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하, <블러드 브라더스>의 외강내유 린다

2014.07.10
그동안 최유하가 맡은 작품 속 인물들을 보면 단번에 이 문장이 떠오른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남자들로 하여금 어떤 순간과 감정을 각성시키는 존재. 묘하게 엉켜 있는 관계로 한 남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풍월주>의 진성여왕, 죽음으로 한 남자에게 각인된 <번지점프를 하다>의 태희, 남자를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고 이윽고 함께 죽음을 선택한 <황태자 루돌프>의 마리. 조정석의 복귀작으로 알려진 <블러드 브라더스>에서도 최유하는 저돌적인 린다가 되어 순간의 선택으로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뀐 쌍둥이의 삶에 깊숙하게 관여한다. 청초해 보이는 외모와 하이톤의 목소리는 최유하를 쉬운 하나의 길로 인도한다. 하지만 “모두에게 있는 양면성이 난 좀 더 극단적으로 있다”고 얘기하는 그는 어떻게 해서든 자기 페이스를 찾아 다양한 길로 방향을 틀려 애쓴다. 여기 그 고민의 흔적을 담았다.

1. 뮤지컬배우입니까?
Yes.
2005년 <풋루스>로 데뷔해 <제너두>, <모차르트 오페라 락>, <번지점프를 하다>, <황태자 루돌프> 등을 했고 지금은 <블러드 브라더스>에 출연하고 있다.

2. 브라더스입니까?
No.
쌍둥이 형제인 미키(조정석·송창의), 에디(오종혁·장승조)의 소꿉친구인 린다 역을 맡았다. 자유분방하고 직선적이고 표현도 거침없는 걸로 봐서는 자격지심도 없고 자존심도, 자존감도 높은 여자다. 글렌 연출님은 연습하는 동안 배우들에게 이들이 처한 상황이나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리버풀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교육 수준도 낮고, 가난하고, 보고 자란 게 별로 없어 희망도 야망도 없지만 굉장히 강한 사람들이라고 하더라. 쿨함에서 오는 삶에 대한 용기 같은 것. 린다도 자유롭지만 키다리 아저씨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은 결론지어진 삶을 살 것 같아서 슬프고 그래서 매력적이었다.

3. 자유분방한 편입니까?
No.
중학교 때까지 내 메인 감정은 ‘부끄럽다’였다. 난 거의 무채색 옷만 입는다. 그러다 1년에 한 번 정도 공주옷을 입고 싶어질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난 공주 성격이 아닌데 처음 보는 사람한테 공주 이미지를 줄 순 없지!’ 이런 말도 안 되는 깊은 생각을 해서 결국엔 무채색 옷만 입는다. 정말 난 뼛속까지 한국 사람이라서 그런지 남의 시선에 민감하다. FM이지. (웃음) 그래서 연기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표출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맘껏 할 수 있으니까.

4. 적극적입니까?
Yes.
집이 포항인데 중1 때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를 보고 정말 뻔한 표현으로 음악비트랑 심장이 같이 뛰는 경험을 크게 하고 난 저걸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때는 방송반, 고등학교 때는 연극반 활동을 했고,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로 대학을 오고 나서는 <송산야화> 같은 소극장 공연부터 <토요일 밤의 열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유린 타운> 등등 뮤지컬을 정말 많이 보러 다녔다. 과 친구들(성균관대 독어독문과)은 여기에 관심이 없으니 대부분 혼자 보러 다녀서 지금 혼자 오시는 관객분들 보면 그때 생각이 많이 난다. <송산야화>를 (송)창의 오빠 걸로 봤었는데 얘기해줘야겠다. (웃음)

5. 승부욕이 있습니까?
Yes.
린다가 미키를 지켜주는 것처럼 그렇게까지 지켜주고 싶고 갖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 사랑에 대해서는 그런 적극성이 없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승부욕이 많다. 오디션이라든가. (웃음) <엣지스> 극장에 다트가 있었는데 재미로도 안 해본 다트를 대회 한다고 해서 나갔다가 준우승까지 갔다. 죽기 살기로 했는데 (웃음) 상대방이 이미 홍대 다트바를 몇 개월 돌았던 사람이라 이길 수가 없었다. 끝나고 눈물이 나서 화장실로 달려간 적이 있다. 예술은 승부욕만으로 되지 않아서 힘들지만 그럼에도 승부욕에 늘 타올랐었다.

6. 실패의 경험이 있습니까?
Yes.
데뷔 전에는 내가 가진 이미지나 소리로 봤을 때 무조건 되게 센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나와 보니 아니었다. (웃음) 완전 멘붕 멘붕. 초반에는 ‘하기 싫다’는 말도 많이 했다. 뮤지컬배우를 꿈꾸며 뮤지컬을 보러 다니던 시절에 “저 무매력을 주인공 오빠는 왜 사랑하는 거야!”라 얘기하던 캐릭터들을 내가 하고 있었으니까. 다른 언니들이 하는 역이 더 좋아 보였다. 나는 늘 미움받고 감정을 발산할 수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게 그렇게 감사하다. 배우 워너비였던 시절에 싫어했던 그런 역할들이 작품에 있어서 굉장한 베이스가 되어준다는 걸 알게 됐거든. 마음의 컨트롤이 되는 상태니 가능한 일인 것도 같고. (웃음)

7. 강해지고 싶습니까?
Yes.
난 이 일을 하면 안 되는 엉망진창 멘탈의 소유자라고 생각하던 시기도 있었다. 이런 얘기를 선배들이나 주변에 하지 않는 스타일이라 그 기간이 더 오래갔던 것 같다. 난 여전히 쑥스럽고 부끄럽고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내가 묻고 싶은 시기에 그 사람은 혼자 있고 싶어 할 수도 있으니까.

