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정우성, 멋의 기원

2014.07.14

영화 <신의 한 수>에는 몰입을 방해하는 몇 가지 요소가 있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이야기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다. 프로 바둑기사 태석(정우성)은 신체적 능력이 꽝인 남자다. 70년대 과학자처럼 덥수룩한 머리칼에 안경을 끼고 어정쩡한 품의 양복을 입은 그는 답답하리만치 굼뜨고 어눌하다. 악당들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 형을 잃고 누명까지 쓴 태석은 교도소에서 몸을 만들고 싸움의 기술을 연마하며 복수를 계획한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이후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이처럼 평범하던 주인공이 감옥 생활을 거치며 극강의 액션 히어로로 재탄생하는 ‘비포 앤 애프터’의 신화를 써왔다. 그러나 <신의 한 수>에서 이 공식이 주는 쾌감을 가로막는 것은 다름 아닌 정우성이다. 정우성은, 이를테면 처음부터 ‘애프터’ 상태였던 남자이기 때문이다.

남자로서 매력이 없는 정우성을 상상할 수 있을까? 정우성이 싸움을 못 한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일까? 한 수만 물러달라고 비굴하게 매달리는 정우성이라니, 설마. 연기의 폭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다만 어떤 사람은 자신이 어떻게 해도 지울 수 없는 존재감을 타고날 뿐이다. 햄버거 가게에서 시급 600원에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여고생들의 팬레터를 잔뜩 받았던 중학교 시절부터, 여자는 물론 남자 연예인들조차 얼굴이 상기된 채 앞다투어 그에게 애정을 고백하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우성은 언제나 선망의 대상이었다. 데뷔 이후 20년, 대중이 선호하는 스타의 스타일은 수차례 달라졌지만 정우성은 ‘미남 톱스타’의 대열에서 밀려난 적이 없다. 살이 좀 찌건 빠지건, 작품이 흥하건 좀 망하건 정우성은 어쨌든 정우성이었으므로.


사실, 정우성의 매력을 알기 위해 그가 출연한 모든 작품을 볼 필요는 없다. 그는 노상 추리닝 바람의 철없는 백수(<똥개>), 출장비 영수증을 살짝 속여 쓰는 평범한 회사원(<호우시절>)을 연기했고 비교적 좋은 결과물을 보여줬지만 작품 속 그의 존재는 어쩔 수 없이 희미한 위화감을 남겼다. 판타지의 주인공 같은 인물이 현실에 발붙인 인간으로 생명력을 얻는 것은 물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정우성이 비범해 보이지 않기 위해 넘어야 할 ‘벽’은 외모만이 아니다. <비트> 당시 수많은 남학생들의 피를 끓게 했던 교무실 신에서 민(정우성)이 교사의 야구배트를 빼앗아 진열장을 때려 부순 것은 그가 친구 환규(임창정)를 지독하게 구타하는 것을 보다 못해서였다. 사고뭉치 친구 때문에 죽도록 고생하던 정우성은 <태양은 없다>에서도 자신의 뒤통수를 친 홍기(이정재)를 윽박지르면서도 결국엔 바삐 뒷수습을 하고 다닌다. 로미(고소영)를 위해 무슨 일이든 다 하던 <비트> 이후 <내 머리 속의 지우개>로 대표되는 멜로와 로맨스에서도 정우성은 대개 자신을 희생하고 상대를 보호하는 남자를 연기했다. 시속 70km로 달리는 말 위에서 코트 자락을 펄럭이며 윈체스터 소총을 가볍게 돌려 장전하고 적을 차례로 명중시키는 현상금 사냥꾼(<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나, 잔혹한 살인자임에도 보는 이를 매혹시킨 범죄 조직의 리더(<감시자들>) 역은 그가 타고난 비범함을 제대로 폭발시킬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러니 친구에겐 의리를 지키고 여자에겐 순정을 바치며, 돈을 좇아도 악을 행해도 기품을 잃지 않는 이 어마어마하게 잘생긴 남자의 정체를 규정한다면 아마도 ‘내추럴 본 멋진 놈’이 아닐까.

그러나 대중 앞에서 무려 20년, 스크린 속에서의 멋진 미소와 우수에 찬 눈빛이 언제까지나 동일한 효력으로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스타를 다루는 매체는 넘쳐나고 대중과 스타의 거리는 90년대와 비교할 수 없이 가까워졌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정우성이 한결같이 ‘멋진 놈’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최고의 테크니션도 할리우드의 개척자도 흥행 보증 수표도 아니지만 언제나 여유롭고, 정중하면서도 비굴하지 않은 스타다. 영화인들의 묘사에 따르면 “절대 주위에 폐를 끼치며 자기 것을 챙기려 하지 않는 성격”(2009, <씨네 21> 김혜리 기자)이며, 현장에서 모두 함께 으쌰으쌰 하는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능력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떠들썩한 스캔들이 되어 버렸던 한 여배우와의 만남과 이별 이후 토크쇼에 출연했던 그가 보여준 태도는 조심스러우면서도 담대했다. 정우성은 헤어진 상대에게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애정과 배려를 드러냈고, 과거 자신을 상처 입혔던 대중의 관심조차 담담히 이해했다. 로맨스 영화에서보다 더 로맨틱한 성품을 지닌 남자, 그러니 여전히 여자들이 그를 보며 설레 하고 남자들은 ‘형님’이라 따르는 이유는 겉으로 드러난 미(美)보다도 그에게서 배어나는 멋에 있을 것이다. 1997년, 스물을 갓 넘겼던 <비트>의 민은 이제 두 배로 나이를 먹었다. 하지만 청춘의 상징이었던 그 남자 정우성은 노화하거나 마모되는 대신 깊어지고 있다. 홀로, 멋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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