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힙합은 <쇼 미 더 머니>보다 크다

2014.07.17

불과 2회를 방영한 Mnet <쇼 미 더 머니 3>에 대해 가타부타 단언하기는 힘들다.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 모두, 두 번의 방송 동안 시즌 3는 아직 시즌 2에 비해 특별히 두드러진 변화나 인상적인 부분은 발견되지 않는다. ‘힙합’에 관한 프로그램의 신용을 강화해줄 수 있는 뮤지션들이 프로듀서로 참여했고 성우가 ‘힙합 스웨거’라는 말을 외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 프로그램이 음악이자 문화로서의 힙합이 지닌 고유의 멋과 매력에 관해 어떤 개선을 이루어낼지 가늠하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문제는 프로그램 자체보다 참가자들에게서 발견된다. 한국 아마추어 래퍼들의 랩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먼저 이 프로그램은 앞으로 ‘포효 금지’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49% 정도는 진지하게 주장하고 싶다. 소리 지르는 네가 챔피언일 수 있는 건 오직 싸이의 무대에서만 가능하다. 시즌 2의 예선에서 스윙스가 보여준 모습이 강렬했다는 건 안다. 그러나 참가자의 상당수가 스윙스를 따라 하고 있다는 것은 ‘오리지널리티’라는 음악성 차원의 문제뿐 아니라 ‘요즘, 가장 뜨거운 것’만 좇아가려고 하는 태도의 문제 또한 상기시킨다. 다른 하나는 ‘아카펠라 랩’에 관한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비트 없이 랩을 한다는 것은 랩이 아닌 다른 무엇을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비트가 있든 없든 랩이란 박자, 라임, 리듬, 플로우를 내포하는 예술이어야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예선 참가자의 상당수가 랩이 아닌 정체불명의 무엇을 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그것은 웅변 같기도 하고 그냥 지껄임 같기도 해서 어떤 부분에서 리듬을 타야할지 모를 때가 많았다.

단적으로 다큐멘터리 <아트 오브 랩>(Art Of Rap)을 보면 카니예 웨스트가 아카펠라 랩을 선보인다. 그는 3분 가까이 흥분을 거듭하며 열정적으로 랩을 하지만 그가 한 것은 분명 박자, 라임, 리듬 플로우를 모두 지키면서 전개하는 언어예술, ‘랩’이었다. 공교롭게도 한국계 미국인 출연자 스내키 챈은 그것을 아는 듯했다. 미숙한 한국어로 구사하는 그의 랩은 비록 유려하지는 않았지만 랩이 지킬 것은 지키고 있었다. 이것은 실력 이전에 교양의 문제고, 더불어 실력의 높낮이보다는 랩이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카테고리의 문제다. 랩이 지닌 규칙과 음악성을 무시한 채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다면 래퍼보다는 웅변가가 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힙합은 늘 자유가 아닌 것을.


다시 돌아가서, 시즌 3는 아직 시즌 2에 비해 특별히 두드러진 변화나 인상적인 부분이 발견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쇼 미 더 머니>라는 프로그램이 지닌 근본적인 정체성도 여전하다는 뜻이다. 즉 ‘예술을 평가하는 행위의 당위’에서부터 ‘힙합의 장르적 본질과 주류 매체, 예능, 오디션/서바이벌 포맷 등의 충돌’에 대한 논란은 시즌 3에서도 여전히 가능하다. 예를 들어 번호표를 가슴에 달고 “스웩”을 외치는 래퍼들의 모습은 여전히 표리부동해 보이고, 수백 명이 일렬로 늘어서서 랩 심사를 받는 광경은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힙합의 모습과 조금도 닮아있지 않다. 

또한 시즌 3는 프로 래퍼와 데뷔 가능성이 높은 대형 기획사 연습생의 참가가 공정한 경쟁에 대한 논쟁을 유발하는 한편, 여러 기획사의 이해관계가 얽힐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의 구도는 프로그램의 궁극적인 목적이 힙합의 대중화인지, 신인 래퍼의 발굴과 육성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고민하게 하다 결국 그냥 ‘힙합 엔터테인먼트 쇼’임을 깨닫게 한다.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힙합을 업어가려는 한 방송국의 의도 위에 성공을 꿈꾸는 다양한 주체의 저마다 다른 욕망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는, 힙합 엔터테인먼트 쇼 말이다. 미안하다. 그동안 개그를 다큐로 받았다. 물론 이런 힙합 쇼도 있을 수 있다. 엔터테인먼트는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하고, 힙합의 멋이 빛나는 순간이 군데군데 존재하는 것도 인정한다. 또한 MBC <일밤>의 ‘나는 가수다’처럼 <쇼 미 더 머니> 역시 세월을 버텨냈고, 그 결과 한국 힙합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미 거대한 현상이 되어 눈앞에 있는 존재를 순수성이라는 명목으로 외면하는 것도 비평가로서 올바른 태도는 아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쇼 미 더 머니>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진다. 탈락한 참가자들이 인생이 망한 것처럼 슬퍼하는 이유는 실제로 <쇼 미 더 머니>에 명운(?)을 걸었기 때문이고, 명운을 건 이유는 <쇼 미 더 머니>가 그들에게 거대하고 유일한 길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쇼 미 더 머니> 외에도 길은 있고, 그 길을 만들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길은 <쇼 미 더 머니> 만큼 단시간에 당신을 유명하게 하거나 대형 기획사와 계약하게 해줄 수는 없을지 몰라도 최소한 <쇼 미 더 머니>라는 프로그램보다는 당신을 위해 오랫동안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쇼 미 더 머니>에 참가한 모든 이의 건투를 빌지만, 한국 힙합은 <쇼 미 더 머니>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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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장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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