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러쉬 “괜히 잘한다고 했다가 못하면 쪽팔리는 거예요”

2014.07.11

스튜디오에는 미니농구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크러쉬는 망설이지 않고 농구공을 집어 들어 슛을 날렸다. 멀리서도 던져보고, 덩크슛을 넣는 척 골대 바로 아래서 뛰어오르기도 했다. 공이 튕겨 나와도 신나 보였다. 그러나 인터뷰를 시작하자, 크러쉬는 곧 시무룩해졌다. 장난기가 걷힌 얼굴에서는 피곤함이 묻어났다. “솔직히 말하면, 활동하는 중엔 음악 작업도 전혀 못 했어요. 그냥 머리만 대면 잠들기 때문에 할 시간이 없어요.” 그는 요즘 정말로 바빠졌다. 비비드크루의 멤버로 가끔 누군가의 보컬 피처링이나 프로듀싱 정도를 맡았던 그가 아메바컬쳐에 합류하고, 1년 만에 셀프 프로듀싱한 정규 앨범 < Crush On You >를 발표하고, ‘Hug Me’로 매주 음악방송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그 때문에 좋아하는 프랑스 영화와 독립영화, 공포영화도 한동안 보지 못했다. 대신 인터뷰는 질릴 정도로 했다. “인터뷰엔 적응이 됐어요. 그런데 너무 여러 개 하다 보니 똑같은 말을 하게 돼서 죄송할 때가 많아요. 말을 많이 하다 보니까 약간 제가 저를 세뇌시킨다는 느낌도 있고요. 좀 더 새로운 걸 이야기해야 하는데….”

다행인 게 있다면, 무대에서는 여유로워졌다는 거다. 창피했다고 고백할 정도로 어려웠던 무대는 클럽에서 공연하는 것만큼 편해졌다. 물론 노래와 퍼포먼스를 같이 하는 건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예전부터 그를 지켜본 사람들은 크러쉬의 선택에 의아한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춤이 어색하다는 지적들도 나왔다. “한 번에 멋있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있는 그대로, 연습한 만큼 보여드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계속 발전돼야 하는 부분이니까요.” 이어서 크러쉬는 말했다. “다른 분들이 ‘왜 크러쉬가 춤을 추는 거지?’라고 하면 당연히 저도 소심해져요. 잘 추는 사람들이 워낙 많잖아요.” 그는 생각이나 말을 일부러 꾸며낼 줄 모르는 것 같았다. 숨기는 법도 없었다. 어린 시절, 음악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아버지에 대해서 묻자 “지금도 뭘 들어보라고 권해주세요. 술 취하면 불러주시기도 하고. 최근에도 토니 베넷의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를 들려줬어요”라 설명하다가도 쑥스러운지 몇 마디를 덧붙였다. “아, 아빠 이야기도 이제 그만해야 되나 싶어요. 아빠도 제 인터뷰를 보시곤 ‘너 너무 과장해서 이야기하더라’ 그러시더라고요. 뭔가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에선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고…’ 하는 내용들이 나오니까요. 맞긴 한데, 말이랑 글이 주는 뉘앙스가 좀 달라서 그렇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해요.”


민망한 건 못 견딘다. 괜한 의미부여를 하거나, 과도한 자신감을 부리는 법도 없다. “노래도 부르고, 퍼포먼스도 하고, 프로듀싱도 하고 다 하긴 하는데, 뭐가 좋은 건지 모르겠어요. 하나를 확 잘하는 게 좋을까? 저는 춤을 잘 추는 것도 아니고,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라서요. 이런 말을 하니까 갑자기 술자리 같은 느낌이지만… 아무튼 그런 고민들이 많아요.” 음악이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농구도 잘하진 못하고 좋아는 해요. 중학교 때 친구들이랑 시합을 하면 저는 가드를 맡았어요. 딱히 뭐 특기가 있는 건 아니어서.” 농구 이야기는 크러쉬가 더 좋아한다는 야구와 축구로 이어졌다. 아스널과 아르센 벵거 감독에 대한 애정, 루이스 수아레스를 향한 질책으로 목소리를 높이던 그는 위닝일레븐(이하 위닝)도 좋아하지만 잘하진 못한다고 말했다. “뭐든지 잘한다는 말을 잘 안 해요. 너무 자만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잖아요. 특히 위닝 실력은 남자들 사이에서 자기 이름 같은 거거든요! 괜히 잘한다고 했다가 못하면 쪽팔리는 거예요.”

소심하다면 소심한 남자. 앨범 수록곡 중 ‘밥맛이야’에선 “네가 내 부모님도 아닌데 날 가르치려고만 하는 게 / 딴 남자한텐 이러지 마 진짜 재수 없으니까”라고, ‘Give It To Me’에선 “거짓말은 나빠 난 술 탓으로 돌릴래 / 옷을 벗고 시작해 네 몸을 녹일래”라고 노래하던 남자는 어디로 간 걸까? “특별히 생각해보진 않았는데, 아마 제가 실제로는 말을 직설적으로 못 하니까 음악으로 그렇게 표현하는 거 아닐까요?” 다른 사람으로부터 “생긴 게 왜 그래?”라는 말을 들으면 하루 종일 우울해하는 성격이지만, 중학생 때부터 일기 대신 노래로 감정을 그려내며 자라온 크러쉬는 음악에서만큼은 퍽 과감하다. 우연히 만난 자이언티에게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고 먼저 말을 건네 인연을 만들었고, 작업을 할 때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흔들리기보다 자신의 고집을 믿으며, 원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언제까지고 매달린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음악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최대한 오래 들려주고 싶어 한다.

“일단 이 앨범에 있는 곡들로 공연을 많이 하고 싶어요. 그러다 제가 질릴 때쯤 다음 앨범을 낼 수도 있겠죠. 새로운 걸 계속 보여주는 건 좋은 거니까.” 이건 자만이 아니라 그저 내 것을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패기다. 그러니 사람들이 스물셋의 그를 주목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인터뷰가 끝난 후, 크러쉬는 물었다. “저 미니농구대는 어디서 살 수 있나요? 집에 달아놓고 하고 싶은데.” 하지만 글쎄, 한가롭게 농구를 할 날이 그에게 쉽게 오진 않을 것 같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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