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s Hip?│① 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이고 힙한 고찰

2014.07.18

힙(hip)이란 무엇인가. 유행에 대한 선도인가, 주류에 대한 반발인가. 실재하는 역동인가, 자본주의가 만든 허구인가. 힙이란 어디에 있는가. 가로수길에 있는가, 경리단길에 있는가. 클럽에 있는가, LP 바에 있는가. 새로이 오픈한 퓨전 레스토랑에 있는가, 허름한 동네 치킨집에 있는가. 수많은 곳에 존재하지만 또한 그 어떤 곳에도 없는, 힙이란 과연 무엇인가. 힙한 것들에 대한 것이 아닌 힙 자체에 대한 <아이즈>의 궁금증, 그리고 나름의 대답.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도를 도라고 말하면 영원한 도가 아니다. 
- 노자

힙(hip)을 힙이라 말하는 순간, 이미 영원한 힙이 아니다. 근래 몇 년 사이, 사람들에게 힙하다고 평가받았던 것들과 이것을 소비하는 힙스터들, 그리고 그들에 대한 논의나 조롱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젊음과 인디 문화의 본산이던 홍대는 그 위명을 잃은 지 오래고, 경리단길이나 연남동처럼 홍대와 가로수길에 염증을 느낀 이들이 몰리며 힙해진 공간들도, 바로 그렇게 사람들이 몰린다는 이유로 더는 힙한 위상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남은 이들이 세련되지 못하다며 더 최신(hip)의 것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 있고, 또한 그렇게 새로운 것을 찾는 것 자체가 너무 구리고 세련되지 못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어떤 공간, 혹은 라이프스타일에 힙스터가 몰리는 순간 그것은 유행이 되고 흐름이 되며, 그 순간 그것들은 힙스터답지 않은 것들이 된다. 자신의 은밀하고 세련된 취향을 SNS에 과시하는 순간, 그대로 취향의 공유가 이뤄지는 이 시대에, 정말 힙한 건 아직 힙이라 명명되지 않은 순간뿐이다.

예술에 관한 한 이제는 아무것도 자명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자명해졌다.
- 아도르노

물론 힙과 힙스터가 어떠한 근본도 없는 그저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부당하다. 뉴욕의 정치·문화 저널 < n+1 >의 마크 그리프는 책 <힙스터에 주의하라>에서, 최초의 힙스터 개념은 1940년대 흑인 하위문화의 한 유형이었지만 1950년대부터는 흑인 문화의 쿨한 지식과 에너지를 가지려는 백인 아방가르드로 전환됐다고 지적했다. 즉 이때부터 누가 더 최신(hip)의 것을 먼저 획득해서 우월해지느냐는 경쟁과 자부심이 힙스터의 정체성을 구성하게 됐다. 그리프는 이러한 계보를 그려나가며 현대적 힙스터를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왕성하게 활동한 한 세대로 국한시킨다. 아메리칸 어패럴의 브이넥 티셔츠를 입고 팹스트 블루 리본을 마시며 뉴욕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에 살던 중산층 힙스터는 실재한다. 또한 마찬가지로 몇 년 전 홍대에 픽시 자전거를 끌고 나오던 힙스터 역시 실재한다. 다만 그 다양한 양태를 관통하는 불변하는 요인을 말하기 어려울 뿐이다. 한때 힙했던 것이 더는 힙하지 않으며, 어느 순간 힙과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던 것들이 힙해진다. 철학자이자 미학자인 아도르노는 예술에 대한 근본 개념을 쫓으며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예술은 어떤 불변 요인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 운동 법칙을 기반으로 해서만 해석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앞서 말한 더 최신의 것을 통해 우월해지고자 하는 운동 법칙 안에서 모습을 바꿔나가는 힙과 힙스터의 양태를 해석할 수 있을 뿐이다.


이름을 가지고 이미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유의미하게 이름을 물을 수 있다. 
- 비트겐슈타인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힙스터에 대한 논의는 거의 대부분, 혹은 전부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소설가 김사과는 <힙스터에 주의하라>에 대한 서평에서 “힙스터에 대한 논의 자체가 그대로 힙스터 문화에 포섭되고 그것을 증폭시키고 그것을 소비하는 최신 경향의 일부가 되어버리고 마는” 함정에 대해 말했다. 사실이다. 힙스터의 운동 법칙을 따라 계속 과거의 것을 부정하며 힙의 최전선에 서지만 그 자리가 힙이라 명명되는 순간 더는 힙하지 않는 딜레마 속에서, 힙스터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전략은 힙과 힙스터를 부정하는 것이다. 나는 힙스터가 아니라는 선언을 통해 자신의 취향이 힙해지지 않는 것을 지연시키는 것이다. 덕분에 힙스터에 대한 유의미한 반명제 대부분은 힙스터가 스스로의 힙을 지키기 위해 몸을 피할 수 있는 안식처 역할을 한다. 힙스터를 공격하는 이들은 반문화가 사실은 후기 자본주의의 가장 훌륭한 상품에 불과하다는 통렬한 비판을 제시한다. 또한 패션에서의 놈코어(Normcore) 스타일은 지극한 평범함으로의 회귀를 통해 힙스터 패션을 지양한다. 하지만 또한 그들은 이 비판을 통해 비트겐슈타인 식으로 말하자면 힙스터와의 언어 게임에 동참하게 된다. 힙의 허구나 빈틈을 비판할 수 있다는 건, 단순히 힙의 반대편에 서 있다는 게 아니라 힙스터보다 힙을 더 잘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덕분에 이 비판적 태도는 처음 의도와는 달리 힙스터에 의해 한 단계 높은 힙으로 수렴한다.

진정 어려운 일은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고 철회하는 것이다. 
- 슬라보예 지젝

뉴욕의 힙스터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지식인이 슬라보예 지젝이라는 것은 그래서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가 힙스터를 대표하는 철학자가 된 건, 단순히 록스타 같은 외모에 영화 <매트릭스>를 가지고 철학적 주석을 붙이는 식의 전방위적이고 고루하지 않은 활동을 해서만은 아니다. <힙스터에 주의하라>에서 힙스터에 대해 논의하는 사람들은 한바탕 지젝에 대한 설전을 벌이는데, 누군가는 지젝의 후기 맑스주의가 힙스터의 철학으로 오인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힙스터 식의 정치행동주의가 지젝이 말한 ‘아무것도 하지 않음’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젝이 <폭력이란 무엇인가>에서 제시한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주문은 단순한 허무주의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적극적인 행동의 한 방식이다. 그는 “유권자들의 기권은 진정한 정치적 행위인 셈이다. 바로 그 행위로 말미암아 우리가 오늘날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공허함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것은 얼핏 급진주의를 가장한 무기력에 빠진 힙스터의 입맛에 가장 알맞은 철학이기도 하지만, 또한 스스로에 대한 비판까지도 흡수하는 힙스터 문화에 균열을 일으킬 관점이기도 하다. 즉 힙스터에 대한 동경과 비판, 조롱을 거두고 무관심과 침묵으로 대할 때, 비로소 그 안의 비어 있음이 더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상상해본다. 지금 이 글이 힙스터에 대한 마지막 논의가 된다면 어떨까. 모두들 힙과 힙스터에 대해 잠시 침묵을 선택하는 건 어떨까. 누가 누가 더 세련됐는지, 누가 먼저 새로운 핫 플레이스를 개척했는지 따지고, 또 그런 그들을 조롱하며 자신의 더 나은 세련됨을 과시하는 끝없는 싸움이 이제 슬슬 지겨워졌다면.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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