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농심 너구리가 너구리가 아니었다니

라쿤 생태 보고서

2014.07.25

태풍 ‘너구리’가 몰려오던 날은 이상했다. 동명의 라면을 먹고 싶다고 호소하거나 귀여운 너구리 사진을 올리는 이들이 유난히 눈에 자주 띄었다. 트위터 타임라인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두 발로 서서 무언가를 구경하고 있는 너구리들의 모습으로 북적였다. 문득, 너구리란 동물은 의외로 우리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면도 너구리, 태풍도 너구리, 심지어 한 대형 놀이공원의 마스코트 역시 너구리 아니었던가. 곧 개봉하는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히어로 중 한 마리, 아니 한 명인 ‘로켓’도 너구리였다. 하지만 그에 반해 정작 너구리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일천했다. 그동안 막연히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알아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이 동물에 대해 심층적으로 파헤쳐볼 좋은 기회였다.

조사는 처음부터 혼란에 빠졌다. 너구리와 라쿤이 엄연히 다른 동물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대충 똑같아 보이지만 너구리(Raccoon Dog)는 식육목 개과, 라쿤(Raccoon)은 식육목 아메리카너구리과였다. 이 무슨 순환논증의 오류 같은 아리송한 분류일까. 정확한 차이점을 알아보기 위해 관련 도서를 뒤졌다. 다행히 <닮은 동물 도감: 누가 누구?>라는 어린이용 그림 도감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두 동물을 가장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는 부위는 꼬리다. 라쿤의 꼬리에는 줄무늬가 있고, 너구리는 없다. 이 기준으로 보자면, 그동안 우리가 너구리라고 생각해왔던 라면과 놀이공원의 캐릭터는 사실 라쿤이다. (앞으로 농심은 라면의 이름을 ‘라쿤’으로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다른 점은 또 있다. 라쿤의 눈 사이에는 거무스름한 세로줄 무늬가 있지만 너구리는 없다. 에버랜드 동물원에서 아홉 살짜리 라쿤, 미키와 루키를 4년째 돌보고 있는 정재민 사육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설명을 추가로 들을 수 있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너구리가 라쿤보다 조금 더 짙은 색이 많으며, 얼굴 모양 또한 너구리는 둥근 데 비해 라쿤은 마름모형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라쿤이 조금 더 귀여운 인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료를 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라쿤을 직접 만나봐야 했다. 그러나 이미 시튼이나 파브르에 빙의한 내겐, 그들을 제한적으로만 볼 수 있는 동물원이 아닌 다른 장소가 절실했다. 수소문 끝에 라쿤을 키우고 있다는 부천의 한 카페와 연락이 닿았다. 그곳을 방문하던 날, 라쿤에게 줄 선물로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몰라 천도복숭아 여섯 개를 가져갔다. 얼핏 과일을 잘 먹는다고 들었는데, 사과는 너무 흔해 보였고 그냥 복숭아는 털이 신경 쓰였으며 천도복숭아 정도라면 적당히 맛있고 먹기 편할 것 같았다. 그러나 태어난 지 14주 된 ‘초코’를 포함해 총 다섯 마리의 라쿤을 키우고 있다는 김상철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이건 잘 안 먹어요. 건강을 위해 주식으로는 고양이 사료를 주고, 간식으로는 아몬드를 줍니다. 생선도 잘 먹는데 특히 회를 좋아하죠.” 정재민 사육사 역시 강아지 사료와 야채, 닭고기 등을 주로 주고, 간식으로는 단백질 함유량이 풍부한 밀웜을 준다고 했다. 그런 라쿤에게 천도복숭아라니, 자신의 무지함에 한숨이 나왔다. 내 기분과는 관계없이 카페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초코는 내 앞에 놓인 아이스아메리카노 잔에 앞발을 불쑥 집어넣었다. 얼음을 갈취하려 한 모양이었다. 김상철 대표의 제지로 실패하자,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발을 핥으며 딴청을 피웠다.

“라쿤은 손을 워낙 잘 써요. 문을 여는 것까지 본 적이 있는걸요.”(김상철 대표) 약 40분 동안 초코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 결과,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그는 사진을 찍는 도중 테이블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두 앞발로 가지런히 쓸어 모으더니 입으로 가져가기도 했다. 순간 정재민 사육사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라쿤은 식탐이 많은 친구들이기 때문에 기호도가 높은 간식과 충분한 애정, 칭찬이면 양손으로 물건을 잡고 이동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아마 신문이나 가벼운 물병 등을 가져다주는 귀여운 모습도 볼 수 있겠죠?” 또한 앞발로 먹이를 잡고 물에 씻어 먹는 시늉을 하기도 하는데, 이는 원래 물속의 것을 잡아먹던 야생의 습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먹이를 씻는 행동은 아닌 셈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산만해지는 정신을 붙들며 초코에게 시선을 돌렸다. 녀석은 2층의 좁은 난간 위에서 고개를 쏙 내밀고 아래층에 앉은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라쿤에 대한 궁금증은 상당 부분 풀렸지만, 마지막으로 꼭 확인할 게 있었다. 라쿤의 실제 성격은 귀여운 얼굴만큼 온순한가. 혹시 우리가 외모에 속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로켓처럼 성격파탄자는 아닌지 말이다. “아무리 사람과 쉽게 친해질 수 있고 귀엽다고 해도 본성은 야생동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각이나 시각도 예민하고 이빨과 발톱 또한 날카롭죠.”(정재민 사육사) 역시, 원래부터 다루기 쉬운 생명체는 아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물들이 그렇듯 라쿤도 훈련이 가능하며, 애완용으로 키우는 경우엔 아기 때부터 친근감을 높일 수 있어 더욱 수월하다. 먼저 위협하지 않으면 해를 끼치지 않는다. 방치하지만 않는다면, 괴팍한 라쿤으로 자라날 염려도 없다. 게다가 털갈이 시기를 제외하곤 털도 거의 빠지지 않으며, 물도 좋아해서 목욕시키는 일 또한 다른 동물들보다 한결 수월하다. 그러니 이참에 너구리, 아니 라쿤 한 마리 몰고 가세요.

라쿤 모델. 초코
도움말. ‘보니타 디 카페’ 김상철 대표, 에버랜드 동물원 정재민 사육사
참고자료. 다카오카 마사에, <닮은 동물 도감: 누가 누구?>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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