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다섯, 마스다 미리를 읽습니다

2014.07.11

나이를 먹는다고 인생에 익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서른다섯이라는 나이는 그렇다. 결혼 계획은 없지만 특별히 독신으로 살려는 건 아니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할 수도 있지만 실은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자체가 없다. 직장에서 어지간히 경력을 쌓았어도 여전히 긴장되는 자리가 있지만 신입이 아닌 이상 마음 단단히 먹고 뛰어야 한다. 쉬지 않고 일해서 모은 저금도 있지만 그걸로는 평생을 보장받을 수도, 인생을 바꿀 수도 없다는 걸 안다. 내가 나이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부모님의 노후도 걱정하게 되지만 어찌할 바를 몰라 손을 놓아버리고 만다. 라이프스타일 잡지를 보며 평화롭고 견실한 삶을 동경하지만 정말로 ‘내가’ 그것을 원하는지는 확신하지 못한다.

일본의 만화가 마스다 미리의 ‘수짱’ 시리즈에는 이런 고민을 하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삼십 대 중반의 카페 점장 수짱과 그 친구들이 한 살씩 나이를 먹으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이 시리즈는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등 마스다 미리의 작품 일부는 3만 부가 넘게 팔리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2005년 ‘노처녀’의 대명사처럼 불렸던 MBC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삼순은 스물아홉 살에 불과했다. 연애 세포가 바짝 말라버린 여성을 가리키는 ‘건어물녀’라는 말을 유행시킨 만화 <호타루의 빛>은 정작 주인공 호타루와 미남 상사의 로맨틱 코미디에 가까웠다. 하지만 수짱과 친구들의 일상에서 희미한 로맨스의 빛이나마 채집하려면 돋보기가 필요할 것이다. 수짱의 친구 마이코는 유부남과 만나다 헤어진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불륜이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흔 살의 사와코는 소개팅을 앞두고 상대에게 환상을 품기보다 ‘결혼하면 우리 집 근처에서 살아줄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홀로 된 어머니와 함께 치매에 걸린 외할머니를 돌보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2년 뒤, 여전히 혼자인 그는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없으면 축하받을 일이 적은 인생”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미깡 작가의 <술꾼도시처녀들>.

‘백 점 만점의 인생’과는 이미 멀어졌다는 걸 알고, 가슴 뛰는 로맨스도 더는 기대하지 않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혹시…’의 불씨를 묻어두고 사는 평범한 여성들의 일상은 꾸준히 세상으로 나와 또 다른 여성들을 위로한다. 올봄에 출간된 <오늘도 혼자서 할 수 있어>(모리시타 에미코), <이런 우리지만 결혼, 할 수 있을까?>(하토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다츠키 하야코) 역시 “설마 30 넘어서 이렇게 되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던”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한 만화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자신의 힘으로 삶을 일궈온 사회인인 그들도 사랑에는 서툴고 노화에는 대적할 수 없다. 그러나 데이트 상대와의 뜨거운 스킨십을 상상하면서도 문자 한 통 보내지 못해 쩔쩔매고, 젊게 차려입으면 나이 든 얼굴이 부각되는데 수수하게 입으면 나이 든 티가 확 난다며 고민하는 에피소드에 즐겁게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보잘것없음조차 웃어넘기는 여유가 생긴 덕분일 것이다.

‘나이 드는 게 나쁘지만은 않아.’ 미깡 작가의 웹툰 <술꾼도시처녀들>에서 서른다섯의 프리랜서 꾸미는 혼자 술 마시러 갈 엄두가 안 나 전전긍긍했던 이십 대 때와 달리, 이제는 자연스럽게 바에 드나들 수 있다는 것에 혼자 기쁨을 느낀다. 어차피 리셋하기에는 이미 많이 와 버린 인생이기 때문에, 그 궤도에서 굴러떨어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다면 삶을 견디기 위한 숨구멍은 작더라도 많을수록 좋다. 꽉 닫힌 잼 병을 열어줄 사람이 없어 서러워하는 대신 병뚜껑 따개의 편리함에 감탄하고, 백마 탄 왕자님이 아니라 “자다 깨서 부스스해진 몰골을 보고 서로 웃을 수 있는 사람”을 꿈꾸게 되면서 사람은 어른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이 드는 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삶의 비슷한 길목에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더욱 그렇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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