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이광수가 약하다고?

2014.07.21

* 영화 <좋은 친구들>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긴 다리부터 등장한 영화 속 한 남자는 조그마한 여자아이에게 자신의 어릴 적 무용담을 들려준다. 남자가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가려던 순간, 딴청을 피우던 아이가 말을 끊는다. “민수 삼촌이 하는 말은 다 뻥이야.” 이광수가 연기한 영화 <좋은 친구들>의 민수는 예능에서 만들어진 이광수의 캐릭터와 비슷하다. 민수가 오랜 친구인태(지성)의 딸에게 생일선물로 주려고 정성스레 준비한 인형은 가끔 현태 집에 놀러 오는 또 다른 친구 인철(주지훈)의 선물에 밀린다. 인철은 편하다는 이유로 시도 때도 없이 민수를 때리거나 대놓고 무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철도, 현태도, 관객도 늘 밝고 만만해 보이는 민수가 익숙해질 때쯤, 자신의 실수로 벌어진 엄청난 일에 대한 죄책감을 혼자 견디다 넋이 나간 듯한 민수의 얼굴을 마주하면 이내 숨을 죽일 수밖에 없다. 매사 이해관계에 밝지 못하고 덤벙대는 듯 보이는 민수도 자신의 인생에 대해 고뇌하고 내면의 아픔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어딘가 약해 보이고 왠지 가벼울 것 같은 남자.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닌 남자. 사실 그동안 이광수가 예능과 극에서 보여준 캐릭터는 곱씹어보면 의외로 진지한 면이 많았다. MBC <지붕 뚫고 하이킥>의 광수는 여자친구 인나(유인나)와 본 오디션에서 자신만 떨어진 후 진로 문제를 고민하는 아픈 청춘이었고, 영화 <평양성>의 문디도 남편을 잃은 9명의 누나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전쟁터로 온 병사였다. 하지만 예능에서 붙은 ‘기린’이라는 별명처럼 길고도 어딘가 유약한 팔과 다리, 잘생겼지만 어딘가 흐릿한 이목구비는 뭘 하든 과장되고 가벼워 보였다. 물론 유재석의 모든 장난에 발끈하고 수도 얕은 캐릭터로 이광수가 SBS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에서 인기를 얻었듯, 특유의 어설프고 만만한 캐릭터는 선한 인상과 함께 귀여운 남자의 매력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배우로서의 이광수가 정말 매력적인 순간은, <좋은 친구들>의 민수가 그러하듯 이 남자를 다 안다 생각하고 만만하게 보는 그 순간 결코 만만하지 않은 진심을 토해낼 때다. 남에게 강하게 보이려 하거나 자신의 이미지를 바꿔보려는 등의 어떠한 계산도 하지 않고, 사람들이 그 캐릭터에게 공감할 만한 감정선을 본능적으로 끌어낼 줄 아는 능력이 이광수에게는 있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자신의 오랜 꿈을 이룬 여자 친구를 축하해주면서도 끝내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던 광수의 얼굴이 시청자의 마음을 아리게 했다면, 늘 밝았던 광수의 속마음이 그대로 전달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지은 죄를 모르고 있는 현태와 모든 실수를 덮으려고만 하는 인철 사이에서 속앓이를 하다 결국은 술에 취해 못하는 욕까지 뱉을 때, 민수의 눈빛에는 조용히 괴로움을 폭발시키며 상대를 압도한 에너지가 있었다. 허술하고 만만해 보이던 이에게서 느낄 수 없는 서늘함과 함께.

그래서 이광수는, 약하지 않다. 튀는 외모만큼이나 지울 수 없을 것 같은 예능에서의 약체 캐릭터가 배우로서의 성장을 막을 거란 주변의 우려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단을 그는 종종 보여줬다. “런닝맨’은 이미 족 같은 존재라 버릴 수 없어요. 대신 그저 작품에 들어갈 때 몰입하는 게 제가 발전하는 길인 거 같아요.” 그가 <좋은 친구들>이라는 무게감 있는 정극에서 10여년 차 배우 지성과 주지훈에게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준 건 이러한 심지 때문일 것이다. 는 예능에서의 착하고 귀여운 이미지에 매몰되지 않고, 순간의 집중력과 본능으로 캐릭터의 다양한 감정선을 납득시킬 수 있는 제법 힘 있는 배우라는 점을 증명했다. 아니, 생각해 보면 그는 ‘런닝맨’에서도 늘 만만하게 당하다 어느 순간 최강자 김종국을 위기에 빠뜨리곤 했다. 아직 주연은 아니다. 출연하는 작품에서 대부분 만만해 보인다. 하지만, 조심해라. 어느 한 순간 이 기린 같은 남자는 방심한 당신에게 맹수보다 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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