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게 사과하라>, 사과로 이기기

2014.07.11

“사과했는데 왜 그러냐 쫌팽이같이.” 이런 적반하장에 뚜껑 열려본 경험, 다들 있다. 미안하다고는 하는데 사과를 받은 기분은 아니고, 그래서 마음을 열지 않았더니 역으로 쪼잔한 사람이 되는 경험. 안다 그거. 얼마나 울화통 터지는지. 기뻐하시라. 당신 품성 탓이 아니었다. 문제는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은 그자식이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호와 뇌과학자 정재승이 쓴 <쿨하게 사과하라>는 당신을 달래주고도 남을 책이다. 반대로 누군가에게 사과한답시고 어영부영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불을 걷어찰 수도 있지만.

“미안하다”는 사과의 끝이 아니라 아주 미미한 시작에 불과하다고 이 책은 말한다. 핵심은 책임을 인정하는 자세다. 과거사 책임을 고백하는 독일식 사과와 책임 인정을 생략해버리는 일본식 유사사과를 비교해 보자. “만약 그랬다면 유감이다”를 입에 달고 사는 정치인식 유사사과도 전형적인 책임회피다. 공감이 중요하다. 사과가 피해자에게 공감을 얻으려면, 피해자 앞에서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느끼는 과정이 필수다. 변명은 달지 않는다. “미안해, 하지만”은 사과가 아니다. 차라리 공격이다. 지금껏 받아 보았던 찜찜한 사과를 떠올려 보시길. 책임 인정, 공감, 변명하지 않기. 이 중 적어도 하나 이상이 빠져 있을 것이다.

사과는 훌륭한 경영 전략이자 리더십의 무기가 된다. 의료사고가 일어났을 때 대형병원의 제1원칙은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였다. 과실을 인정하면 추후 법정싸움에 불리하다는 이유다. 이제 이게 바뀌고 있다. 미국의 주요 대학병원들은 과실 공개, 책임 인정, 보상책 제시로 이어지는 ‘진실 말하기 프로그램’을 속속 도입했다. 그 결과 소송비용이 오히려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피해자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막대한 보상금보다 진솔한 사과일지도 모른다.

리더가 제대로 된 사과를 하면 리더십은 오히려 튼튼해진다. 갈등을 해소하고 공감과 지지를 복원하는데 그만한 특효약이 없다. 이 원리를 이해하는 리더가 없으면 모두가 불행하게 된다. 우리는 그저 진솔한 사과만 들으면 마음을 열 준비가 되어 있는데, 리더는 체면이 깎이면 리더십이 다친다고 생각한다. 유사사과로 그 순간만 모면하려 든다. 책임 인정도 공감도 찾을 길 없다. 우리는 “미안하다는데 왜 그러냐”라는 말을 들어버린 ‘쫌팽이 피해자’가 된다. 이러면 제자리걸음이다. 다음 단계로 갈 수가 없다.

홍명보 감독이 유임되는가 싶더니 결국 사퇴했다. 경기력이야 문외한인 내가 논할 일은 아니고, 마지막 벨기에전을 지고 홍 감독이 한 “월드컵을 통해 좋은 경험을 쌓았다”라는 인터뷰는 리더의 책임회피 사례로 교과서에 올릴 만하다. 내 눈에는 경기장에서의 실패만큼이나 사과의 실패가 홍 감독의 운명에 치명타였다. 하기야 책임회피 유사사과 리더십이 차라리 국정기조인 듯도 하니, 축구대표팀 리더에게만 유독 가혹한 것도 좀 미안한 일이다. 

천관율
<시사IN> 기자. 6년째 정치 기사를 쓰고 있다. 경제팀에 보내자니 산수가 안 되고, 국제팀을 시키려니 영어가 젬병이고, 문화면을 맡기에는 감수성이 메말랐고, 사건기자를 만들기엔 치명적으로 게으르다고 조직이 판단했다. 내막 모르는 어른들은 인정받아서 오래 있는 줄 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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