사진제공. 컴퍼니다

8. 자기만의 기준이 있습니까?
Yes.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누가 나한테 피해를 주는 걸 내가 못 견뎌서인 것 같다. 지하철에서 문 가운데로 타는 사람들이 있다. 한번은 그렇게 하면 피해 보는 사람도 있고 불편하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시간 개념도 너무 심하게 지키는 성향이라 약속 시간을 어기는 사람이 있으면 ‘나를 무시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웃음) 내가 생각하는 민폐의 범위가 넓고 예민하게 반응하다 보니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아마도 내가 일반 직장을 다녔다면 내가 하는 만큼 뭐가 나올 텐데 이 직업은 내 기준을 다 무너뜨려야 해서 더 힘들었던 것 같다.

9. 한계에 부딪혔습니까?
Yes.
뮤지컬을 처음 할 때는 노래가 너무 고마웠다. 내가 다다르지 못하는 깊이의 감정을 노래로 부르면 초보인 것을 감출 수 있었으니까. 근데 어느 순간 감정이 노래로 이어지지 않는 날들이 많아졌다. 노래를 위해 감정을 포기하는 상황이 오고, 그런 걸 테크닉으로 넘길 능력도 안 됐다. 한 2년 전부터 내가 바라는 것도, 누군가가 나에게 기대하는 것도 커지는데 난 그 둘 다 못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내가 세워놓은 기준이 말도 안 되게 높다 보니 스스로 확신이 없으면 더 움츠러들고 사람들 얼굴도 잘 못 본다. 공연 중반쯤 되면 늘 이제야 만들어진 것 같아서 초반에 온 사람들 돈 물어줘야 되나 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10. 방법을 찾았습니까?
Yes.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3개월을 안 해봤더니 몸이 더 아프더라. 그래서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모른 척하지 말고 더 생각하고 얘기해서 노력하는 배우가 되자고 결심했다. 예술이라는 건 가지고 태어난 양이 있기 때문에 나는 그게 높은 사람을 영원히 부러워할 거다. 하지만 한계는 인정하고 이제 그 한계를 알았으니 폐 끼치지 않고 너무 큰 실망감을 안겨주지 않는 선에서 즐겁게 하자, 가 됐다.

11. 외롭진 않습니까?
No.
사실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은 주변에서 칭찬을 해줘도 안 믿는다. (웃음) 오히려 ‘더 잘하라는 건가?’라 생각하고. 외로운데 난 그걸 그냥 업보라고 생각한다. 내 숙명. (웃음) 주변 사람들은 결혼이나 연애를 하면 외롭지 않다고 하는데 난 똑같이 외로울 것 같다. 근원적인 외로움은 누구도 해결할 수 없으니까. 대신 나를 엄마처럼 받아주는 친한 배우 언니랑 자학 타임을 갖는다. (웃음)

12. 객관적인 편입니까?
Yes.
그동안은 어떤 작품의 캐스팅 제안이 들어왔을 때 나한테 플러스인가 마이너스인가를 따지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나를 너무 과대평가한 거지. 하기 싫은 게 아니라 할 수 없는 게 있다. 캐릭터에도 이미지에도 안 맞고 내 걸 끌어낼 수도 없고. 그런 걸 볼 수 있는 눈이 부족했다. 작품 보는 눈이라는 게 뭔지 알겠다. 욕심만 많았지 뭐. 이제는 내가 여기서 노래로 연결할 때 부딪힘이 없는지도 보고 그걸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도 빨리 찾았으면 좋겠다.

13. 겁은 없습니까?
Yes.
일에 있어서만큼은 겁이 아예 없다. 그래서 그나마 다행이기도 하고. (웃음) 어느 정도 공연을 하다 보니 뮤지컬 속 노래의 임팩트만큼 테크닉적인 측면이나 성향에서 여러 문제점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이크 없이 얘기하는 건 어떨까, 내가 하는 말에는 진실성이 있는가 같은 고민이 생겼다. <엣지스>를 했던 변정주 연출님한테 연극 좀 시켜달라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나 같은 성격이 그런 부탁 하기 정말 힘들거든. 기타 화통처럼 얼굴 완전 빨개지고 김 나오고. (웃음) 그러다 연극 <날 보러 와요>를 작품명이나 캐릭터 같은 것도 하나도 안 보고 무조건 시작했는데, 장르적 다름도 있지만 배우들의 공기가 달라서 너무 즐거웠다. 날것 같은 그 느낌이 너무 쇼킹하고 재밌어서 만날 웃었다. 그 맛을 알았고, <블러드 브라더스>도 그런 연극적인 요소가 있어서 선택한 것도 있었다. 쉽지 않지만 기회가 되면 연극은 꾸준히 하고 싶다.

14. 꿈꾸는 미래가 있습니까?
Yes.
브로드웨이 배우 중 서튼 포스터를 좋아한다. 물론 그녀가 가진 탤런트는 너무 훌륭하고 뛰어나지만 나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여성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강하게 생긴 것도 아닌. 큰 넘버를 부르기 전에 떠는데 그게 너무 좋고, 떨지만 연습량이 보일 정도로 너무 잘해서 그게 너무 감동적인 배우다. 완벽한 리딩 레이디인데도 좋은 작품이 있으면 망가지는 조연도 서슴지 않는다. 나한테는 너무 큰 롤모델이지. 특별히 하고 싶은 작품이나 라인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녀 때문에 <작은 아씨들>의 조는 꼭 해보고 싶다.

15. 마지막으로, 당신은 누구십니까?
최유하.
1981년생.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을 가진 여자.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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