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포매니악 볼륨2>, 백조가 된 제이미 벨

2014.07.10

상품 설명
소년은 중력을 거스른다. 광산의 사정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으려 자꾸만 뛰어오르던 빌리 엘리어트는 가뿐하게 발을 움직이고 하늘에 닿을 듯 손을 뻗으며 세상의 무게를 제 어깨에서 털어내려 했다. 2,000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빌리 엘리어트>의 주인공 역을 거머쥐더니 데뷔작으로 10여 개의 상을 수상한 제이미 벨은 그 자체로 소년이었다. 고집과 그늘이 드리워진 아이답지 않은 얼굴과 어른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몸짓. 쉽게 대체될 수 없을 것 같은 소년의 존재감은 크기로 설명될 수 없는 완성도를 빛냈다. 그러나 좀처럼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첫인상이란, 보석처럼 빛나는 것인 동시에 지니고 다니기엔 너무 무거운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제이미 벨에게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되어 준 작품은 초능력자를 틴에이저 판타지 풍으로 해석한 <점퍼>였다. 연민을 자아내는 역할을 섭렵하던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재능의 증명이 아니라 기대의 범위를 넓힐 수 있는 계기였고, 제 나이 또래의 남자아이처럼 말하고 움직이면서 제이미 벨의 어깨는 한층 가벼워졌다. <점퍼> 이후 그의 행보가 고전인 <제인 에어>에서부터 모션캡처 애니메이션인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과 한국 감독 봉준호의 <설국열차>를 거쳐 지독한 영국영화인 <필스>까지 광범위하게 펼쳐졌다는 점은 그래서 흥미롭다. 그리고 그가 연기한 수많은 인물들이 지붕 위를, 다음 자리를 꿈꾸며 땅을 박차려 한다는 점은 더더욱 주목할 지점이다. 논란의 감독 라스 폰 트리에가 연출한 <님포매니악 볼륨2>에 이르러 제이미 벨은 마르고 단정한 몸가짐으로 천진난만함과 악마성, 쾌락과 연민이 뒤섞인 장면들을 보여주는가 하면, 2015년 리부트되는 <판타스틱 포>에서는 더 씽, 괴력의 바위맨을 연기할 예정이다. 춤을 추듯, 소년은 사람들의 짐작을 뛰어넘어 배우의 날개를 펼치고 있으며 날아서 도착할 먼 곳을 향해 도움닫기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발레리노가 된 빌리 엘리어트가 조명 아래 드러냈던 백조의 모습처럼 제법 힘찬 도약일 것이다.

성분 표시
댄스 보이 50%
모녀 삼대가 춤을 사랑하는 가정환경에서 자란 제이미 벨에게 춤을 배우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빌리 엘리어트>에 출연하기 전부터 친구들에게 “발레리나 보이”라고 놀림받기도 했던 그는 사실 발레 못지않게 탭댄스에 큰 애정을 갖고 있으며, 가장 존경하는 댄서를 묻는 질문에도 항상 탭댄서들을 언급한다. 심지어 <빌리 엘리어트>의 스티븐 달드리 감독은 제이미 벨의 탭댄스 실력을 본 뒤 발레로만 채워 넣으려 했던 연출 방향을 수정했을 정도다. 물론, 배우로서 제이미 벨은 더 이상 춤에 의존하지 않는다. 하지만 <할람 포> 촬영 당시 캐릭터의 죽은 엄마를 위한 시를 쓰는 등 인물의 감정들을 인이 박이도록 고민하는 그의 태도는 어딘가 몸이 기억할 때까지 동작을 연습하는 춤의 과정과 닮아 있기도 하다.

브라더 보이 40%
엄마를 잃고 꿈마저 빼앗기지 않으려 애쓰는 빌리 엘리어트는 결핍의 아이였다. 이후에도 대부분의 작품에서 제이미 벨에게 화목한 가정은 주어지지 않는다. 대신 그에게는 도시로 떠나는 동생을 위해 울어주는 빌리 엘리어트의 형, 노예를 형제처럼 대해주는 <더 이글>의 검투사, 일생일대의 작전으로 동생과의 신뢰를 지키는 <맨 온 렛지>의 탈옥수, 멘토이자 보호자인 <설국열차>의 커티스 등등 수많은 형들이 있었다. 그리고 형들의 불완전한 보호는 때때로 관객의 모성본능을 더욱 부추기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라스 폰 트리에 10%
<댄서>라는 이름으로 기획되었던 <리 엘리어트>는 같은 해 칸 영화제에 출품된 라스 폰 트리에의 <어둠 속의 댄서>와 혼동을 막기 위해 지금의 제목을 확정했다. 이후 제이미 벨은 라스 폰 트리에가 각본을 쓴 <디어 웬디>에 출연했는데, 여기서 웬디는 주인공이 아끼는 총의 이름이며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연출작 <님포매니악 볼륨2>에서 제이미 벨의 역할은 그저 K라 불린다. 이름을 주었던 감독은 그에게서 이름을 거둬가며 배우가 지나온 길로부터 그가 자유로워지게 만들었다.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이런 게 인연이다.


취급주의
더 이상 변성기 아님
BAFTA(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수상소감을 말하던 사춘기 소년은 이제 잊어라. 마릴린 맨슨과 약혼했던 엑스 걸프렌드와 다시 만나 결혼하더니 아기를 낳고 결별해버리는 제이미 벨은 이제 할리우드 스타다. 기타를 치고 카페인을 많이 섭취하며 크록스를 싫어하고 아스널을 응원하는 어른 남자, 인터뷰에서 야한 이야기도 하고 요크셔 사투리를 고수하는 영국 어른 남자다.

여전히 종달새임
봉준호 감독은 촬영 현장에서 늘 즐겁게 수다를 떨고 기분이 좋으면 탭댄스를 추기도 하는 제이미 벨을 종달새에 비유하기도 했다. <설국열차>의 에드가와 비슷하게 쾌활하고 귀여우며 활기찬 청년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그래, 세상엔 나풀나풀 까불거리는 어른 남자도 많은 법이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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