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메시의 축구는 계속된다

2014.07.14
연장전 후반 그것도 추가시간에서의 프리킥 찬스. 1대0으로 독일에게 1점 뒤진 상황에서 다시 한 번 메시에게 아르헨티나를 구원할 혹은 구원해야 할 기회가 왔다. 절체절명의 순간마다 소속팀과 아르헨티나를 구했던 그의 왼발은, 하지만 골을 만들지 못했고 독일의 승리가 결정됐다. 그 자체로서도 유럽 최강 대 남미 최강이 부딪힌 2014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이었지만, 수많은 이들에게 이번 결승전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선수인 리오넬 메시가 과연 월드컵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커리어의 마지막 퍼즐을 완성할 수 있을지 확인하고픈 순간이었다. 결과는 나왔다. 아르헨티나는 패배했고, 메시는 골든볼을 수상했으며, 끝끝내 웃지 않았다. 하지만 조별리그부터 경기를 본 이들이라면 알 것이다. 토너먼트 전까지 아르헨티나의 조직력과 협력 플레이는 엉망이었고, 그 순간마다 팀을 구해내며 클래스를 증명한 건 주장이자 에이스인 메시였다. 월드컵 우승을 하지 못한 건 아쉽지만, 이미 자신의 완벽함을 증명한 이 선수에게 이 정도의 빈틈은 신의 장난이라 보는 게 더 맞지 않을까. 좌절하기보다는 이 빈틈을 메우기 위해 축구의 신에게 한 번 더 도전할 메시의 활약을 기대하게 되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기대의 마음을 담아 오랜 시간 메시와 FC 바르셀로나의 팬이었던 윤이나 칼럼니스트가 결승전을 기다리며 메시에 대한 절절한 응원의 러브레터를 작성했다. 비록 그의 바람대로 메시가 우승컵을 들어 올리진 못했지만, 아르헨티나의 승패에 관계없이 이 응원은 유효할 것이다.


처음에 나는 이 글을 메시의 가장 찬란했던 순간들로 시작하고 싶었다. 예를 들어 2007년 헤타페와의 경기에서 넣은 마라도나 재림 골이라든가, 같은 해의 엘 클라시코에서 해트트릭을 했던 순간이라든가, 08-09 시즌 팀과 함께 6관왕을 달성하고 모든 개인 트로피를 휩쓴 일이든가, 4회 연속으로 발롱도르를 수상했던 순간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월드컵을 들어 올리게 된다면 아마 그 어떤 때보다 찬란한 순간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글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의 메시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어쩐지 메시가 고개를 숙였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리오넬 메시가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임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지금은, 누구도 기억하지 않고 있을 순간들.

메시의 팬이 된 이후로 언제나 좋은 일만 있었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내가 메시에게 반했던 2006년만 하더라도, 메시는 수많은 제2의 마라도나 중 하나였다. 아마도 아르헨티나에서만큼은 가장 인기 없는 제2의 마라도나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해부터 3~4년 간은 시즌에 한두 번씩 장기 부상이 있었다. 그때 나의 바람은 오직 하나, 메시가 부상 없이 한 시즌을 소화하는 것뿐이었다. 메시는 부상으로 인해 울면서 경기장을 떠나기도 했고, 유리몸이기 때문에 호나우지뉴의 10번을 이어받을 자격이 없다는 비판도 들었다. 아르헨티나에 대해서라면, 사실 거의 나쁜 기억들만 남아있다. 친선전이었지만 하프라인 부근에서 브라질의 카카에게 공을 뺏겨 실점한 일은 언제 떠올려도 마음이 좋지 않다. 카카와 호날두의 이름은 꽤 오랫동안 메시 앞에 있었다. 팀과 자신의 최전성기를 지난 후라고 해서 그런 상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2년 챔피언스리그 4강 첼시전 페널티킥을 실축했을 때, 지난 시즌 무관에 그치며 심지어 바르셀로나의 팬들에게마저 야유를 들었을 때, 메시는 고개를 숙였다.

