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나의 취재이야기

2014.07.17
어떤 취재처에서는, 작은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무시하기도 했다. 그것이 무겁고 큰 카메라를 산 유일한 이유는 아니지만 요즘도 취재를 나갈 때는 그때의 기억 때문에 꼭 저 육중한 바디를 들고 나선다.

인터뷰를 하거나 좌담회 같은 곳에 가면 유독 나는 취재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한국 웹툰계에는 취재형 만화가 드물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일본의 경우 (작가가 취재를 직접 하는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편집부나 어시스턴트, 스태프들의 도움도 커서 취재를 위한 인력과 시간이 어느 정도 주어진다. 하지만 한국 만화계의 경우 사정이 조금 다르다. 팀 단위의 작업이 드물기 때문에 작가가 직접 소재에 대해 공부도 하고 취재도 하면서 작업을 하기엔 원고료나 연재 주기의 문제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에는 나의 취재이야기를 살짝 해볼까 한다.

나는 그림과 스토리에 그다지 자신이 없다. 그래서 일찌감치 전문 소재를 직접 공부해가면서 취재형 만화를 그려야만 데뷔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데뷔하기 전엔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일단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만나주질 않는 것이다. 사전 조사를 열심히 하다가도 직접 전문가를 만나봐야 할 것 같은 순간이 오면 시간을 내어주는 이가 없었다. 메일을 보내면 당연히 답장이 없고, 그나마 답장이 오더라도 바빠서 여건이 안 된다, 미안하다 일색이었다. 초조했고 불안했다. 그래서 무리수를 두었다. 가짜 명함을 만든 것이다. 영화사나 언론사 등의 마크를 맘대로 박아 넣은 가짜 명함. 물론 불법이다. 사칭이니까.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 가짜 명함을 사용한 적은 없었다. 그냥, 그 정도로 절박했다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인터뷰비를 마련했다. 전문가의 시간은 귀하니까 돈으로 사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선택에는 장점이 있었다. 힘들게 모은 수십만 원으로 그들의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산 셈이니 하나 마나 한 질문으로 인터뷰 시간을(=돈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사전 조사를 했던 것이다. 물론 이 방법도 금전적인 부담으로 인해 계속하진 못했지만 이때의 시도는 취재의 기본에 대한 아주 좋은 레슨이었다. 그 레슨은 다음과 같다.

처음부터 전문가 인터뷰나 전문서적, 논문을 취재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것은 ‘엄밀한 사실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팩트는 딱딱하다. 따라서 발상이 자유롭게 뻗어 나가는 것을 처음부터 제한한다. 논문이나 다큐멘터리를 위한 시작으로는 좋을 수 있지만 스토리의 시작으로는 좋지 않다. 취재의 시작은 말랑말랑한 정보로 하는 것이 좋다. 대표적인 예가 인터넷 검색이다. 전혀 엄밀하지 않지만 대중들의 관심이나 뜬소문, 헛소리가 많아서 발상이 여기저기로 뻗어 나가게 된다. 그렇게 발칙한 상상을 통해서 이야기를 마구 구상한다. 당연히 엉터리 내용이 섞이게 된다. 하지만 무시하고 그냥 과감하게 생각을 전개해본다. 그리고 이야기가 어느 정도 크기의 덩어리가 되면 이제 그때부터 팩트의 칼로 그 엉성한 덩어리를 조각해 들어갈 차례다. 깎아나가듯 이야기의 부분들을 다듬는 데 엄밀한 정보들을 활용한다. 몰랐던 정보로 인해 살이 붙는 구석도 적지 않다. 어떨 때엔 아예 새로운 에피소드를 구상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드디어, 전문가를 만나볼 시간이다. 전문가의 경험담은 이야기의 디테일을 더해준다. 직접 보고 들었던 경험담은 당연하게도 내가 혼자 했던 조사보다 해상도가 높다. 인물들의 행동이나 대사, 디테일한 상황을 묘사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이때 내가 배웠던 가장 큰 레슨은 이것이다. ‘좋은 답변은 좋은 질문에서 나온다. 그리고 좋은 질문은 대부분 구체적이다.’ 막연하게 질문하면 제아무리 전문가라도 답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내가 어느 지점까지 고민과 조사로 나아간 상태에서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 질문하면 인터뷰의 밀도도 높아지고 문답이 알차게 진행된다. 전문가 인터뷰를 하면 무조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지망생들에게는 도움이 될 만한 취재의 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여건만 허락한다면 이야기를 다 쓴 이후에도 전문가의 감수를 받는 게 좋다. 이야기의 완성도는 마무리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처음엔 어려웠던 취재도 시간이 가면 점점 쉬워진다. 무엇보다 한 번 만나줬던 전문가들은 두 번째 만날 때 좀 더 호의적이다. 특히 내 작품이 정식으로 연재되기 시작하면 그들은 헛수고를 한 게 아니라는 인식을 받는다고 한다. 그때부터는 보다 친밀한 인터뷰도 가능해지며, 무엇보다 그들 역시 자신의 일처럼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 이런 방식의 취재를 반복하다 보면, 정말이지 이야기는 혼자서 쓰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자리를 빌려서 내 자문이 되어주신 전문가 분들께 진심 어린 감사를.

이종범
<닥터 프로스트> 작가로 일 벌이길 좋아하는 참치형 만화가.
덕력과 잉여력의 위대함을 신봉하지만 정작 본인은 마감 좀비.

교정. 김영진




목록

SPECIAL

image SNS와 여성 연예인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