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1만 시간의 재능

2014.07.24
함부르크에서의 1만 시간 동안 각자의 포지션과 능력, 무엇보다도 지향점을 알게 된 이들은 훗날 세계를 구하게 된다.

1만 시간의 노력보다 타고난 재능이 더 중요하다는 기사를 봤다. 광범위한 논문연구의 결과라고 한다. 많은 이들이 재능보다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힘주어 하는 요즘, 그 반대의 주장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재능보다 노력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왔지만, 솔직히 그 연구가 이야기하는 결론의 부분을 인정한다. 그건 진실이 아니지만, 사실일지도 모른다.

사실, 재능보다 노력이 중요하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다용도 진통제로 쓰이고 있다. 그래야 삶이 견딜 만하기 때문이다. 바꿀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는 숙명적인 무게를 갖는 반면, 내가 스스로 바꿔나갈 수 있는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는 용기를 주니까. 그리고 지금의 우리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용기가 필요하니까. 하지만 나는 이런 용기를 꺾을지도 모르는 저 위의 연구결과가 부분적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 번 더 강조하겠다. 나는 재능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도 자본이 중요한데, 인생의 목표를 이루는 데에 어떻게 타고난 재능이 중요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열린 기회로 가득했던 제빵왕 김탁구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 우리에게는 더더욱, 재능이라는 출발 지점이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자.

한 남자가 자기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났다. 그는 길 위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들 중 적지 않은 사람과 관계를 맺었다. 어떤 사람과는 일생을 약속했지만 시간이 흘러 갈라서게 되었고 어떤 이와는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한 명, 두 명을 거치면서 그는 다가오는 사람을 맞이하기도 했고 동시에 불가능해 보이는 상대방에게 온몸으로 다가서기도 했다. 그렇게 길을 떠난 남자가 길의 끝에서 얻게 된 건 뭘까. 평생의 반려자일까. 아니다. 내 생각에 그가 얻게 된 것은 자기 자신이 사랑에 빠질 사람에 대한 굉장히 자세한, 고해상도의 이미지다. 즉, 다시 말하자면 그가 얻게 된 것은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다.

어떤 이들은 운이 좋아서 자신이 타고난 재능을 일찍 파악한다. 그 운에는 부모의 도량과 경제환경적인 여건, 좋은 친구들과 적대적이지 않은 성장배경이 포함된다. 이런 것들은 자신이 타고난 재능이 무엇인지 여러 각도에서 조망해주는 자산이다. 하지만 이는 극소수만이 운이 좋아 얻게 되는 환경이다. 우리들 중 대다수는 자신의 자식에 대해서 과도하게 걱정한 나머지 그들이 갖고 있는 가능성을 제한하고 눈에 보이는 길을 강권하는 부모와 지내고 있다. 또한 넉넉지 않은 경제적 환경 속에서 살고 있으며, 소수의 좋은 친구는 갖고 있을지 몰라도 좋은 멘토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러한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은 우리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지나치게 적대적이다. 즉, 재능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과연 내가 갖고 있는 그 재능이라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다. 당장 자신에게 물어보라.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내가 타고난 무언가가 과연 무엇인지.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1만 시간을 노력한 사람이 노력의 과정에서 얻는 것은 기술의 향상만이 아니다. 그들이 얻게 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갖고 태어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알게 된 재능이라는 것은 애초에 우리가 목표로 삼은 것을 통째로 바꾸게 하지 않고 다른 수단을 찾게 만든다. 그림에 재능이 없는 이가 이야기로 만화를 그리듯, 이야기에 감각이 없는 이가 체력으로 원고를 쓰듯, 체력이 약한 이가 좋은 조언자를 구하기 위해 인간을 만나러 다니듯, 무궁한 제2, 제3의 수단을 추구하도록 만들어준다. 말콤 글래드웰이 이야기한 비틀즈의 1만 시간 동안의 함부르크 시절은 그런 것이다. 멜로디에 재능이 없으면 가사를 뽑아 듣는 이의 마음을 후려치고, 문학적 재능이 부족하다면 일생에 남을 멜로디를 쓰는 것이 바로 그 1만 시간의 역할이다. 즉, 1만 시간의 노력은 바로 그 재능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만드는 과정이라는 의미다.

연구 결과를 읽다가 나는 사실 이면의 진실을 또 한 조각 발견했다. 바로 그 연구가 이야기하는 결론이 ‘대가가 되려면 재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가가 되기 위한 삶만을 살고 있지 않다. 우리는 행복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 대가가 되는 것만이 행복의 기준이라면, 나와 동료 웹툰 작가의 대다수는 불행 속에서 살아가야 맞다. 하지만 그들은 행복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전달하고 있다. 예술이 타고나는 것인가? 라는 질문에 많은 예술가들이 말한다. 솔직히 말해서 어느 수준 이상의 무언가는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다. 좋은 선생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만두고 다른 가능성을 찾아보는 게 어떠냐’라는 제안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존하는 예술가의 대다수는 천재가 아니었다. 그들 중 대다수는 ‘버텨낸 끝에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의 특징은 과거 어떤 선생의 저 대사를 듣고도 버텨냈다는 것이다. 그런 의지는 누군가가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이기에, 사실 그 선생은 옳았다.

이종범
<닥터 프로스트> 작가로 일 벌이길 좋아하는 참치형 만화가.
덕력과 잉여력의 위대함을 신봉하지만 정작 본인은 마감 좀비.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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