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s Hip?│③ 한국을 빛낸 100명의 힙스터들

2014.07.18

힙스터(hipster)’란 무엇인가. 이 시대에 가장 정의 내리기 어려운 용어 중 하나인 ‘힙(hip)’은 대략, 멋지고 독특하며 대중이 열광하는 트렌드보다 앞서 있는 문화적 취향 혹은 태도를 가리키는 듯하다.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개념이지만 2014년 현재 한국에서 가장 뜨겁고 모호한 단어로 쓰이고 있는 ‘힙스터’를 맞이하여 우리 민족의 얼 속에 살아 숨 쉬어온 ‘힙’을 재조명했다. 역사책 속에서만 봐왔으나 당대에는 누구보다 ‘힙 터졌을’ 100명의 위인 가운데 지면 관계상 일부만을 싣는다. 꽃미남들을 모아 고대의 아이돌 ‘화랑’을 조직했던 진흥왕, 꿈에서 연애의 단맛과 쓴맛을 모두 본 뒤 현실에서는 솔로 외길을 걸었던 승려 조신, 최초의 하렘물 소설 <구운몽>의 작가 김만중, 변신마법소녀 박씨 부인을 비롯한 나머지 인물들에 대한 소개는 다음 기회에.

1. 웅녀
우리 민족 최초의 채식주의자. 하늘 신 환인의 아들 환웅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곰과 호랑이에게 쑥 한 심지, 마늘 스무 개를 건네며 백일 미션을 내렸다. 호랑이는 참지 못하고 굴을 뛰쳐나갔지만 삼칠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으며 버틴 곰은 여자가 되어 환웅과의 결혼에 골인, 다이어트에 도전하는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2. 유리왕 (?~18)
히트곡 ‘황조가’의 작사가. 고구려 제2대 왕인 그에게는 두 후궁이 있었는데, 왕이 사냥을 떠난 틈에 싸움이 일어나 화희가 치희를 한나라로 쫓아버렸다. 뒤늦게 왕이 달려갔으나 치희는 돌아오지 않았고, 왕은 날아가는 새들을 보며 노래를 지어 불렀다. 실연의 아픔과 솔로의 외로움을 예술로 승화시킨 그를 위해 떼창을. “훨훨 나는 저 꾀꼬리 / 암수 서로 정답구나 / 외로워라 이 내 몸은 / 뉘와 함께 돌아갈까”

3. 백결선생
히트곡 ‘방아타령’의 작곡가. 신라의 음악가였던 그는 너무나 가난하여 의복을 백 번이나 기워 입어야 했다. 어느 연말, 이웃에서 별식을 마련하려 곡식 찧는 소리를 들은 아내가 그조차 없는 가난을 한탄하자 선생은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거문고를 타서 방아 찧는 소리를 내었다. 결핍을 예술로 승화시킨 진정한 뮤지션이었던 것이다.

4. 원효 (617~686)
멘토. 신라의 승려였던 그는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는 길에 동굴에서 하룻밤을 보내던 중 한밤중에 목이 말라 바가지에 담긴 물을 달게 마셨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그것이 해골에 담긴 썩은 물이었다는 것을 알고 “세상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진리를 깨달아 유학을 포기, 후에 대중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가이드로 활동했다.

5. 혜초 (704~787)
여행 작가. 신라의 승려였던 그는 약 4년 동안 인도와 중앙아시아 지역을 답사하고 돌아와 각 나라의 종교, 풍속, 문화에 대해 기록한 <왕오천축국전>을 남겼다. 지도 밖으로 행군한 1세대 바람의 아들.

6. 문익점 (1329~1398)
한반도 패션계의 판도를 바꾼 남자. 고려의 사신이었던 그가 원나라에서 돌아올 때 목화씨를 붓두껍에 몰래 숨겨 들여왔다는 이야기는 어린이 위인전을 통해 널리 보급되었지만, 이는 극적 재미를 위한 각색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목면 재배와 면직물 보급에 있어 그의 공은 부정할 수 없다.