내가 기억하는 건 그런 순간들이다. 찬란하게 빛나기 직전, 어둠 속에서 메시가 홀로 서 있는 순간. 그런 상황들 속에서 메시가 얼마나 침착하고 조용했는지, “팀이 부진의 늪에 빠졌다면 내가 구해내겠다”던 선언을, 어떻게 실현시켰는지를 지켜보는 시간은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들 중 하나였다. 종종 나는 내 평생치의 행운을 메시를 발견한 순간 썼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그건 농담이 아니다. 열아홉 메시를 발견했기 때문에 세계 최고 선수의 찬란한 순간 뿐 아니라, 그가 겪은 실패와 그걸 딛고 나아가는 성장의 과정을 볼 수 있었다. 메시는 멈춰있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압박을 견디며 계속 더 놀라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종종 메시가 진짜 축구의 신이기를 원했다. 해서 ‘지금 당장’ 바르셀로나를 부활시키라거나, 아르헨티나를 우승시키라는 무리한 요구를 쏟아냈다. 그래서 월드컵 결승전에 앞서 나는 다시 메시가 고개 숙였던 순간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건 아르헨티나가 우승하지 못했을 때를 대비한 마음의 준비일지도 모른다. 이번에 메시가 고개를 숙이게 된다면 그건 모두가 기억하게 될 테니까. 


이번 월드컵 4강전은 2011년을 떠오르게 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코파 아메리카 8강전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 메시의 슛은 모두 막혔고, 결국 승부차기까지 갔다. 1번이었다. 메시가 키커 위치에 섰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휘슬이 미뤄졌다. 꼬박 30초 넘게, 메시는 그저 서 있었다. 골키퍼가 불만을 표시하고, 아르헨티나 관중들의 야유에 가까운 응원이 이어지는 내내 그랬다. 사실 그때 난 TV 앞에서 울고 있었다. 메시는 지구라도 짊어진 것처럼 보였다. 긴 기다림 끝에 골을 넣었지만, 테베즈의 실축으로 4강 진출에 실패했다. 메시의 어깨 위에 있던 아르헨티나라는 이름의 지구는 한층 무거워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같은 상황에서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아르헨티나의 전 경기를 봤지만 도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싶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아르헨티나가 우승하기를 바라고 있다. 메시가 어깨 위의 아르헨티나를 내려놓을 마지막 기회이니 말이다.

하지만 월드컵 우승을 하든 하지 못하든 메시가 메시인 것이 변하지는 않는다. 메시는 많은 불가능을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었고, 축구장 안에서 기적에 가까운 순간들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때때로 무너졌으며, 끝까지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실패 뒤에는 어김없이 더 나은 메시로 돌아왔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메시의 팬이 된 이후로 내 삶은 그의 축구가 있는 삶이 되었다. 세계 최고 선수의 축구가 아닌, 내가 아는 한 그 공놀이를 가장 좋아하고 즐기는 선수의 축구가 있는 삶. 최고가 되겠다는 욕심과, 축구를 더 잘하려는 욕심은 다르다. 월드컵까지 들어 올리게 되더라도, 메시는 축구를 더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 할 것이다. 바로 그 리오넬 메시의 공놀이를 보기 위해, 난 올 가을 바르셀로나에 간다. 가을에는 월드컵 우승을 했거나, 혹은 하지 못한 메시가 그럼에도 끝나지 않은 세상에서 공을 차고 있을 것이다. 그런 내일을 기대하면 오늘 내 세상은 좀 더 견뎌볼 만 한 곳이 된다. 그래서 나는 메시가 월드컵을 드는 순간이나 들기 직전에 무릎 꿇는 순간이 아니라, 월드컵 이후에도 계속될 축구, 그 다음 경기를 위해 메시가 축구화 끈을 묶을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삶은 계속되고, 축구도 계속되니까. 리오넬 메시의 축구라면 분명히 기다릴 가치가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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