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x)의 미지수를 풀이하는 법

2014.07.09

1절은 “정글 속의 룰 따라 약한 자는 먹혀”를, 2절은 “Boy 니가 말한 최선이란 변명 내겐 의문투성이일 뿐 진짜 사랑이란 어쩌면 아주 느린 파동”을 노래한다. f(x)의 신곡 ‘Red light’는 걸 그룹이 흔히 다룰 법한 남자와의 연애담이, 사회적 메시지로 읽힐 수 있는 가사와 아무렇지도 않게 섞여 있다. 1, 2절 어느 쪽으로든 해석 가능할 만큼 모호한 “눈 크게 떠 거기 충돌 직전 폭주를 멈춰” 같은 후렴구는 이 그룹의 현재다. f(x)는 한 곡의 가사에서도 사랑을 노래하는 걸 그룹과, 다른 걸 그룹과는 차별화되는 모습을 동시에 담는다.

“독창적 별명 짓기 예를 들면 ‘꿍디 꿍디’”를 부르는 그룹은 유치해 보이기 마련이다. 반대로 패션 잡지에 그대로 실려도 될 만큼 감각적인 비쥬얼이 담긴 앨범은 기존 걸 그룹의 팬들에게는 낯설었다. 설리의 눈을 가린 채 초점을 흔든 사진을 앨범 재킷으로 쓴 < Nu ABO >이후, f(x)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가져갔다. 가사는 “땀 흘리는 외국인은 길을 알려주자 너무 더우면 까만 긴 옷 입자”(‘Hot summer’)처럼 의도를 알 수 없는 내용이었지만, 티저부터 앨범 재킷, 뮤직비디오 등의 압도적인 비주얼은 의도를 알고 싶게 만들었다. 새 앨범 < Red light >는 이 두 가지 방향이 만들어낸 화학작용의 결과다. 소녀, 외눈, 고스, 고양이 등 다양한 키워드가 담긴 새 앨범의 티저 사진은 일관된 분위기와 함께 멤버마다 다른 느낌을 연출한다. 한 쪽 눈만 메이크업한 채 교복을 입은 크리스탈의 사진은 걸 그룹에서 종종 연출하는 소녀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단 하나의 아이템으로 소녀의 이미지를 전복시킨다. 콘셉트의 독특함과 일관성, 멤버들의 아름다움을 함께 갖춘 티저는 팬들에게 f(x)를 해석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켰고, 지금 f(x)를 네이버에서 치면 ‘f(x) 티저 해석’, ‘f(x) 가사 해석’ 등이 자동 완성된다.

< Red light >의 티저 공개 첫 날 주인공으로 앨범의 콘셉트를 제시한 크리스탈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활용되는 방식은 f(x)의 이 독특한 위치와 연관된다. 그는 걸 그룹의 멤버고, 시트콤에도 출연하는 한편 패션 잡지에서 가장 선호하는 연예인 중 한명이다. 걸 그룹 AOA가 ‘짧은 치마’, ‘단발머리’처럼 제목과 스타일링만으로도 콘셉트를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은 팬층을 ‘취향저격’ 할 수 있는 명확한 콘셉트를 제시한다. 반면 f(x)는 갈수록 모호한 이미지와 메시지를 담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걸 그룹의 상업성과 이른바 ‘힙’한 것을 쫓는 사람들의 시선도 끌 수 있는 예술성을 함께 표현한다.


< Red light >는 모순 같지만 서로를 지탱하던 두 요소가 f(x)의 스타일로 자리 잡는 단계처럼 보인다. 티저는 물론, 뮤직비디오 역시 낯선 이미지로 가득하다. 안무 부분을 제외한 컷들은 대부분 클로즈업과 바스트 샷을 사용하고, 전신을 담은 컷은 멀리서 잡힌다. 노래를 부르는 클로즈업에서는 빛과 색을 통해 분위기가 달라지고, 클로즈업이 아닌 컷에서는 카메라가 계속 움직인다. 또한 꽃과 전구가 터지고, 오드 아이였던 고양이의 눈 색깔이 다시 돌아오거나 폭파되던 집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이미지가 삽입된다. 걸 그룹의 뮤직비디오지만, 그들의 예쁘장한 모습을 감상할 시간은 거의 없다. 대신 소멸과 부활을 연상시키는 이미지와 멤버들을 담는 방식이 결합하면서 그들에게 신비로운 이미지를 입힌다. 소녀들이 남성에게, 또는 대중에게 어필하지 않고 자신만의 미학을 얻는 순간. 반면가 등장하는 장면은 카메라를 고정된 채, 멤버들의 전신과 함께 춤의 동선을 보기 편하게 보여준다. 파격적인 비주얼 속에서, 안무는 걸 그룹이 기존의 팬층에게 해줘야할 일을 한다.

파격적인 이미지를 좋아한다면, 안무 부분은 평이해 보일 수도 있다. 예술성을 생각하면 뮤직비디오는 더욱 과감해도 좋았다. 그러나 팬은 유튜브의 댓글과 SNS 등에서 안무 부분에 환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른 걸 그룹과 똑같다면 f(x)를 좋아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걸 그룹이 아니라면 역시 f(x)를 좋아할 이유가 없다. 딜레마라면 딜레마고, 독보적이라면 독보적이다. 사랑 노래로도, 세상에 관한 이야기로도 풀이될 수 있는 가사와 아이돌 그룹의 특성과 독특한 색깔을 동시에 염두에 둔 음악은 이런 위치가 낳은 결과물로 보인다. 멤버들이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시작하는 도입부와 일렉트로니카적인 분위기에 힙합적인 바운스까지 넣은 편곡은 f(x)의 독특함을 강조한다. 반면 강하게 터지며 귀에 확 들어오는 후렴구나 루나의 보컬을 통해 클라이맥스로 끌고 가는 후반부의 전개는 아이돌 그룹 댄스곡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요소다. 가장 파격적인 스타일링이 어울리는 크리스탈의 티저로 시작해, 가장 밝고 건강한 이미지의 루나로 끝난다. 그것이 ‘Red light’다.

이대로도 나쁠 것은 없다. f(x)에 한해서라면, SM 엔터테인먼트(이하 SM)는 한국에서 가장 멋진 비주얼 콘셉트를 보여줄 수 있다. 다만 ‘Nu ABO’의 비주얼은 파격적이었고, 가사는 황당할 만큼 유치했고, 여기에 클라이맥스로 갈수록 느려지고, 보컬은 점점 힘을 빼는 독특한 구성의 곡이 더해졌다. 비주얼, 가사, 음악이 각자 극단적으로 간 것들이 합쳐지면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물이 나왔고, f(x)는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었다. 반면 ‘Red light’는 ‘Nu ABO’ 이후 회사 전체가 f(x)의 독특한 위치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처럼 보인다. 정확히는 비주얼은 과거보다 한 발 더 나아갔고, 다른 요소들은 그에 발맞춰 아이돌 시장에서 많이 사용되지 않는 요소들을 보다 많이 넣었다. 대신 아이돌 그룹에 필요한 뼈는 유지했다. 미지의 시도가 낳은 산물이, 이제는 그룹의 브랜드가 됐다. 그만큼 팀의 장점은 살리고, 안정적인 반응도 얻어낼 수 있다. 하지만 변수의 결과물이 상수의 고려대상이 된 이후, 그 다음은 무엇을 해야 할까. f(x)에 대한 공식이 나온 지금, SM은 그들에게 더 파격적인 것을 시도할 수 있을까. 거기에 따라 걸 그룹 시장의 영역도 조금 달라질 것이다.



목록

SPECIAL

image 마동석 영화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