7. 김시습 (1435~1493)
아웃사이더. 다섯 살에 이미 신동으로 이름났던 그는 자신을 궁으로 불러 칭찬한 세종이 비단 50필을 내리며 혼자 힘으로 가져가라 명하자 비단을 모두 연결해 그 끝을 허리에 묶고 유유히 떠났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뛰어난 재능에도 평생 세상을 떠돌았으며 최초의 로맨스 소설 <금오신화>를 집필했던 고독한 천재.

8. 신사임당 (1504~1551)
손글씨와 그림, 리폼 능력자. 젊은 시절 잔칫집에 갔다가 한 아낙의 치마에 음식이 엎질러져 얼룩이 생기자 신사임당이 그 위에 포도 덩굴을 그려 본디보다 훨씬 값나가는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주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9. 김홍도 (1745~?)
예술직 공무원 (aka. 금손). 조선 영조와 정조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인물, 산수, 신선, 화조 등 어떤 대상이든 탁월하게 표현하는 재능으로 명성이 높았다. 특히 서당, 씨름, 우물가 풍경 등 당대 백성들의 생활상을 생생히 담아낸 <단원풍속도첩> 역시 지금이라면 ‘좋아요’ 1만 개는 거뜬히 받았을 것이다.

10. 김병연 (1807~1863)
ID는 김삿갓, 부계정은 김립. 자신이 어렸을 때 역적이 된 할아버지의 존재를 모르고 살다가 과거 시험 답안에서 그를 맹렬히 비난했고 진실을 알고 난 충격으로 평생 방랑했다. 한자와 한글을 자유롭게 섞어 쓰며 유머러스하면서도 촌철살인의 묘가 살아 있는 시를 남겼다.

11. 황진이
엔터테이너. 16세기 조선의 기녀로 시서화(詩書畵)와 가무(歌舞)에 모두 능했다. 양반들의 노리개가 되는 대신 당대의 명사 벽계수와 지족선사를 유혹해 사대부들의 허위의식을 비웃었으며 몇몇 남성과는 기간을 정해 사랑을 나누기도 한, 누군가에겐 어장관리자 혹은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

12. 정몽주 (1337~1392)
충신 래퍼. 고려 말, 아버지 이성계를 도와 왕권을 침탈하려던 이방원은 백성들에게 인망이 높던 정몽주의 마음을 자신의 편으로 돌려보고자 ‘하여가’를 지어 읊었다. 그러나 정몽주가 이에 화답해 지은 ‘단심가’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디스곡이 되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13. 허균 (1569~1618)
장르소설가. 당대 명가의 자손으로 태어났고 뛰어난 문재로 주목받았으나 기생, 서자, 불우한 예술가들과 어울리며 낮은 벼슬자리를 들락거렸다. 민족을 대표하는 슈퍼 히어로 홍길동을 주인공으로 한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을 남겼고, 역모 혐의에 휘말려 세상을 떠난 풍운아.

14. 서산대사 (1520~1604)
히어로. 법명은 휴정.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이끌고 한양 수복에 공을 세웠으며, 다수의 민간 설화에 도술을 부리는 능력자로 등장했다. 특히 일본인들이 그를 태워 죽이기 위해 무쇠로 만든 방에 넣고 밤새 불을 땠으나 다음 날 아침 수염에 고드름이 언 채로 일어나 호통을 쳤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니, 서산대사와 그의 제자 사명당이 민족을 대표할 민머리 히어로 콤비로 영화화될 날을 기다려본다.

15. 정조 (1752~1800)
국민 아이돌. 조선의 제22대 왕인 그가 능행길에 나설 때마다 용안 한번 보자며 몰려나온 사생 팬, 아니 백성들이 들판을 가득 메웠다고 한다. 인권을 중시한 개혁군주로 학문과 문화에도 관심이 높았으며 서찰에 “껄껄껄” 혹은 “ㅋㅋㅋ” 같은 의미의 “呵呵呵”를 쓰기도 했던 폐하는 센스쟁이!

참고도서. <왕의 나라 신하의 나라> 이이화 (김영사), <조선인은 조선의 시를 쓰라> 이이화 (김영사), <인물로 보는 삼국사> 정구복 (시아 출판사),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일연 (한국인문고전연구소)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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