 만난 그녀와 친해지고 싶다는 사연에는 “지나가다 들렀다면서 자주 만나야 돼요”라고 연애의 팁을 공유한다. 동시에 “저는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 안 좋아한다는 건 명확히 알 수 있어요. 많이 까여봤기 때문에”라고 거절 전문가를 자처하기도 한다. 자신의 경험과 관점을 이토록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여자라면, 결국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여자일 것이다. 그러니 지금, 모두가 이국주를 좋아하게 된 건 우연이 아니다.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큼 매력적인 존재는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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