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진 실장 “아름다운 세상에서도 뛰쳐나올 수 있는 게 f(x)라는 팀”

SM 엔터테인먼트 비주얼&아트 디렉터

2014.07.14
컴백 전 티저 사진을 발표한다. 티저 영상을 발표한다. 뮤직비디오를 내고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지금 한국 대중음악 산업에서 가수가 자신을 알리는 방식은 사실상 시각적 이미지가 지배한다. 대중이 최종적으로 소비하는 것은 음원이나 음반이지만, 그 전에 공개되는 것은 모두 가수의 콘셉트와 스타일링을 공개하는 시각적인 이미지들이다. 가수의 티저 사진을 통해 팬들이 새 작품의 콘셉트를 상상하고, 뮤직비디오와 퍼포먼스를 보면서 음악을 시각적으로 소화한다. 이 일련의 과정을 처음 제시한 곳이 SM 엔터테인먼트(이하 SM)였고, f(x)의 새 앨범 < Red light >는 이 시각적인 이미지의 극단에 있는 결과물이다. 첫 공개된 크리스탈의 사진만으로 f(x)는 이전과 다른 분위기를 예고했고, 5일 동안 매일 1시간에 한 장씩, 12시간 동안 공개된 티저 사진은 f(x)의 곡이 나오기도 전에 그들을 이미 가장 파격적인 스타일의 걸 그룹으로 만들었다. f(x)의 티저에 대한 수많은 해석과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은 아이돌 산업에서 시각적인 이미지의 중요성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 SM의 비주얼&아트 디렉터 민희진 실장에게 음악을 눈에 보이게 하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 대체 어떤 생각을 해야 그런 결과물이 나오는지 말이다.
f(x)와 작업 중인 모습.

f(x)의 < Red light >가 화제가 됐다. 티저와 뮤직비디오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고.
민희진
: 그런 반응을 볼 때면 짜릿하다. 가요를 즐기는 10대들이 한정된 문화만 경험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때도 있는데, 그들에게 다른 것들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 아닌 욕심도 있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으니까. 그렇다고 너무 어렵게 표현해도 안 되고, 반대로 너무 쉽고 가볍게 표현하는 건 더 싫어서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작업을 하는 것이 중요했다. 팬들이 숨어있는 은유나 상징을 맞추는 경우도 많아서 재밌었고.

하루에 멤버 한 명씩, 13장의 티저 사진을 내는 방식도 흥미로웠다. 티저 사진으로 가수의 콘셉트를 보여주는 것은 SM이 먼저 시도한 것이긴 한데, 이번에는 거기서 더 나아간 느낌이다.
민희진
: 티저 사진을 하나 오픈할 때도 이 타이밍에 그 사진을 왜 내야 하는지, 그 순서는 물론 소비층으로 하여금 끌어내고 싶은 감성의 작은 부분까지 고려하고 계산해서 내야 한다. f(x)의 티저도 어필하고자 하는 소구 대상자들로 하여금 기대감을 내려놓게 하는 일 없이, 쉼 없이 앨범의 메타포를 던져 주고 싶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몰입도는 높아지고 이해도도 비례하니까.

< Red light >의 티저와 앨범에 쓰인 사진을 찍은 것도 화제가 됐다.
민희진
: 직접 찍었기 때문에 f(x)의 티저를 하루에 열 세장씩 낼 수 있었다. 촬영과 동시에 충분한 컷이 나왔는지 계산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번 콘셉트는 남들에게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 직접 찍을 수밖에 없기도 했고. 내가 찍으면 새벽부터 저녁 늦도록 쉬지 않고 촬영 할 수 있다는 점도 있다. (웃음) 그리고 상업 미술의 범주 속에서 앨범 작업은 파인아트와 가장 가까운 쪽에 자리하는 특징 덕에 아트 디렉터의 역할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아트 디렉터는 본래 편집·디렉팅을 하고, 전에도 앨범 재킷 사진의 디테일을 총괄하다 보니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사진들이 파격적이었다. 걸 그룹인데도 단지 예쁜 것이 아니라 얼굴 반쪽만 화장한 이미지처럼 파격적이고 강한 것들이 많았다.
민희진
: ‘Red light’는 ‘경고’의 메시지를 확장시켜 표현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금기와 갈망,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실재와 이상 같은 상반된 코드를 동시에 나열해 세상이 금기하는 것들, 반대로 추구하는 개인적 이상에 대한 갈망 등을 극대비, 혹은 평행 나열해서 다양한 생각들을 끌어내고 싶었다. 반쪽 화장도 그런 맥락의 표현이고. 티저 사진을 매일 오전 9시에 내서 밤 9시까지 13장을 냈는데, 9와 13도 사람들이 은연중에 터부시하는 숫자들이다. 이것들을 소재로 할 뿐 아니라, 모든 고정관념으로부터의 일탈을 꿈꿨다. 티저의 이미지들로 자극 받으면서 상상하고, 해석하다 보면 음악을 귀로도, 눈으로도, 이야기하면서 입으로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해야 하는 아이돌 그룹에서 그런 시도들은 위험하다는 걱정은 안했나.
민희진
: 그보다 획일성이 주는 지루함이 진짜 위험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돌이 대중에게 인형처럼 소비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누구나 싫지 않을까. 나도 그렇듯 아티스트들도 다들 자신이 하는 일을 의미 있는 일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래서 제일 메이저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마이너한 시도를 해본다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마이너한 것이 좋다, 나쁘다는 게 아니다. 마이너한 것은 어떤 부분에서든 어려운 포인트가 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마이너가 되곤 한다. 어려운 것이 마냥 좋다기보단, 어려운 것은 대부분 사람을 생각하게 만든다. 생각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좋다.

그래서 설리를 한 쪽 눈을 가리게 하고 문래동에 서 있게 한 건가. 예쁜 아이돌을 정지한 것처럼 세워 놓으니까 현실인데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더라.
민희진: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에서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뽑아내고 싶었다. 사실 공포는 현실 안에 있고, 현실과 이상은 멀어 보이지만 굉장히 가까운 것이기도 하다. 반쪽 화장을 하거나 사진의 톤을 두 종류로 나누고, 앨범 디자인을 두 종류로 작업한 이유도 그래서였다. 어떤 컷으로는 현실적이라고 말하기 힘들 만큼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내고, 어떤 컷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게 그리고 싶었다. 앨범 커버도 f(x)가 꽃밭에서 도망치는 장면을 찍었는데, 원래는 꽃밭의 벌레 때문에 멤버들이 소리 지르며 도망 다니는 모습이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웃기기도 했고 (웃음) 의도했던 자연스러운 연출이 의도치 않은 순간에 벌어지게 된 상황이어서 찰나를 놓칠세라 셔터를 눌러댔었다. 아름다운 세상이라도 뛰쳐나올 수 있고, 다시 들어갈 수 있는 게 f(x)라는 팀 아닐까. 


f(x)가 현실을 만난 소녀들이 된 건가. 사진에서 계속 멤버들과 현실적인 공간을 대비시켰다. 한쪽만 한 눈 화장이 일종의 낙인 같기도 했고.
민희진
: 낙인은 조금 세고 (웃음) 꿈꾸는 것을 좋아하는 자기 방어가 강했던 아이들이 현실과 직접 마주했을 때의 느낌 정도다. 마치 졸업하고 꿈꾸던 회사에 들어갔지만 예상치 못한 현실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심정 같은 거?

왜 소녀에게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민희진
: f(x)에게는 지금까지 이야기가 있었다. 간단히 얘기하면, < Nu ABO >는 우리가 이런 애들이라고 보여주는 맛보기였다. 마치 비밀의 화원을 연상하고 작업해서 미스테리어스한 우리만의 공간에 드디어 외부인을 초대한 거다. 처음부터 다 보여줄 필요 없이 그저 닫혀있던 내 공간에 너를 초대한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피노키오>는 그 정체성을 확실하게 하는 과정, < Electric Shock >에서 드디어 연약하게 뒤틀린 본능적 감성을 드러냈고, < Pink Tape >은 비밀스러운 사랑을 만남과 동시에 자의식에 눈 뜬 아이들의 에피소드를 그려냈었다. 모든 작업에 다 애정이 넘치지만 개인적으로는 < Electric Shock >가 작업의 표현법에 있어 애착이 간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민희진
: 그 앨범이야 말로 상징 범벅이었다. 커버에 곰 그림을 넣었는데, 앨범에서 ‘전기충격’의 의미를 대변하면서 멤버들의 심리를 드러내는 중요한 상징이었다. 곰이 사실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동물인데, 우습게도 조금만 표현을 바꾸면 아이들이 끌어안고 자는 곰인형이 되지 않나. 전기충격이라는 메시지를 단순히 사랑으로 표현하기보다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충격이 전혀 다른 누군가에게는 공포가 되기도 하는, 전혀 엉뚱생뚱하게도 보편적이어서 더 놀라울 수 있는 아이러니로 표현해 보고 싶었다.

이미지에 스토리텔링을 부여하는 건데,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 나가나.
민희진:
아트 디렉터는 스토리텔러의 역할을 기본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소 머릿속이 늘 바쁘다. 꼭 일이 주어져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떠오르기도 하고 이런 저런 공상, 상상을 많이 하기도 한다. 그러다 음악이 주어지면, 그렇게 평소 생각해 놓은 생각들 중에 고른다. ‘이번엔 이런 음악이니, 이런 얘기를 해보면 재밌겠다’ 이런 식으로.

그런데 왜 소녀의 세계인가. SM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소년과 소녀의 이미지를 좋아한다는 느낌이 든다.
민희진:
멤버들의 나이가 기본적으로 어리지 않나. 제 몸에 맞는 옷을 입어야 자연스럽다. 개인적으로는 불완전한 영혼, 미성숙한 존재에 대한 사랑이 넘친다. (웃음) 소년소녀는 누구에게든 평생의 로망이지 않나. 사람은 언제나 가장 예쁘고 순수한 순간을 갈망한다.

‘으르렁’에서도 EXO 같은 아이돌 스타가 교복을 입고 현실의 거리에 나오면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소년의 느낌은 더 부각됐다.
민희진
: 맞다. 하지만 의도한 목적이나, 메시지는 전혀 다르다. EXO의 경우,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동네에서 내가 좋아하는 누구를 만나면 설레지 않나. 그건 순간적으로 판타지의 공간에 잠깐 있는 것과 같다. 그걸 느끼게 하고 싶었다.

사진에 정지된 느낌을 준 것도 그런 이유였나. 거친 질감 속에서 EXO의 멤버들이 모두 굳은 표정을 지었다.
민희진
: 시공간을 잊은 듯한 느낌을 내려면 의식한 표정 같은 건 다 빼고 정적인 표정을 지어야 했다. 항상 촬영할 때 무심하라고 요구를 많이 하는데 사실 무심이 쉽지 않다. 특히 늘 유쾌한 멤버들이 무심할 리가. (웃음) 사람이 거의 없는 낮 시간에 동네, 길에서 사진을 찍으니 지나가시던 할머니께서 “잘 생겼네, 티비에 나오는 사람들인가?” 이러기도 하시고 (웃음) 멤버들도 신나했고 유쾌한 촬영이었다.



그런 결과물을 내려면 당사자와 많은 이야기를 해야겠다.
민희진
: 원하는 순간을 찍는 게 관건인데, 그러려면 서로 뭘 원하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 충분히 의도를 설명하고, 피사체가 어떨 때, 어떻게 예쁜지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무언의 커뮤니케이션 같은 거다.

작업에서 많은 조율이 필요하겠다. 하나의 이미지를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이 공유해야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나.
민희진
: 하고 싶은 걸 위해서 다지고 준비하고 하는 과정이라 기꺼이 한다. 좋은 결과물은 공유보다는 책임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책임지지 않는 공유는 일을 방만하게 하고 그르치게 할 수 있다. 조율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조율 보다는 결국 마무리하는 내가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일한다. 디렉터는 결국 모든 것을 만들어내고 총괄, 마무리 하는 역할이라 어떻게든 좋은 결과를 끌어내야 하는데, 그 때는 나 자신을 믿을 수밖에 없다. 사실 그래서 하나님께 의지를 많이 한다. 삐뚤어지지 않은 내 의도를 누구보다 제일 잘 아시니 도와주시길 바라는 간절함이 있다.

여러 일을 한꺼번에 하면서 직접 작업을 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어디까지 직접 해야 하는지도 고민될 것 같고.
민희진
: 일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일을 맡기고 조율하는 역할과 직접 작업하는 역할로 나눠지는데, 처음에는 어떤 길을 가야 하나 하는 딜레마도 있었다. 하지만 꼭 택일해야 하는 강박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성도 있는 작업을 생각했을 때, 상황에 맞게 두 가지 일을 다 잘 해내는 것이 답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클라이언트와 성실한 작업자는 둘 다 어려운 일인데, 둘 다 잘하는 것이 목표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작업의 여건을 열어주는 한 편,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더욱 개발하는 것이 작업자로서 평생의 과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태생이 작업자라 그 태도를 못 버려 스스로를 힘들게 할 때도 많다. 이번 촬영에서 필름 카메라 세 대, 디지털 카메라 세 대를 썼는데, 그것들로 이른 아침부터 새벽까지 쉼 없이 하루 종일을 찍으니 촬영 끝나고 온 몸이 쑤시고 어깨가 나가겠더라. 그런데 우습게도 몸은 괴로웠지만 스트레스는 해소된 기분이었다.

비주얼&아트 디렉터라는 직책 안에 여러 가지 일이 담겨 있는 것 같다.
민희진
: 그래픽 디자인을 기본으로 사진, 스타일링의 전반까지 전체 비주얼을 아우르는 작업을 하다 보니 이런 직함이 생겼다. 기본적으로는 그래픽 편집, 디자인 능력 뿐 아니라 드로잉, 사진 등 필요한 그래픽 소스까지 확보하고, 만들 역량도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그에 따른 능력도 필요하고. 사실 직함은 그다지 큰 의미는 아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고, 무슨 일을 원하는지, 그 일을 어떻게 해내야 하는지 생각하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일들을 해나가면서 만들어낸 결과물로 무엇을 얻는 것 같나.
민희진
: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돌이켜 보면 한순간도 무엇을 얻어 보겠다는 마음으로 일한 적이 없다. 충동적이자 열정적이었고 매 순간이 재미이자 고통이었다. 언젠가는 내가 생각하는 소년, 소녀 연작을 내고 싶다. (웃음)

사진제공. SM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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